ジグフリード

真実を愛する心

正貨 (韓国語)

2021-03-06 12:10:54 | Unknown Knowns

*近いうちに日本語バージョンでもポスティングする予定です。

¶1 금본위제, 많이 들어보셨을겁니다. 주류경제학교과서와 인터넷검색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금본위제에 대한 설명을 요약해보면 대체로 화폐의 가치를 금의 가치에 두는 것이라 말하는데 그칩니다. 그래서 이 설명은 금본위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금본위제는 국내의 통화제도로써가 아니라 국가 간 무역에 필요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금본위제, 금지금본위제, 금환본위제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본위제는 나머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여지기도 해서, 의도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사실 금본위제(gold standard)는 금화(gold coin or specie)를 주조해 유통시키는 제도를 뜻합니다. 중국, 한국, 일본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정화(正貨)라고 부르는 바로 그 화폐를 말합니다. 화폐 자체가 가치를 품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올바른’ 돈인 것인데, 이것의 함의는 후술하겠습니다.

¶2 금지금본위제(gold bullion standard)는 금을 은행만이 보유하고, 은행은 금과의 교환이 약속된 은행권을 발행해 유통시키는 제도입니다. 금환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는 국제적인 속석이 있는 제도입니다. 금지금본위제를 채택한 영향력 있는 국가가 중앙은행권을 발행하고 이 화폐를 다른 나라들이 서로의 결제에 이용하되 그 발권국가에다 금과의 교환을 요구하면 발권 중앙은행이 이에 응해야 되는 제도입니다. 모두 화폐가치가 금에 결부돼 있지만 뒤로 갈수록 금과의 연결이 느슨해지는 편이지요.

¶3 아시다시피, 지금은 전 세계 주요국가들의 통화제도가 금 또는 다른 귀금속과 완전히 이별한 상태입니다. 1971년 닉슨대통령이 느슨하게나마 금과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중심의 금환본위제에서 금과의 교환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4 다시 금본위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금본위제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거래 자체에 관한 통화제도상의 한 개념이란 인상을 주지만 사실 국외거래, 즉 무역에 닿아있는 개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주권국의 화폐가 국경 내에서만 사용되는 것이라면 지금처럼 법으로 강제로 통용되도록만 하면 될 뿐 화폐의 가치를 어딘가에 묶어둬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법이란 강제력이 있어야 비로서 법인 것인데 국경을 넘어서면 이것이 잘 확보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많은 국제실정법이 있지만 법 자체의 강제력에 의해서라기 보단 국가 간의 힘의 논리에 따라서만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지요. 따라서 국가 간에는 '강제통용력'을 법으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 화폐를 이용한 거래에 있어 다른 제어요소가 필요했다는 것을 역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금본위제의 영어표현인 ‘gold standard’는 금을 ‘기준’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국가 간의 교역에서는 서로 화폐가 다르니 통화간의 가치를 비교해볼 기준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래서 이 기준을 통해 우회적으로 통용력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금본위라는 단어에서 ‘본위’라는 말에 적용된 명명법 자체가 약간은 기만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사실 전문분야 어디서든 그렇지만 재정과 금융에서도 대중이 실체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도록 의도된 명명법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공개시장조작’ 같은 것이죠.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상업은행(시중은행)이 이를 사들여 중앙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그럼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이용해 제공된 담보에 상응하는 돈을 창조한 뒤 은행에 쥐어줍니다. 이는 현재 돈이 ‘탄생’되는 과정을 가장 간단하게 묘사한 것이기도 하고, 전국민이 미래에 납부할 세금을 기반으로 돈이 생겨나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은행은 온전히 자신의 것에서 유래된 게 없으면서도 통화를 생성하고 분배하며 이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이건 굉장한 특권인데, 이 조작엔 ‘아무나’ 참여할 수도 없고 그 실질이 공중에 잘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공개’라는 단어는 뭔가 투명하고,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지요. 잠깐 옆길로 샜는데, 아무튼 금본위제는 무역에 관한 것이며, 이름 자체만으로도 대중적인 설명이 될려면 ‘금기준외환거래’ 정도가 더 적당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5 국가 간의 상거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매우 역사가 길고, 우리가 ‘역사’란 이름 하에 배워왔던 모든 것들이 여기에 결부된 것들입니다. 하지만 제도권 교육에선 역사과목에서 주로 지배계급의 치적을 연대기 순으로만 나열할 뿐 경제사와 과학사를 자세히 병행시키지 않습니다. 그렇게하면 우리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의 진짜 배경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일들도 대게 ‘돈’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심지어 과학분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인간관계에서의 갈등도 겉으론 이유가 다양한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대게 먹고사는문제, 즉 돈 문제로 귀결되고 말듯이요. 또 옆길로 새려 하는군요. 아무튼 무역의 역사는 짧지 않았고, 그렇다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금을 국제거래를 위한 통화제도의 기준으로 삼았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 이것을 폐지한 이유도 있었겠지요.

¶6 금화, 즉 정화를 만들어 쓰면 무역상의 잇점이 있습니다. 화폐의 소재 자체가 가치를 가지는 것을 만들어쓰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선 왜 하필 그 소재가 금이어야 했는지를 언급하는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현재 금이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이것이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금이 금속학적으로 가지는 우수함도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기전도도와 늘어나는 성질에선 금이 금속 중에서 최강입니다. 이러한 성질을 대체할 만한 다른 소재가 없어 스마트폰에도 금이 일부 들어갑니다. 이 물리적인 특징은 녹이 슬지 않는 금의 특성에도 기여합니다. 화폐가 녹이슬면 곤란하겠지요. 녹이 슨다는 것은 산화되어 부서지고, 그래서 ‘양’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지금처럼 액면에 적힌 숫자가 아닌, 그 자체의 양이 곧 가진 부의 양이 되는 돈을 시간에 지남에 따라 양이 줄어드는 물질로 만들어 쓴다면 소유자가 곤란해 할겁니다. 또 옛날에는 무역거래의 결과로 화폐를 배로 옮겨야 했을 것입니다. 바닷물에 빠져도 녹이슬지 않는 금은 좋은 재료였겠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특징을 가진 다른 금속이 있을 경우 굳이 금만을 소재로 고집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좋은 예로 은화가 있지요. 중국과 일본이 만들어 썼습니다. 알려진 바 대로, 주기율표 상 같은 축에 있는 원소들은 성질이 비슷합니다. 금, 은, 동(구리)이 같은 축에 놓여 있지요. 또 이 세 금속은 살균력이 아주 좋습니다. 화폐는 거래가 활발해지면 사람 손을 많이 타게 되는데 병균을 옮기기 쉬운 물질로 만들어지면 곤란하겠지요. 금과 은뿐 아니라 지금의 판데믹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접촉이 많은 문 손잡이나 엘리베이터 버튼 등에 구리(동)로 만든 필름이 붙여진 것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아직까지 올림픽에서 이 세 금속으로 만든 상을 주는 것은 이들이 화폐로 쓰였던 역사적 상징성과 더불어 그것을 가능케 했던 이러한 물리적 특성에 따른 우수성과도 관련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금과 은이 화폐로 쓰였던 가장 큰 이유는 적당히 귀하다는 점일겁니다. 너무 흔하면 금속을 많이 확보할 능력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화폐를 스스로 주조해 유통시켜 볼 큰 유혹이 될 것입니다. 또 이 금속은 창조해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대 과학으론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만들어 낸 주화의 가치보다 훨씬 더 커서 만들어 쓸 수 없습니다. 금과 은이 소재로 사용되게 된 배경에 대한 얘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이제 정화(금화)가 가지는 무역상의 잇점을 생각해 봅시다.

