ホウケイのクジラ釣り!(흥부의 성의 고래사냥)

ホウケイじゃないのにホウケイと呼ばれる!

폭발... 현재 트위터 뒤집어진 충격적 말투..정진상 이재명 (펌글)

2022-11-20 01:44:15 | 홍어+5.18폭동 (魟魚 : エイ=全羅道)

폭발... 현재 트위터 뒤집어진 충격적 말투 ㅎㄷㄷ.JPG

속또
121 2022-11-18 09:45:37
아 정진상 간첩 말투 튀어나온 거 대박 웃곀ㅋㅋ

저 짧은 순간 몇 초의 상황에서도 숨기질 못 했다는 게 더 웃겨ㅋㅋ

정진상 압수수색 영장에도 전대협 활동이력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고 함.

가명까지 쓰면서 폭력시위를 하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사도 받았었다고.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전대협 활동가들한테 물어 보면 특이한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하는데


 

"너 전대협 활동했어?"

물어보면 대부분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대답한다고 함.

민주화운동을 했는데 남들 시선 때문에 부정할 리는 없고 왜 그럴까?

 

그냥 전대협이 한 짓들이 쪽팔리단 걸 스스로 너무 잘 알아서.

전대협의 명분은 민주화운동이었지만 현실은 그냥 김일성 사진 걸어놓고 절하는 수준이었음.



 

전대협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NL계 주사파가 주축이었고,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야 말겠다면서

전체주의를 강요하며 폭력 시위를 하는 간첩호소인들이 모인 거였음.

 

전대협이 처음 만들어질 때도 북한을 추종하던 학생들 중심으로 결성된 거였고

'반미'와 '통일'이 강령이었음.


 

참고로 당시 전대협의 1기 의장은 지금의 민주당 이인영 이 새끼였다.

 

전대협 2기 땐, 김일성 대학의 학생들한테

체육대회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다가 국민들한테 욕을 먹기 시작했고.

 

전대협 3기 의장은 임종석이었는데,

이 땐 평양에서 열리는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다고 난리 침



 

당연히 당국에서는 허락하지 않았음.

 

그러자 전대협은 임수경을 밀입국시켜서 그 평양축전에 참가하게 했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됨.

 

90년도가 되어 전대협은 4기를 맞았고 이 때 간첩질에 정점을 찍었는데,

'북한 바로 알기 사업' 따위를 추진하며 통일운동을 하기 시작했음;


 

갈수록 북한과의 커넥션을 대놓고 드러내고 다니니까

국민들은 본격적으로 '전대협'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음.

 

실제로 북한 최고위급 대남공작원은 한국에 3차례에 걸쳐서 침투를 했었고

간첩들을 직접 지휘했었고.

그 공작원의 최종 목표는 '전대협'과 같은 유사한 조직을 만드는 거였음;ㅋㅋ

 

간첩들 특징이 혁명의 주력이 될 수 있는 빈곤한 노동자, 농민, 청년, 군인들한테 스며들어서

미국에 대한 반감부터 유도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게 만들고,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하게 만드는 거.



 

아무튼 이런 조직에서 활동한 정진상의 압수수색 영장에

'전대협' 이력이 자세히 적시됐다는 게 주목할 부분.

그리고 정진상이 95년에 '성남시민모임' 활동을 하면서 이재명을 처음 알게 됐다는데,

검찰은 이 '성남시민모임'에 전대협 출신 운동권 인사들이 대다수라는 수식어도 써 놨다고 함ㅋㅋ


 

반년 전에 '충북동지회'란 조직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청주에서 간첩단 활동을 했다는 기사가 터졌었고

그 조직이 북한에 보낸 통신문도 적발됐는데

거기엔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려면 북한에서 적극 지원해 줘야 한다고 기재돼 있었고

북한은 '일단 주시해 보겠다'고 회신도 보냈다 하고;


 

결국 이 충북동지회 간첩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는데,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사람들 중엔 신건수라는 인물이 있음.

이재명이 성남시장이었던 시절에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직원이기도 한데,

이재명의 친형 이재선씨가 생전 동생과의 통화에서 "너 신건수가 누구냐?"라고 묻기도 했음.



이재선씨는 뒤이어 "나눔기획은 뭐냐?

북한 김일성이한테 만 달러 받으면 공작금이야.

