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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姉様とのインタビュー韓国記事 ハングル

2014-01-05 22:55:16 | パク・ヨンハ
お姉様とのインタビュー韓国記事 ハングル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5&artid=201312251755281




누나가 말하는 ‘전 매니저’ 사건 전말 그리고 박용하의 추억이야기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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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데이


박용하, 그를 떠나보낸 지 3년 6개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의 소식을 듣고 있다. 그를 추억하는 반가운 소식도 있지만 때로는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박용하의 뜻을 이어 ‘요나 컴퍼니’를 맡고 있는 그의 친누나, 박혜연 대표와 매형 김재현 이사를 만났다. 그들이 마음으로만 담아둘 수밖에 없었던 지난 이야기들 그리고 박용하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박혜연 대표와 김재현 이사를 만나기 위해 서울 잠실에 위치한 요나 컴퍼니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데, EMS 소포 박스를 든 집배원도 함께였다. 운송장에 뚜렷이 적힌 ‘TO Park Yong Ha’. 일본에서 보내온 박용하의 선물이었다. 받을 수 없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까? 쉬 짐작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일본에서는 선물이나 팬레터가 여전히 오고 있어요. 용하에게 보내는 것뿐 아니라 어머니, 용하 조카인 제 아들 그리고 저희 부부 내외까지 챙겨 편지를 보내주세요. 한국 팬들도 계절마다 과일이나 보약들을 보내주셔서 항상 고마워요.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듯이 그렇게 팬들과 잘 지내고 있어요.”

박용하의 가족은 매년 그의 추모식과 ‘메모리즈 투어’에 참가한다. 처음에는 너무 빨리 가버린 이를 두고 추모식이나 유품전, 사진전을 연다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국내 정서로는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




남겨진 가족에게 가장 큰 숙제인, 아프리카 차드에 지은 박용하의 이름을 딴 ‘요나 스쿨’. 생전에 그가 남긴 일기를 통해 그곳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가족들은 요나 스쿨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원러브’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함께 일했던 음반 제작사나 매니지먼트사 그리고 팬클럽 관계자분들께서 ‘그는 안타깝게 갔지만 최소한 팬들을 위해서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라며 저희를 설득하셨죠. 그리고 데려간 곳이 일본 모 유명 연예인의 10주기 유품전이었어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떠난 이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죠.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따라온 꼬마 팬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고 해보자 결심했어요. 처음엔 1년 정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3년 넘게 하고 있네요.”

무엇보다 박용하를 사랑하는 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이제 떠나고 없지만 그를 사랑했던 마음만은 여전했다.

“용하 같은 경우는 참 특이하죠. 어느 한쪽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잖아요. 행사를 진행하는 관계자, 팬들 그리고 가족이 한마음이 돼서 지금까지 추모식을 하고 있어요. 일본 관계자분들과는 그 어떤 계약 관계도 없이 진행하고 있고요. 동생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서로 통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추모 문화가 보편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 박용하는 외국 배우이고, 일본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추모하기 위해 수천 명의 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 수많은 팬들이 박용하를 대신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어머니, 어영란 여사다. 그녀 역시 팬들과 시간을 보내며 먼저 떠나보낸 아들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씩씩하게 지내려고 애쓰시죠. 사실 엄마 입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요동치시겠죠. 엄마에게 워낙 정겹고 살가운 아들이었으니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하루 종일 용하를 가슴에 담고 사세요. 그렇지만 팬들을 직접 만나면서 위안을 얻고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용하가 있는 분당(메모리얼 파크)이나 아니면 여기 사무실, 파주 약천사(위패가 봉안된 절)에서 우연히 팬들을 만나면 함께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세요.”