¶7 한국과 일본의 무역을 상정해보죠. 상품은 제가 좋아하는 일본의 맥주와 한국의 김이라고 합시다. 두 상품의 가격은 자국 화폐로 표시됩니다. 맥주 한 캔이 200엔이고, 김 한 봉지가 2000원인데 교역이 처음이라면 서로 상대 화폐의 가치가 어느정도인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1엔이든 1원이든 모두 금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실제론 실용상의 경도 유지를 위해 다른 금속이 섞여 있습니다만 아무튼 통화 한 단위에 들어 있는 금의 양만 알만 됩니다. 그러면 원하는 만큼 맥주와 김을 교환한 뒤 차액을 정산하기만 하면 됩니다. 맥주가 유별나게 맛이 좋아 총액(금의 양)상 김보다 더 많이 팔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한국의 원화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가게됩니다. 일본의 무역상은 이 원화를 다음 번 한국과의 거래를 위해 보관해 두어도 되지만 그대로 녹여서 일본돈으로 만들어 써도 되고, 심지어 금 함량에 대한 신뢰만 있으면 굳이 주조비용을 들여 바꿀게 아니라 원화를 일본에서 그대로 써도 됩니다. 중요한 건 공통의 기준, 즉 금이니까요. 실제로 정화가 유통되던 시대엔 한 국가에 여러 국적의 화폐가 유통되었습니다. 일본 안에서 원화를 기축통화인 미국달러를 거쳐 엔화로 환전하지 않으면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그것도 환전된 금액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지금의 원화(반대의 경우에 엔화)와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지요. 전자는 화폐가 가져야 할 속성 중 하나인 ‘통용성’이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후자는 가치의 ‘안정성’ 이라는 점에서 정화가 가지는 장점입니다. 특히 지금의 통화가 국경을 넘어 환전될 때 시간에 따라 가치가 변하는 것은 화폐가 가치를 품은 실물의 거래에 봉사한다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그 자체가 투기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누가 더 맛있는 맥주를 잘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도박을 잘 했느냐에 따라 부의 양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투기가능성은 화폐의 ‘양’을 누가, 얼마나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지의 속성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것에 관한 지금의 통화와 정화사이의 차이는 후술하겠습니다. 아무튼 ‘양’의 관점과는 별도로, 정화는 이런 투기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도박이란 확률적으로 상보적인 다른 것이 있어야 그 다른 것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원화와 엔화 모두 이름만 다를 뿐 모두 같은 금이어서 도박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지요.

¶8 윗 단락에서 언급한 정화의 장점들은 어찌보면 이제 얘기해 볼 남은 한 가지의 장점에 비하면 피상적인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위의 예에서, 일본의 맥주가 품질이 뛰어나 한국에서 수입한 김의 수입총액보다 더 많은 액수를 수출했다면 한국의 통화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원화도 엔화와 같은 ‘금’으로 만든 화폐이기에, 다시 말해 즉각 사용될 수 있는 화폐이기에, 일본에선 유통중인 총통화량이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 말은 일본의 물가가 상승한다는 뜻입니다. 단기간에 실물의 양보다 화폐의 양이 더 많아진 상황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일본 맥주의 가격도 올라갑니다. 당연히 맥주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고 수출이 줄게 됩니다. 여기까지의 제 설명이 정화 예찬론자들이 말하는 무역에서의 ‘자동조절기능’입니다. 아마도 국력차이에 의한 일방적인 무역에서의 우위가 종국에 겉잡을 수 없는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자동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뜻에서 하는 얘기인 듯합니다. 물론 어떤 텍스트를 봐도 자동조절기능의 당위에 대해 적어 놓은 것은 없고 제 추측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자동조절기능엔 반직관적인 면이 있습니다. 좋은 품질, 높은 생산량 등 열심히 노력해서 수출한 결과가 오히려 해당 국내상품의 대외경쟁력 약화를 불러온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찜찜한 결과입니다. 이 현상을 바로 보는데는 일전에 한국어로 출간한 저의 졸저 ‘통화제도에 의한 노예화 작동원리’를 쓰면서 알게 된 몇 가지 핵심 원리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폐쇄경제 내부에서, 그러니까 한 국가로 한정된 범위 내에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단순히 통화량이 증가해서가 아닙니다. 그 증가한 통화들이 ‘이미 존재하는’ 물건의 구매에 이용될 때 물가가 오릅니다.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중앙은행의 기본 임무 중엔 물가안정이 있는데, 바로 중앙은행이 하는 일이 통화가 증가했다 싶으면 이를 어딘가 이미 존재하는 물건에 들러붙기 전에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이 스스로 발행한 채권으로 폭증한 통화를 흡수해 가지고 있다가 천천히 할인해주거나 심지어 소각해 버리기도 하는데 이는 공중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위의 정화예찬론자들이 말하는 정화의 순기능 중 하나도 이 시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논리 속엔 수출로 이득을 본 국가에서 상대교역국과 힘의 균형을 맞춰 나가는 원인이 수출국의 물가상승에 있었습니다. 그 행간의 의미는, 그러니까 정화의 숨겨진 순기능은 바로, 무역으로 추가로 벌어들인 정화를 다시 새로운 실물의 창조에 쓰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물건의 구매에 이용할 때 그것을 벌하는 기능인 것이지요. ‘이미 존재하는 물건’의 대표적인 예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부동산입니다. 지금의 경제언어로 표현하면, 기업이 돈을 벌어 연구개발이나 고용창출처럼 경제생태계 내부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재투자를 하지 않고 주주와 본인(주주의 대리인)의 극단적인 이익추구를 위한 부동산 투기에 이용하는 것을 통화스스로가 징벌하는 셈입니다.