만 달러면 천2백만원이다. 구속돼. 너 뭐했어?"라며

이재명을 진심으로 걱정했음.

이재명은 심지어 민주화운동은 하지도 않았으면서

자기 이권과 보신만을 위해서 간첩들이랑 결탁한 게 더 징그럽고 쓰레기였음

 

https://video.twimg.com/ext_tw_video/1593111127688630272/pu/vid/1280x720/5OlaIK3VMxXm8yb1.mp4?tag=12

동영상 링크


위에 말한 '전대협'은 NL계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는데

그 NL계의 하부조직에는 '경기동부연합'이 있었음.

당시 철거민, 빈민, 무허가 공장들의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용인과 성남의 연합조직이었음.

 

'용성총련'이란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고,

지금은 이 조직이 모두 이재명으로 결합된 상태.



 

'용인성남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약자인 용성총련은

그렇게 수도권 할렘가인 성남시를 발판 삼아서 활동하며 조직 역량을 견고히 키워 감.

하지만 평등이란 모럴과 전체주의를 표방하는 운동권 세계에서조차

SKY 대학생들이 주류가 됐고,

전대협과 한총련 의장자리도 항상 그 주류들만의 몫이었다.

 

그런 것들에서 비롯된 열등감과 마이너 의식을 공감대로 형성시킨 용성총련은

점점 군대문화에 버금가는 결집력과 집단성, 일체감이 무서울 만큼 잠재적으로 커져 감.

이 용성총련이 지금까지 살아 남아 맹위를 떨치며

현재의 이재명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배경에는 기괴한 공동체 생활이 있었다;


 

합숙을 하면서 새벽에 같은 시간에 함께 기상했고,

개인의 재산과 소유물이란 건 존재할 수가 없었음.

신문배달, 우유배달, 세차를 하며 벌어온 돈을 공동체에 몽땅 내 놓았고

그렇게 잠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은 못 잤다고 함;

 

무서운 게, 92년부터 97년까지 학생운동을 하는 대학생들이 연달아 자살을 했는데


여기서 총 7명의 자살자 중 4명이 용성총련 소속이었단 거.

성남시에서만 따지면 80년부터 총 17명이 자살을 했음.

 

매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추모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용성총련에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 넣는 기폭제가 됐다고 함.

 

운동권이 사람 죽는 걸 좋아한단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닌가 봄.


 

이렇게 죽음을 채찍질로 삼아서 유대감을 키워 온 용성총련은

전국으로 세를 확장시키자며 국회의 단상까지 올라서게 된다.

 

전대협과 똑같이 통일운동을 대중화시키자며 음지에서 나와

정치권으로 조직을 승화시켰고

그렇게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지며

본격 정치판에서도 운동권 세력이 활개치게 된 거


 

지금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명단 공개로 욕 쳐먹고 있는 거 보면 알 수 있는데

이재명과 통진당은 빈곤과 불행을 이용해서

선동하고 봉기를 일으켜야 된다는 공적인 폭력성이 내재돼 있었음.

 

차별받고 고립된 사람들의 열패감을 더 키워야 된단 의식을 공유하면서

서로 간의 조력자 역할을 하기 시작함.


 

이재명은 성남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성남시 인수위에 용성총련을 대거 포진시킴.

이권사업이 생기면 용성총련에게 파격적인 특혜를 줬고,

이재선씨가 '나눔기획이 뭐냐'고 물어봤던 것도,

이재명이 성남 청소 용역 업체로

통진당에서 설립된 지 한 달 밖에 안 된 '나눔환경'을 선정해서 그랬던 거.


 

통진당의 실세 이석기의 보좌관이 발행인으로 나선

'성남피플'이라는 지역신문 행사에 터무니없이 29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하다 논란이 됐고,

통진당의 기관지 역할을 하던 인터넷신문 '민중의 소리'가

네이버에서 퇴출을 당하자

이재명은 민중의 소리에 광고비를 대폭 늘려서 또 특혜 논란이 불거졌음.