그녀는 아들을 만나러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갈 때면 보온병에 커피를 타서 간다. 행여나 만날 팬들과 함께 마시기 위함이다. 만약 아들이 살아 있다면 일부러 거리를 뒀을 그들이지만 이제는 꼭 껴안고 손을 어루만지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팬들에게 감동했던 부분이 ‘과거에는 용하가 자신들에게 기쁨도 주고 용기도 줬으니 이제는 자기들이 어머니에게 그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다’라고 해요. 팬레터의 내용들을 봐도 ‘그가 없어 고통스럽고 힘들다’라는 내용보다는 ‘고마웠고 기뻤다. 늘 추억하며 살겠다 ’라는 분들이 많아요.”

박 대표는 팬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박용하의 ‘전 매니저의 예금 인출 시도 사건’ 소송 중 법정에 나와 ‘매니저의 과거 행적’에 대해 증언을 해준 한 일본인 팬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박용하 측 증인석에 선 한 일본 여인. 그녀는 박용하의 초창기 팬으로 일본 은행에 예치된 박용하 명의의 예금 3억여 원을 무단으로 인출하려다 구속된 전 매니저 이 모씨와도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국 법정에서 이 모씨가 그동안 자신에게 했던 박용하 가족에 대한 비방, 거짓말에 대해 자세히 증언해줬다.

“저희가 소송을 진행하면서 전 매니저에 대한 증언을 부탁드렸어요. 만약 거절하셨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 매니지먼트 관계자들과 함께 기꺼이 증언해주셨죠.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참 고마웠어요.”
3억여원의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이 모씨는 박용하 명의로 예금청구서를 위조했다. 그가 떠난 지 1주일 만인 2010년 7월 7일에 벌인 일이다.

“몰래 도모하던 일이 틀어지니 이 모씨는 자신이 한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변인들에게 가족을 비난하기 시작한 거죠. 그녀가 한 일을 보면 배신은 약한 단어예요. 더 심한 단어가 있으면 그걸로 얘기하고 싶어요.”

전 매니저 이 모씨는 일본 활동을 하며 재력이 많은 팬, 사회적 지위가 있는 팬들을 모아 따로 관리했다는 것도 증언해준 일본 팬 덕분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녀 역시 재력가였다.

“저희는 용하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씨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몰랐어요. 알고 보니 일본 팬에게 개인적인 일에도 많은 도움을 받아왔더군요. 이번 일은 정말 새 발의 피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법적 판결을 받은 거예요.”




1·2 요나 컴퍼니 안에 설치돼 있는 큰 편지 상자. 박용하에게 보내온 팬레터를 모아놓은 상자로 2013년 5월부터 시작해 채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3분의 2가 찼다. 3 취재 당일 박용하에게 배달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가족들을 위한 손수건과 머플러 그리고 박용하가 좋아했던 카메라를 본떠 만든 크리스마스 오르골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박 대표가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증인석에 선 여인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그분이 눈물을 흘리며 ‘이제라도 박용하와 가족에게 남긴 상처를 반성하고 남은 인생을 바르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녀로서는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는데 당사자가 알아들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 모씨는 현재 법정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터라 최종 선고일에 구속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선고를 받는 순간에도 이 모씨는 누군가와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여유를 부려 판사가 “뭐 하는 짓이냐? 내 말을 똑바로 들어라!”라는 경고했을 정도다.

“저희는 그녀의 구속을 바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소송을 한 거예요. 그런데 판사님이 그녀의 죄질이 나쁘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증언이 오락가락해 법정 구속을 하겠다는 판결을 내렸을 때, 만감이 교차했고 결국 우리의 진심이 통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족이 그동안 받은 고통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나의 매듭을 지을 수 있었어요”

그들이 가장 참을 수 없던 것은 ‘사건’ 1년 후에 이 모씨가 J 매니지먼트사에 들어가 남자 아이돌 그룹을 전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수감되기 직전까지도 이 모씨는 V그룹의 매니저였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그런 사건을 벌이고도 그녀가 버젓이 매니저를 다시 할 수 있는지 의아해했고, 그녀는 변명하며 저희를 험담했다고 해요. 급기야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용하의 친구들까지 오해하기 시작했기에 가족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치른 장례. 가족은 그저 허망했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모씨는 장례식장에서 유명연예인이 오면 그를 붙잡고 오열했다. 처음에는 정말 슬퍼하는구나 생각했지만 인적이 뜸한 밤이 되면 가족을 불러내 “회사를 어떻게 할 거냐? 대표를 바꿔야 한다”라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했다고 한다.