¶9 위에선 정화가 이용되었던 이유와 그 맥락을 얘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대로, 이 좋은 정화가 없어진 이유도 있을겁니다. 금화본위제에서 금지금본위제를 거쳐 금환본위제를 끝으로 세계경제는 금(또는 은)과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정화의 반대편에 있는 통화개념, 불환화폐(fiat money)를 인식해야 합니다. ‘불환’은 문자 그대로 바꿔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과 바꿔주지 않을까요? 본위화폐입니다. 본위화폐는 금이나 은과 교환할 수 있는 화폐를 말합니다. 그러니 위에서 열거한 금본위제의 가장 느슨한 형태인 금환본위제 마저도 아닌, 그 다음에 생긴 화폐를 말합니다. 즉,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법화(legal tender)를 뜻합니다. 법화는 문자 그대로 ‘법’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화폐입니다. 불환화폐의 영문명칭인 ’fiat’는 라틴어로 “그것이 생겨나거라(may it be made)”를 뜻합니다. 그저 말씀 한 번으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성서의 창세기에서 태초에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고 하신 것과 똑 같은 말입니다. 정화인 금이나 은처럼 위에서 언급한 여러 특성에서 비롯된 가치상의 실체 없이 법이 정한 강제유통력에 의해서만 그 존재와 가치가 생긴것이지요. 물론 대게의 국내법엔 ‘우리나라 화폐는 법화다’고 명시적으로 밝히는 조항이 없습니다. 한국의 예를 들자면, 중앙은행의 설립이나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중앙은행권을 ‘유일한’ 결제수단으로 정하고 민법이나 상법 등에서 이 결제수단으로 결제를 원하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처벌된다고 하는 식으로 우회적인 형태의 산재된 조문들이 결합해 ‘강제유통성’이 부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역시 법화 개념이 공중에 정확히 인식되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주류경제학이나 법학에서도 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이미 ‘전제된’ 개념으로 언급할 뿐이지요. 왜그런가 하면, 정화와 대비되는 법화의 중요한 특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특징은 위에서 언급한 금본위제의 진화형태, 즉 금화본위, 금지금본위, 금환본위로 변화했던 과정이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금화본위제와 금지금본위제의 차이점은 실제로 금이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금과 교환이 약속된 화폐만이 이동할 뿐이었지요. 대게의 경제사나 역사 책에선 금이 무거워서였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정한 동기는 금지금본위제를 시험적으로 운영해 본 경험에서 나온 것이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금교환권’을 이것과 바꿀 수 있는 금의 양보다 더 많이 발행할 수 있다는 걸 알게된 것이었죠. 금교환권이라 하지만 실제로 금과 바꿔가는 사람이 일정비율 이하라는 통계적 경험칙과, 금교환권이 발행된 규모는 발행자만 알 수 있다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건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는 은행업의 기원입니다. 제가 강조하는 부분은 통화의 ‘양’ 입니다. 금화본위제는 금이나 은을 추가로 채굴하지 않으면 통화량을 늘릴 수 없는데 반해, 금지금본위제나 금환본위제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부족하거나 심지어 없는 것을 충분하거나 있는 것처럼 속여 발행된 금교환권이 이제는 버젓이 부분지급준비금(fractional reserve)이란 이름의 합법제도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통화의 ‘양’을 늘려야 했을 당위에 대해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 역시도 교과서적인 대답이 존재합니다. 인구증가로 경제규모가 커지고, 실물생산이 늘어나면 이를 유통시킬 충분한 양의 화폐가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이 역시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화폐는 현대 경제학의 용어로 ‘지급’과 ‘결제’가 주요 기능인데, 사회활동(경제)의 주체이자 객체인 사람을 움직이게 할려면 그 대가로 뭔가를 지급해야 하고, 상품이나 서비스가 생산되고 유통되도록 거래가 일어나게 하려면 결제가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그래서 충분한 ‘양’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화와 법화 두 화폐 간에 통화를 늘리는 방식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자는 금이나 은이 추가로 존재해야 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많이들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입니다. 정화만이 유통 중이라면, 화폐는 사회 구성원에 골고루 나뉘어져 소유되게 됩니다. 혹여 화폐가 소수에게 유난히 집중되어 있다면 그들은 실질가치가 높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러니까 사람들의 후생에 실제로 큰 기여를 하는 사람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그런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만 사람들은 ‘각자가’ 소유한 화폐를 지불할테고, 초유의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분산되어 있는 화폐의 소유와 그 처분을 누군가 일률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다시 말하면, 정화는 인간이란 존재에 무엇이 가치 있는 지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하게 하는 민주성, 화폐가 반드시 실질가치를 쫓게하는 실체성, 그리고 그 가치교환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게 하는 동시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정화도 ‘양’의 증가가 필요한 시점이 올겁니다. 아무리 정당한 방법으로, 실제로 가치있는 것을 생산한 소수에게 화폐가 집중되었다 할지라도 그 소수가 자신에게 필요한 소비를 통하여 사회에게 재공급하는 화폐의 양은 극히 미약할 것입니다. 이 때는 다른 이들 중에서 높은 생산성과 혁신을 가져올 능력이 있다해도 사회 전체에 유통하여 그것을 공유할 화폐가 부족하다면 발이 묶여 버리게되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물물교환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사실 이 상황은 제가 극단적인 통화흐름의 정체상황을 가정해 본 것이고 이런 통화의 집중이 일어나지 않게 경제구조를 디자인할 수도 있으며 그 구조 하에서는 통화의 집중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습니다. 이 글의 전체 맥락과 관련해서 이 부분의 함의는 후술하겠습니다. 다만 이번 단락의 주제에 한정해서 이렇게 가정해 본 상황은, 제가 언급했던 바람직하게 디자인된 경제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고, 그렇다면 금화본위제에서 금지금본위제로의 이행에 아주 큰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금화대신 금화교환권의 발행이 가지는 속성이 부분지급준비제를 가능케했고, 이는 아주 손쉽게 통화를 증가시킬 수 있도록 하니까요. 문제는,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존재가 이 쉬운 통화증발을 앞서 언급한 문제의 해결에만 선용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임의로 통화증발이 가능한 제도로의 이행, 즉 금화본위제의 폐지는 엄청나게 큰 유혹이었던 것이지요. 이제 여기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합니다.