 

이재명이 시장에 취임한 이후로 성남시민들의 세금은

실체를 알 수 없는 행사와 사업에 끊임없이 예산으로 지원됐는데,

그 수상한 자금흐름의 종착지는 항상 '용성총련'이었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검찰이 영장에 정진상이 활동했던 전대협과,

이재명을 처음 만난 '성남시민모임'을 괜히 명시하진 않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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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김대중 당신이 그립습니다

2020-07-22 13:33:52 | 홍어+5.18폭동 (魟魚 : エイ=全羅道)

나의 아버지 김대중 당신이 그립습니다

 

딸에겐 무조건 아빠가 필요하다



   
  ⓒ 뉴스타운  
 
2001년 한해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진승현게이트 사건을 재수사 촉구하고 나서 화제다. 19일 오후 9시에 SBS 뉴스추적에서는 '나는 DJ의 딸입니다'란 제하의 제목의 보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숨겨진 여인과 딸이 있었고 그 숨겨진 여인과 딸의 입막음을 하려고 진승현씨의 불법적인 자금 2억원이 건네졌다는 보도는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보도를 본 모씨는 "당시 진승현 사건을 수사 마무리하면서 '특수사업'에 사용되었다는 2억원의 행방이 국가를 위한 '특수사업'에 사용한 것이 아니고 당시 대통령이지만 일개인을 위한 사사로운 곳에 사용하였다는 것이 되어 그돈은 환수되어야 마땅하고 또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대통령 개인을 위해 직접적으로 개입되었다는 것이기에 이 또한 지난 김대중 정부였던 국민의 정부는 지탄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승현 사건 일명 진승현게이트로 불리었던 사건의 내막은 mci코리아 진승현 부회장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열린금고와 한스종금, 리젠트종금 등에서 2,300여억원을 불법 대출받고 리젠트증권 주가를 조작한 것과 관련해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이 제기된 사건이다.

당시 금융감독원이 2000년 11월 진승현씨가 자기가 대주주로 있는 열린금고에서 377억여원을 불법대출받은 사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검찰은 결국 mci코리아 회장인 진씨가 열린금고 등에서 2300억여원을 불법대출받고 리젠트증권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확인, 구속기소했으나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100억원대의 비자금 및 사용처와 행방, 그리고 정,관계 로비설 등으로 관심을 끌었다.

SBS는 보도에서 2000년 6월 한 아파트에서 한 여인이 자살했는데 그 여인은 딸을 호적에도 올리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 우울증에 결려 자살했다고 했다. 문제는 그 여인이 진승현과 관련이 있고 진승현 게이트 조사후 2년여만에 종결 당시 '특수사업'에 사용했다는 2억원의 행방에 관련됐다고 했다.

즉 '특수사업'이 바로 김대중 전대통령의 숨겨진 여인과 딸의 입막음을 위해 진승현씨로부터 돈 2억원을 받아 사용했다는 것으로 이에는 당시 국정원 경제과장인 정성홍씨와 김은성차장이 개입돼 있다는 것.

보도에서 말한 김대중 전대통령의 숨겨진 딸은 1993년에 대학을 졸업했고 초등학교 때부터 생활비를 동교동으로 받으러 다니는 거지짓(?)을 했다고 증언했다.

또 김대중 전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에게서 1988년에 돈을 받아 아파트를 사는데 사용했으며,조풍언씨가 1999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사줬다고 했다.

결국 보도내용대로라면 김대중 전대통령의 숨겨진 딸인 김모씨는 그 동안 정대철 전 의원의 어머니인 이태영 여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 그리고 재미사업가 조풍언씨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아온 것이 된다.

김모씨가 밝힌 바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자신의 모친은 지난 1967년 서울의 한정식 집인 대하에서 만나 연애를 했으며,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신민당 소속의 국회의원 신분이었고, 모친은 한정식 집 종업원이었다.

이 둘은 2년여에 걸쳐 연애를 하여 자신을 낳았으며, 그 이후 김 전 대통령은 이태영·김홍일·조풍언씨 등을 통해 이들 모녀를 생계를 책임져 왔다는 것이 된다.