“삼우제를 치르고 난 후였어요. 그녀가 밤 11시에 제게 전화를 해서 용하의 집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거예요. 이유를 물었더니 ‘짐 정리를 해야 한다’라고 하더군요. 제가 어이가 없어서 ‘짐 정리는 어머니가 해야지, 왜 당신이 하느냐’라며 거절했죠. 나중에 생각하니 다 이유가 있었더라고요.”

이 모씨는 ‘예금 인출 사건’ 1주일 후인 7월 14일 사무실에서 박용하의 유품을 포함한 사진집 등을 무단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그 양이 무려 30상자였다. 그녀가 법정에서 주장했던 ‘그간의 정을 생각해 소장하고 싶었다’라는 의도치고는 무척이나 많은 양이다.

“수십 개의 상자가 기념품이겠어요? 또 용하가 생전에 받았던 트로피들은 왜 가져간 겁니까? 아무래도 개인 사무실을 따로 차리려고 했던 것으로 짐작돼요. 그런 짓을 해놓고도 후에 저희에게 연락해 퇴직금을 정산해달라고 하더군요. 물론 당연히 해줘야 할 일이니까 해줬지요.”

이 모씨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은 상태. 그 이후 매니저로 복귀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1 추모제에 참석한 팬들의 추모 행렬. 2 지난 12월 5일 도쿄 나카노 선플라자에서 열린 추모 이벤트 ‘2013 박용하 데뷔 20주년 인 재팬-러브 인 드라마’.
박용하가 남기고 간 숙제
2009년 박용하는 NGO 단체인 굿네이버스와 함께 아프리카 차드에 다녀왔었다. 당초에는 우물을 파주고 돌아오는 단발적인 일이었지만 그곳의 열악한 상황을 체험한 박용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렸다.

“용하가 우물을 파주는 것보다 ‘우물을 팔 수 있게끔 해야 하지 않겠냐’라며 학교를 만들자는 의견을 내어 ‘요나 스쿨’을 만들게 된 거죠. 그러고는 6개월 만인 2010년 5월에 다시 아프리카에 들어갔어요. 6월에 새 앨범 일본 투어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무리한 일정이었죠. 투어를 마치고 가라는 가족의 만류에도 한사코 그곳을 가더라고요.”

그가 남긴 일기를 보면 차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물이나 학교 건립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지원으로 유치원, 보건소 등을 건립해 큰 마을을 만들려 한 계획이 적혀 있다.

“용하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일인 듯해요. 그걸 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마음에 늘 걸렸어요. 박용하 이름으로 계속 지원하고 있는 팬들도 ‘요나 스쿨’에 대한 진행 상황에 대해 문의를 많이 해요. 그래서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지원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했어요. 이미 지난 4월에 ‘원러브’라는 자선단체를 발족했고요. 가능하면 2014년이나 2015년에 직접 저희가 아프리카에 가보려고 해요.”

박용하는 떠났지만 마치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 같은 기분 또한 든다.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하고, 가족도 열심히 박용하의 뜻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마음고생도 많이 했지만 위로받고 의지할 수 있는 팬들이 있어 그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슬픔보다는 박용하가 남기고 간 희망의 씨앗을 틔울 때인 것이다.



“과거에는 용하가 자신들에게 기쁨도 주고 용기도 줬으니 이제는 자기들이 어머니에게 그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다’라고 해요. 팬레터의 내용들을 봐도 ‘그가 없어 고통스럽고 힘들다’라는 내용보다는 ‘고마웠고 기뻤다.
늘 추억하며 살겠다. 라는 분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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