¶10 금지금본위제에서 통화증발이 가능한 이유는 금과 교환할 수 있는 권리증서, 즉 중앙은행권의 발행 때문이었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 증서를 제출해 실제로 금을 인출해 가는 경우는 많이 없어 가능했던 부분지급준비금제도 때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부분지급준비금제도에 의한 기하급수적인 통화증발 메커니즘은 다들 알고계실 테니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를 알고계시다면 시중은행이 막연히 그냥 돈을 찍어내 통화를 뿌리지 않는다는 것도 아실것입니다. 하지만 후자에 관한 상세는 이 단락의 요점에 닿아있어 한 번 언급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금교환권의 발행주체는 형식적으로 중앙은행이지만 실제 그 발행이 일어나는 창구는 동네마다 보이는 은행들, 즉 일반 상업은행들입니다.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이 과정의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는 주택담보대출일듯합니다. 집은 누구나 필요로하고,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며, 은행 빚을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미래에’ 생겨나 자신의 것으로 예정된 주택의 소유권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주택구입대금을 대출받습니다. 지금까지의 ‘통화증발’이라고 표현 했던, 금화본위제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족한 통화량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화폐(통화)를 만들어 내는 것의 실체, 즉 새로 사회에 추가되는 통화가 바로 이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흔히 주류경제학에서 경제의 세 주체를 가계, 기업, 정부라고 가르치고 있죠. 이건 현재의 법화 체계 아래서 새로운 통화를 창출케 하는 주체에 따른 분류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택담보대출은 가계부문의 통화창출 중에서 액수 면에서 가장 크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것을 예로 든 것이었고요. 먼저 가계부문의 예를 든 이유는 본질은 같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머지 두 부문을 얘기하기 위함입니다. 기업과 정부도 마찬가지의 과정으로 새로운 통화를 창출합니다. 다만 은행에 맡기는, 아니 저당잡히는 담보가 다를 뿐입니다. 또 전문성이나 규모가 가계와 달라 일반 상업은행뿐 아니라 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별도의 전문은행이 더 있을 뿐입니다. 일본을 포함한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명칭이 다를 뿐 비슷한 기관들이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가 은행에 제공하는 담보는 두 주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도 있지만 ‘미래에’ 가지게 될 자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가 앞으로 영업해 벌어들일 수익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인 ‘매출채권’ 같은 것입니다.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인 회사채도 본질은 ‘미래에’ 생길 자산을 맡기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만약 어떤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여 자금, 엄밀히는 통화를 조달해 사무실을 추가로 임차하고 새로운 직원을 뽑았다고 합시다. 그 새로 생겨난 돈, 그러니까 ‘빌림으로써’ 새로 생겨난 그 돈의 상환은 신규사업으로 벌어들일 수익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글을 읽는 분이 막 대학을 졸업해 취업하신 분이라면, 또 거기서 번 돈으로 생활하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그 일자리로 말미암아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일자리는 급여와 같은 돈이 생겨났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은 이미 깨달으셨을 겁니다. 애초에 회사가 빌린 돈은 은행에서 나왔고, 그 은행의 주인은 은행의 주주들이고, 그 주주들은 모두 사적 집단이며 심지어 외국인들도 있습니다. 은행의 회사에 대한 대출결정은 그 주주들의 뜻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내린 것입니다. 그러니 정치인 뽑는 투표를 잘 한다고 해서 취업난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들이 입법과 행정수단으로 사적집단의 통화창출 의사를 유도해 줄 국내적 환경을 조성해 간접적으로, 단기적으로 취업난을 해결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절대 다수이고 사적집단은 극소수입니다. 통화창출을 유도해 줄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란 것은 그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일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여기에 관한 것은 재미난 이야기가 많지만 자꾸 옆길로 새는 것 같아 이정도만 하겠습니다. 다시 통화창출에 제공되는 담보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가계와 기업까지 살펴봤습니다. 둘 다 미래에 가지게 될 자산, 다시 말해 ‘지금은 없는 것’을 맡기고 은행을 통해 새로운 통화를 창출한 다음 자신이 그것을 받아서 쓰는 겁니다. 이제 정부를 얘기할 차례군요. 똑같습니다. 기업의 예에서 회사채를 예로 들었듯이, 국가의 경우에도 국채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똑같다’고 말한 의미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듯합니다. 화폐생성과정만 같을 뿐 가계와 기업과 달리 국가에 통화를 창출해 주는 주체가 상업은행이 아니라 중앙은행이라고 믿거나 국가 스스로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아닙니다. 앞의 두 경우와 같습니다. 가계, 기업, 정부 모두 민간은행에 담보를 제공하고, 그 담보를 중앙은행이 할인해 중앙은행 명의의 화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단지 현대 금융에선 이 담보들이 증권화되어 유통되는 과정이 워낙 복잡해 가장 거시적인 흐름이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또 국고금계정이 중앙은행에 개설된 것으로 알려져 착각을 주는 것이기도 한데, 사실 상업은행들 또한 중앙은행에 모두 계정을 가지고 있고 국가의 계정도 이것과 쓰임이 같은 계정일 뿐입니다. 국채는 다른 담보들에 비해 국가의 세금징수권으로 원리금의 상환이 보증되므로 은행들, 즉 사적 집단의 입장에선 가장 안정성이 크다는 의미에서 안전자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떼일 위험이 적어 안전하기에, 수익률은 가계나 기업에 대출할 때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영규모를 고려해야 합니다. 사적 집단에겐 엄청난 이익의 원천인 셈이지요. 지금 전세계적인 감염병 사태, 이른바 판데믹으로 국가가 빚을 내어 생계가 어려워진 국민들을 돕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감염병사태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정부가 현금지원도 하고 세제혜택도 주고 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습니다. 처음엔 예산을 쥐어짜 이 급부행정의 재원을 마련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정부도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원대상의 범위와 총액 면에서 전례가 없었던 초대형 정부지출이었지요. 