보도는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에 대한 소문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김모씨 모녀의 생계를 마지막으로 책임져 온 조풍언씨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이들 모녀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외부에 발설하고 다녔고 뒤이어 ‘진승현 게이트’가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국정원 인사들이 돈을 줘서라도 이들을 입을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이에 따라 진승현씨에게 접근해 ‘특수사업’ 명목으로 2억원 등을 받아 이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SBS 취재팀은 취재과정에서 진승현씨의 돈이 김모씨 모녀에게 전달됐다는 의혹은 풀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이 부분은 계좌추적권을 가진 검찰이 해야한다며 검찰의 수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진승현씨측의 한 인사는 '지난 2000년초 국정원에서 나라를 위해서 쓰겠다며 돈을 요구해왔다'며 ‘진승현씨가 구속된 이후에야 그 돈이 대통령의 딸 문제와 관련해 쓰여졌다는 것을 알았다’고 증언했다.

또 ‘김 전 대통령 딸 어머니가 자살해서 시끄러워지면 사회적 파장이 있을 수 있어 정성홍 전 과장 등이 그런 차원에서 돈을 쓴 것으로 나중에 얘기를 들었다’며 ‘정성홍 과장이나 김은성 차장 등은 사심없이 일을 했으며, 진승현씨와 함께 다 같은 피해자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SBS의 보도를 본 한 시민은 "이제 나라가 민주적이 되다보니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밀도 보도가 된다"며 "대통령이던 누구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내용이 샅샅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모씨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사실은 언제인가 밝혀지는 법이다"며 "지금도 국민들이 의혹을 갖고 있는 사건들이 하루라도 빨리 밝혀져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말했다.

한편 SBS 뉴스추적 게시판에 네티즌 "장석준(jstoney)"은 "방송이 근거도 불확실한 사실과 몇 몇사람의 진술만 가지고 모든게 기정 사실인양 한 시간이나 이렇게 해도 되는걸까"고 적기도 했다.



출처 : 뉴스타운(http://www.newstow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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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딸, 버려진 딸

아들만 셋인 것으로 알려진 그에게 딸이 있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1989년에 귀국한 나는 김대중씨 측근들에게 이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나만 모르고 있었지, 측근들은 김대중씨 딸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다.

딸의 이름은 김소영이었다. 그녀는 1969년에서 1970년 무렵에 태어났다고 한다. 김대중씨가 일본에 있던 1973년에는 네살 쯤 되었다. 딸의 어머니는 김대중씨의 단골로 수송국민학교 앞 “대하”라는 요리집에서 일하던 여자라고 했다. 김대중씨 딸을 낳은 이 여자는 언젠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혼외정사로 태어난 이 딸은 김대중씨의 장래를 염려한 고 이태영 여사가 맡아 키웠다. 이태영 여사는 정대철 의원의 어머니다.

김소영은 서울 모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이태영 여사 생전에는 이태영 여사가 양육했고, 이태영 여사가 죽은 뒤에는 정대철 의원이 후견인 역할을 했으며, 그 후에는 김홍일 의원이 김소영의 생활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런데 김홍일 의원이 배다른 여동생을 매우 구박했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김소영은 서울 여의도 아파트에서 살았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후 김소영의 존재는 김대중 집안 입장에서 더욱더 눈의 가시거리가 되었다. 김소영은 이를 비관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몇 년 전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이야기였다.

김소영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김대중씨 어머니의 젊은 시절과 비슷했다고 한다. 자기 어머니의 과거 일로 속앓이를 했던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근본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한테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인륜이기 때문이다. 근본이 없고 정치적 야욕만 강한 김대중씨는 인륜을 저버리고 자기가 뿌린 소영이란 씨앗을 내팽개쳤다.

김대중씨 측근들은 소영이가 20대 후반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소영이의 죽음에도 흑막이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김대중씨는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많은 것을 그는 거두었지만 자신이 뿌린 씨앗은 하나도 거두지 않았다.

돈 문제로 감옥에 간 그의 자식들과 그의 측근들은 그가 뿌린 씨앗의 결과다.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 김소영의 인생도 뿌리기만 했을 뿐 거두지 않은 그의 씨앗이다. 양잿물을 들이키고 자살한 전처 차용애, 고향 하의도를 등진 제갈 가문의 사람들, 술로서 인생을 마감한 이복형 김대본도 그가 뿌린 씨앗의 결과다. 여든을 맞이한 김대중씨가 진정한 정치인으로서 역사에 기록되려면 이제는 뿌린 씨를 거두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출생의 비밀에서부터 모든 것을 국민 앞에 당당히 밝혀야 할 것이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다음 날, 나는 김대중씨의 일산집에서 전라도 최고의 음식이라는 홍어회를 대접받았다. 씽씽한 홍어의 진한 맛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김대중씨는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나서 또 한접시를 시켜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그 식탐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식탐을 비롯한 모든 욕심을 버리는 순간, 김대중씨는 국민들 앞에 새롭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출판하려는 이 시점에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김대중이 그 허울을 벗고 김대중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소실되었다.