여기에 대해 야당과 언론은 선거를 대비해 결국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빚인 나라 돈으로 국민들에게 선심을 쓰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빚잔치 프레임은 정작 국민들이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결국 이 돈은 현재 납세주체와 경제공동체인 그들의 아들 딸들, 그리고 그들의 후대가 갚아야 하므로 선심은 국민들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금융세력에 쓰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 급부행정을 위해 발행한 채권의 규모가 흡사 국가가 전시에 발행하는 그것의 규모와 비슷하거나 더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전에 제 한국어 소셜미디어에 지금의 판데믹이 새로운 개념의 ‘전쟁’임을 제시한 영시 한 편을 적어 올린 적 있는데 단지 전쟁당사자와 전장의 모습만 다를 뿐 그 기저의 경제적 침탈과 얻게 되는 전리품, 이를 위한 금융수단 등의 모습은 꼭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의 급부행정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요, 지금처럼 판데믹에 완전 무방비로 직격탄을 맞는 서민들, 특히 취약계층에의 직접적인 현금지원은 잘 하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그 재원을 이 전쟁 아닌 전쟁의 수익자로부터 얻어야 합니다. 그냥 이렇게만 이야기해 두고 싶군요. 또 옆길로 새려고 합니다. 정리하면, 가계와 기업에 이어 정부 역시도 금화본위제를 폐지한 뒤 새로운 법화체제 아래서 ‘새로운’ 통화를 창출하는 방법은 마찬가지로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담보로, 미래에 얻을 것을 맡겨 빌리는 것입니다. 이 단락의 얘기는 이러한 통화증발 방식이 증가된 화폐의 선용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보증이 안 됨을 넘어 심각한 오남용과 악용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1 제가 통화증발 과정에 대한 묘사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화폐란 것이 거래와 유통, 가치저장 등의 대상이자 본래 그것의 존재 이유로서 봉사하는 실질가치를 품은 어떤 실체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먼저 나온 돈에 사후적으로 갖다 붙는 셈이지요. 이건 단순히 앞뒤가 바뀌어도 별 문제없는 두 사건 간에 시간적인 선후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실체를 예정함으로써 화폐가 발행되기에, 단순히 생각하면 실체 없는 화폐가 있을 수 없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먼저나온 화폐가 실체를 구성해 나가는 방식인 것입니다. 특히 예측이 어렵고, 또 바로 이러한 속성 때문에 이익이 큰 분야에의 투자, 그러니까 새로생긴 화폐를 새로운 활동에 투입하는 행위에 있어 더욱 그러한 특징이 도드라집니다. 예컨데 미국인이 일본 규슈의 어떤 광산에 투자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투자시점에 광물은 사용가능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화폐가 먼저 나와서 그것으로 광부를 고용해 부리고, 기계를 임차해 사용해 봄으로써 비로소 그 사업의 양상이 구체화됩니다. 광부와 기계임대인은 현대 금융의 기작을 모르기에 자신이 먼저 돈을 받았기에 노동과 자산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앞서 든 대졸 취업자의 착각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입니다만, 여기서는 화폐가 실체를 ‘견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것입니다. 이것의 본질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은 좋게 얘기하면 모험이고, 조금 삐딱하게 얘기하면 도박입니다. 위에서 든 예처럼 최종생산물이 광물이고, 그 광물이 인간의 생활을 윤택케 하는 물건의 원료로 쓰이고, 또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에게 선량한 일자리를 창출해 준다면 그건 좋은 일입니다. 여기에 발행된 화폐는 최종적으로 해당 광물에 안착하게 되고, 그건 ‘새로’ 생겨난 것에 들러붙은 것이어서 앞서 언급한 인플레이션의 기작 대로 기존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부를 그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에 갉아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새로운 통화를 창출받은 사람이 ‘적정한’ 이윤을 챙길 때를 전제한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험과 도박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위의 예에서 그 광물이 총이나 탱크와 같은 군수물자 생산을 위한 것이었다고 상황을 바꿔봅시다. 미국인은 전시 상황이라 광산의 채산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원료를 먼저, 그리고 빨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건 자금을 투입해 일을 벌여봐야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나온 원료를 이용해 무기를 만들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전쟁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미국인은 패전국이 보전해 줄 생산비뿐 아니라 엄청난 배상금과 패전국 내에서의 사업이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도박이라 부릅니다. 제가 도박의 예로 전쟁을 예로 든 건 이유가 있습니다. 이 전쟁이야 말로 법화제도라는 통화증발기계의 발행능력을 거의 최대치로 가동할 수 있고, 그렇게 발행된 막대한 양의 통화는 실로 엄청난 양의 이익을 가져다주기에 극단적인 도박으로써의 통화제도 악용에 관한 적절한 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해당 도박판의 참여자가 베팅한 곳이 이겼을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도박이란 일반명사를 써 얘기했지만, 사실 이는 진실로 최선을 다한 후에 남겨진 ‘우연’에 투자의 성부를 맡기는 건설적인 모험이나 좀 덜 파괴적인 도박판의 이야기일 뿐이고, 실제 국가 간의 대규모 ‘전쟁’ 같은 극단적인 경우는 ‘사기도박’에 가깝습니다. 미리 판을 ‘설계’하고, ‘호구’를 선정한 다음 조금 따게 해 줘서 끌어들인 뒤 크게 미끼를 물면 그 때 사정없이 벗겨 먹는 것는다는 점에서 그 모습이 꼭 닮았습니다. 상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과 관련된 예만 든다면 1905년의 러일전쟁이 그랬습니다. 아무도 일본이 이길거라 생각지 않은, 객관적인 전력상 일본이 절대열위의 상황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지원주체를 밝히지는 않겠습니다만, 일본의 승리 비결은 위에서 언급한 통화증발 메커니즘에 있었습니다. 임의로 창출할 수 있는 통화를 어느 쪽에 대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 것입니다. 이는 위에서 든 광산개발의 기작과 같습니다. 일단 실체 없이도 화폐가 먼저 세상에 나와 광부와 기계주인을 부려서 광물을 캐낸 뒤 거기에 화폐가 안착하듯, 전쟁도 ‘먼저’ 무기를 만들고, 군인을 부리고, 이를 이길 때까지 밀어부치면 빚으로 탄생한 화폐가 비로소 거기에 안착해 도박판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큰 유혹입니다. 금본위제에서 이탈해 야금야금 금에서 멀어져 결국 현재의 불환화폐(법화) 제도로 진화해 온데는 커지는 경제규모를 감당할 통화량 증가가 용이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이렇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다 줄 도박을 가능케 하는 제도가 필요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사실 금본위제 하에서도 통화증발이 필요할 경우 이에 완전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금생산량을 늘여 실체가 있는 생산에 통화로 공급하면 되고, 그 생산이 여의치 않으면 유통중인 주화를 회수해 현대적인 용어로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면 됩니다. 회수와 재주조의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만 지금까지 언급한 불환화폐의 부작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요. 또 화폐단위가 재조정되면 대외적으로 상품가격이 낮아져 수출이 늘고 다시 교역국으로부터 금이 들어오게되는 정화의 황금률같은 자동조절장치가 작동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금의 매장량이 유독 많은 지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금의 생산량이 어떤 국가의 우연한 지리적 행운에 결부되어 일시적으로 불공정한 구매력 증가로 이어지더라도 국내적인 물가조정을 거쳐 무역을 통해 다시 자동조절장치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금본위 하에서도 유통중인 금화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할 만큼의 이벤트는 산업혁명과 같은 말 그대로 ‘혁명’적인 일 외에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환화폐 체제에서 임의로 증발된 통화가 다시 통화증발을 부르는 핵폭발의 연쇄반응 같은 통화증가를 통해 이 과정의 이니셔티브를 쥔 소수집단에 통화가 집중되고, 이 때문에 부의 불평등한 분배와 양극화가 나타나고, 그래서 엄청난 총통화량(총유동성) 속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진 돈의 구매력 저하와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돈이 부족해지는 것이지요. 이 금융통화체계의 내부자들인 소수집단은 임의로 늘릴수 있는 통화를 이용해 실제로 사람을 부리는데서 그 제도의 의미가 완성되기 때문에 부림을 당하는 사람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물가를 유지해 주어야 합니다. 중앙은행의 물가안정기능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또 이는 동경 시내에 집 한채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예들의 노예됨을 영속시키기 위해선 그들의 생필품가격이 안정되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생필품가격의 상승분은 어디에선가 흡수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왕에 불가피한 상승분을 부동산에 흡수시켜 자신들의 부를 증가시키면 꿩먹고 알먹기가 되는 것이지요. 일본은 세계제일의 초고령사회인데다 인구도 10년 이상 연속으로 감소하고 있고 빈집도 많다는데 희한하게도 동경의 집값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반대로 갑니다. 이것은 조금 전에 말한 불환화폐의 핵폭발 연쇄반응과 관련있습니다. 실체 없이 세상에 먼저 나온 통화가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자산이 되고 이 자산이 다시 통화창출의 근거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한 번 이 통화증발기계를 사용해 아무 것도 가진것 없는 상태에서도 사람과 물자를 모아 어떤 임계점만 넘겨 놓으면 그곳은 비가역적으로 연쇄폭발하는 통화의 핵폭발 현장과 같은 곳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세력에겐 스스로를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고, 그러한 금권으로 사람을 지배토록 해 주는 이 장치야 말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동시에 영원히 수호해야 되는 것이며, 그래서 사람들이 실체를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12 이제 금본위제에서의 화폐인 정화가 금본위제를 이탈한 화폐인 법화로 바뀐 배경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얘기한 듯합니다. 글의 내용에 동의하신다면, 꼭 귀금속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금으로 만든 돈이 왜 정화(正貨)인지, 그러니까 그것이 왜 ‘올바른 돈’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이제 아실겁니다. 그렇다면 바른 돈의 반대편에 있는 현재의 불환화폐의 명칭은 법화가 아니라 ‘악화’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의 인식과 사고는 언어의 영향을 크게 받기에 어떤 개념의 명명법은 참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악화’란 명칭은 지나친 악마화가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악화’란 단어는 저만 사용한 게 아닙니다. 일찍이 그레셤이란 사람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지요. 물론 제가 지금까지 전개해 온 담론과는 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입니다만, 그 결과만 놓고 볼 때 악화가 양화인 정화를 몰아낸 것은 똑 같은 것 같습니다. 두 개의 주화중 액면가는 같지만 소재가치가 더 적을 뿐인 한쪽의 주화를 가리켜 ‘악화’라 부를 정도였으니 소재가치가 아예 없는 법화를 악화로 부르는 건 지나친게 아닌 것입니다. 저는 법화만큼 해악이 크지만 그 개념이 공중에 거의 인식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장치로써 법인격을 꼽습니다. 둘다 악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권위와 존중의 대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법’자가 들어가 있다는 묘한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 공통점은 단순히 명칭에서만 유래된 것이 아닙니다. 법화가 금이라는 진짜 실물 없이도 임의로 통화량을 늘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면 법인은 진짜 사람 없이도 그 늘어난 통화를 사람의 권리처럼 집행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환상의 콤비였던 셈이지요. 자고로 돈이란 건 ‘모였을 때’ 힘을 갖습니다. 모인 돈은 자석처럼 또 다른 돈과 사람을 끌어들입니다. 모인 돈을 굴려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극단적인 예로 위에서 전쟁을 들었습니다. 전쟁은 나쁜 짓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하고 도덕적인 비난을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법인입니다. 법인에게 여러 자연인들이 돈을 모아주고, 나쁜 짓을 시켜 큰 돈을 번뒤 다시 그 뒤의 자연인들에 나눠주되 모든 위험은 ‘법적인 행위자’인 법인이 지도록 하는 것이지요. 법화와 법인격이 처음 생겨날 땐 교회의 권력이 강했습니다. 사람은 범죄뿐 아니라 교회법에서 엄격히 금했던 고리대금업을 해서도 안되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돈이 돈벌게 하는 것’이 돈 버는 최고의 방법임을 그 때도 알았기 때문에 교회법을 피해 갈 법인격이 필요했을겁니다. 개인적으론 ‘제도’ 차원에서 인간불평등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영향력이 큰 기원으로 법화와 법인을 상정했고, 이 둘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 개념 창안의 꼭대기에 교회법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 때 가톨릭 신앙을 잊고 무신론에 경도돼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후 여기 모두 다 열거 할 수 없는 신비한 체험과 가톨릭이 두 장치의 해악에 맞설 수 있는 다른 좋은가치가 많음을 알았기에 다시 돌아 올 수 있었지만서도요. 후자에 관해선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론 법인과 법화가 처음 교회에서 생겨날 당시엔 절대권력에 맞서 절대다수의 피지배자들을 구휼하는 수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오남용을 넘어 악용되기에 이르렀고 되려 신흥세력의 지배수단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노동운동을 하다 완장을 차게되자 그 노동자들이 쥐어준 권력으로 부를 축적해 되려 노동자를 착취하게 된 것과 비슷한 경우랄까요. 이 정도로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러니 선과 악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희석해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나쁜 세력과는 달리, 저는 이 둘을 선험적으로 명확히 구분된 것이라 여기는 성도로써 이 둘을 악화와 악인으로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법화와 법인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기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악인이 양인을 구축하게 된 것도 이상할게 없는 현실이지요.

¶13 사실 이글은 제 출생에 관해 들여다보다 촉발된 것입니다. 이 작업엔 역사적인 사실들, 그리고 이웃나라와의 관계 등을 알아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원래 역사엔 관심이 없었고 잠깐 기록학을 공부해 보니 이 분야도 꽤 많은 거짓을 잉태하고 있단 생각에 외면하고 있었지만 친부모님과 저 사이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탐구욕이 그 왜곡된 역사마저 들여다보게 하더군요. 그 이웃나라라는 곳은 국경을 맞댄 북한과 그 넘어의 중국,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도 있습니다만 대만과 일본에 특히 관심을 두었습니다. 대만은 중국을 떼 놓고 생각할 수 없기에,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를 탐구하던 중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 특기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것이고요. 그 얘기를 하고자 금본위제를 먼저 얘기한 것입니다.

¶14 멀게는 1945년에 시작된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계기였기도 하고, 좀 더 가까이는 중일전쟁의 계기였기도 한 사건이 1931년에 일어난 만주사변입니다. 이 사건은 일본이 만주를 중국침략의 병참기지로 삼기위해 일으킨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복해 말씀드리지만 언어는 사람의 사고를 가두는 측면이 있습니다. “중일전쟁”은 그 명칭으로 인해 당연히 중국과 일본의 싸움으로 인식됩니다. 그 배경도 일본의 야만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만주사변 전후로 일어났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과 미국의 주요교역상대였던 유럽국가들, 그리고 일본의 화폐체제는 주로 금본위제에 일부가 금은복본위제였습니다. 그런데 만주사변 1여년 전인 1931년, 미국에선 스무트-홀리관세법이 통과됩니다. 이 법의 요지는 자국 농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수입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엄청나게 올린데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수입관세는 교역상대국의 수출을 좌절시킵니다. 유럽국가들의 대미수출이 막히고 급기야 이들도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외국의 농산물에 대해 문을 걸어잠근겁니다. 공교롭게도, 그 해 일본에 대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출길이 막혀있으니 농산물은 국내소비로 돌릴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농산물 가격은 대폭락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역사책엔 잘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경제사쪽에선 이를 다루는 문헌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제사쪽에서도 잘 언급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스무트홀리관세법 시행 직후 유럽의 주요국가들이 금본위제를 폐지한 것입니다. 그 직후엔 일본이 금수출을 정지합니다. 이 두 사건의 연속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일본은 이제 더 이상 자국으로는 금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은 것입니다.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로 말입니다. 또 일본정부는 미국의 조치로 자국 농민의 공분을 사버렸고, 급기야 농민들은 새로운 경제적 돌파구가 있는 만주침략의 중심세력인 군부를 지지하기에 이릅니다. 실제로 1932년 일본군부는 만주국을 세웠는데, 여기서 또 역사책이 잘 언급하지 않는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해 만주국은 은본위제의 화폐제도를 성립합니다. 당시 중국이 은본위제 국가였던 것, 그리고 일본이 새로운 무역출구를 찾아나선 것과 무관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입니다. 미국의 책동은 여기서 끝난게 아닙니다. 일본에 했던 짓을 그대로 중국에 적용합니다. 미국은 1934년 6월 은매입법을 제정합니다. 1년 전 주요 은생산국들과 은매입협정을 체결한 후에 벌인 일입니다. 이로써 전세계의 은이 미국에 집중됩니다. 미국에서 은 값이 가파르게 오르게됩니다. 은을 미국에 팔면 큰 이익이 되므로 중국의 은도 미국으로 빨려들어갑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일본과 똑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농산물, 즉 실물의 생산량은 일정한데 화폐, 즉 은화가 쓸려나가자 농산물 가격이 급등합니다. 이는 중국농산물의 대외가격경쟁력이 하락함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은화는 이미 빠져나갔고 수출은 막혀 들어올 은화도 없어졌습니다. 자금흐름이 완전히 끊겨 몇 년 전의 일본에서처럼 기업들이 대거 파산합니다. 이는 분열 중이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쳐 항일전에 전력을 다하도록 하는 큰 동인이 됩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할 당시에는 중국과 일본 모두 금은본위제에서 모두 이탈한 상태였습니다. 법화제도라는 도박판이 비로소 동아시아에 깔린 것입니다. 이제 무제한 통화증발을 통해 중일 양쪽 모두에 무기를 사게 하고 병사를 먹이게 하며 석유를 수입케 해 세력에겐 산업을 키우면서 동시에 이 두 국가엔 엄청난 빚을 지우는 일만 남았습니다. 전쟁은 오래끌되 승부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 계획에 화답하듯 일본이 1941년 진주만을 공습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진주만공습도 미국이 일본의 해외자산을 동결해 유도된 일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일으켰던 책략과 같은 것이었지요. 한중일은 여기에 말려들어 1945년이 되어서야 일본은 핵폭탄 두 방을 맞고 패전했고, 중국은 둘로 나뉘었으며, 한국은 이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은 5년 뒤에 다시 새로운 전장이 되어 쑥대밭이 된 뒤 중국과 일본을 갈라세우는 지리적 분기점이 됩니다. 마치 음극과 양극을 절연시켜주는 스위치처럼 두 개로 쪼개져서 말이지요. 한중일 중 승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승자는 이이제이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두 세력을 이 둘이 서로 싸우게해 손쉽게 제거해 버리고, 그들의 제국주의적 침투수단인 금융제도, 즉 법화체계를 이식해 비전투적인 착취체계를 완성한 서구금융세력뿐이었습니다.

¶15 제 글의 전반적인 내용에 동의하신다면 역사책의 내용들이 가장 큰 틀에선 패권을 위한 ‘제도’의 이식에 닿아있음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의 국지적인 분쟁 외엔 그것에 비견할만 한 초대규모, 전지구적인 물리력 충돌이 없었던 것은 패권국과의 전력 초격차와 핵억지력에 의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이미 언급한 바 대로입니다. 역시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중동분쟁이 금융통화제도와 연결되는 또 다른 ‘본위제’의 재미난 한 축이 미국이 전세계의 석유구매를 미국달러로만 가능케 했던 작업과 이로써 탄생된 이른바 페트로달러체제인데 이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제도상의 본질과 그 진화의 끝은 이미 다 언급한 것 같으므로 중간과정이었던 석유본위제에 관한 지난한 묘사는 생략토록 하겠습니다. 현재상태(status quo)는 총을 쏘고 폭탄을 떨어뜨리느라 침략자의 야만성을 노출해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총과 폭탄의 역할은 법화가 해줍니다. 뿌리는 만큼 많이 죽어나가는 것과, 그걸 쥔 쪽이 살아서 막대한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 절묘하게 닮아있지요. 이러한 악인의 역할은 다른 악인이 해 줍니다. 법으로 만들었다는 바로 그 사람말입니다. 이 사람은 아무리 잘못해도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벌금은 그저 손쉽게 만들어 낸 돈으로 내면 됩니다. 세금은 언제든 다른 나라로 도망가 내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침략지 어디서든 악인은 충실한 그들의 하수인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건 주인이 보도록 정해놓은 것만 열심히 배우고 익힌 순서대로 하수인에게 직분과 임금을 주면됩니다. 그럼 하수인들은 어깨에 힘을 주는 것에 비례해 진실과 멀어져 주인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그들끼리 자율규제를 하게 돼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제 더 이상 땅을 따먹고, 자원을 빼앗고,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가 국민의 생존에 필요한 물자의 수급을 무역에 의존하게 만들고, 그 무역거래를 국제결제시스템을 통해서만 가능토록 하되, 시스템의 패권을 소수국가에 쥐도록 만들어짐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저에 법화제도가 있으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금화본위에서 무본위로 옮겨 온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16 출생에 관해 알아보다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정리를 해 볼까 합니다. 한중일은 어떤 세력이 전지구적으로 새로운 질서체계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벌인 이간질에 넘어가 희생되었고, 그 결과 그들의 체계에 편입되어 노예화 되었습니다. 그러니 주제 넘는 의견입니다만, 한중일은 무조건 잘 지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적으론 모든 나라가 잘 지내면 좋겠지만 단번에 이루어지는게 아니니 우선은 큰 덩어리 간의 힘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럴려면 동아시아에서 유럽연합을 넘어서는 연대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아예 한중일이 한 국가처럼 나아가는 절차를 밟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세 나라엔 세 나라의 분열을 획책하도록 심어진 사람들이 있는 듯 합니다. 얼마 전 김치종주국이 중국이라는 주장을 퍼뜨린 일이라든지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시도 때도 없이 문제삼는 부류들 말입니다. 자존심 아닌 자존심이 부강한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한국과 일본에는 중국적 기원을 배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데도 말이지요. 솔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징용과 위안부 문제도 위에서 언급한 대로 진정한 원인제공자가 누구인지 안다면 한국과 일본은 싸울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연대를 해야 하는 일이니 말입니다. 저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엄청난 도발적인(?) 얘기를 할 수 있어서 말이지요. 다음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글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문자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한글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을 유독 한자가 없어진 나라로 만든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한자어에서 유래한 단어는 여전히 엄청나게 많이 쓰고 있으면서도 더 이상 한자로 표시하진 않지요. 국가간의 통합에 언어유사성은 엄청난 이점입니다. 정확히 중간에 끼인 나라가 독창성을 발휘함으로써 그 이점을 아주 효율적으로 포기하고 있는 셈이지요. 서구인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다음에야 그들과 다른 민족(인종)의 성취를 칭찬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서구인들이 한글과 그 창제자를 극찬해 마지 않는 것은 좋아할 게 아니라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북한, 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사를 끼워넣기엔 지나치게 거시적인 담론인 것 같습니다만, 친부모님과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궁극의 이유도 지금까지 언급한 문제들에 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7 마지막으로, 눈치가 빠른 분이시라면 이 블로그의 지난 포스팅들이 또 다른 금융화폐제도로의 이행을 다룬 것임을 아실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물리적인 전쟁이 필요 없어진 시대’는 법화제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거의 모든 금융통화장치를 디지털화 한데 힘입은 바가 큽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판데믹은 그 디지털화의 완성으로 새로운 ‘스탠다드’의 마중물을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떤 ‘본위’제로의 이행인지는 이미 언급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인지 그 반대의 것인지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길게 묘사했던, 금화본위제에서 법화제도로 바뀌면서 가능해 진 것들이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수행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법화제도에서 직접영향을 받는 것은 국가나 기관단위로, 국민들에겐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체제라면 다음 번 스탠다드는 개인에게 바로 영향을 주는 체제인 것이지요.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18 제가 지금 지내고 있는 동네엔 한 행정단위에 한국은행부산지점, 한국거래소, 재한유엔기념공원, 유엔평화기념관, 그리고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모두 있습니다. 여긴 한국을 넘어 동북아 금융허브를 표방하는 이른바 금융거점으로의 육성이 예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개인적으론 위에서 언급한 중앙은행(한국은행)의 공개시장조작에서 ‘조작’의 매개가 되는 각종 증권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한국거래소를 현대금융의 핵심기관으로 보는데요, 바로 그곳도 서울이 아닌 제가 머무는 동네에 있습니다. 전쟁이 근현대 금융통화제도에서 어떤 의미인지도 위에서 언급했습니다. 한국전쟁과 그것의 수행주체인 UN의 활동을 기념하는 곳도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의 징용문제가 한일관계 분열수단이라고 했는데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도 이곳에 있습니다. 금융이란 수단, 전쟁이란 수단, 이이제이의 수단이 공교롭게도 제가 지내는 곳에 모두 모여있는 셈이군요. 저는 단지 겨울의 추위를 피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이곳에 온 것뿐인데 말이지요. 제게는 이런 우연이 많이 일어납니다. 지금 글을 마치고 난 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게 될 숙소 인근의 해변이 일본 니가타를 바라보는 것도 비슷한 우연이라 생각하면 너무 억지스러울까요? 그럼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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