 

양준용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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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 : 金大中 

本名 : 諸葛大中(제대중),尹デマン(윤대만) 近親私生児(근친사생아)

母 : 張鹵島 (장노도

親父 : 諸葛成복(제갈성복 : 제성조의 친형  諸葛成祚のお兄さん)  

2番目 夫 : 尹チャンオン(윤창원) 

3番目 夫 : 金云式(김운식)

近親私生児

뭐시여?

 

암튼 홍어새끼들이란! 까질러 놨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배째!하고 죽여 버리냐!

 

 

홍어국 마스코트

エイ国マスコット

우덜의 영원한 태양 쩔뚜기 슨상 김대중(제갈대중)

エイたちの永遠の太陽チョルツギ諸葛大中先生

 

'祖國과 民族,

내 一生을 爲하여'

洪魚國 主席 쩔뚜기 金大中(諸葛大中)

 

장군님~

 

김대중(제갈대중)슨상님께서 제일좋아했던 뇌물!

 

홍어종특 쓰리썸

 

슨상 쩔뚜기 김대중(본명 :제갈대중 일본명 : 토요타 다이츄)

スンサン金大中(諸葛大中)

 

전라도 전통방식 홍어삭히기작업에 들어가는 슨상 쩔뚜기 김대중(제갈대중)

 

삭혀진 홍어 근친 사생아 김대중(제갈대중)

 

 

안됐다 너도 제일 더러운 홍어근친 사생아인 홍어놈의  홍어 사생아로 태어나

제대로 부정을 느껴 보지도 못하다 자살이라고는 하지만

타살 의심의 생을 마감했으니

 

 

홍어 어때? (홍어 배우)   

エイどう? (エイ俳優)

우~웩! 홍어 썩는 내!

オエッ!臭い~エイ腐臭!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김대중

2020-07-21 17:11:43 | 홍어+5.18폭동 (魟魚 : エイ=全羅道)
2013.12.20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김대중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 재판부는 김대중을 민주화의 화신이고,

전두환은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죄를 범했다며 무기징역을 최종 선고했다.

재판부는5.18 시위대가 헌법을 수호하려는 준헌법기관인데

전두환과 정호용이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기 때문에 내란죄에 해당하고

그 과정에서 훌륭한 시위자들을 살해했기 때문에 내란목적살인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5.18을 조기에 진압한 것은 전국적으로 확대돼야 할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것이기 때문에

내란이라고 판결했다.

필자는 이런 판검사들이 과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인지에 대해 의심한다.

과연 역사바로세우기의 판검사들이 옳은 판결을 했는가?

먼저 김대중이 북한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 사람인지를 탈북자들의 증언록을 통해 알아보자.

인용된 자료는 모두‘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있다.  



1) 북한에서 광주인민봉기에 나갔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80년도 당시 성인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나 다 알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런 사실에 대해서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사실이 알려지고 영웅들이 많이 생기면서

사회에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다 알게 되었다.

광주인민봉기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김대중과 짜고 만든 통일 작품이다.

우리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믿는다.

북한에서 김대중은 혁명가다.(39쪽 하2-8줄)  

 


2) 다른 탈북자들에게 질문을 던져 봐도 하나같이 나처럼 대답할 것이다 

19805월 18일 광주사건 때에 북한군특수부대 요원들이 내려갔었다는 이야기는

북한사회 전체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에 온 탈북자들뿐만이 아니라 지금 바로 북한에 가서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어느 누구라도 세워놓고 광주사태에 대해서 들어보거나

아는 내용이 있는 가고 물어보면 보태지도 덜지도 않고 바로 이런 대답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그때 우리 쪽에서 많이 내려가서 싸우고 왔다는 것은 비밀이 아닌데요.”

“우리나라 특수부대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으면 며칠 동안 광주가 해방될 수도 없었고

남조선사람들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지요”

“전라남도 광주인민봉기는 조선의 특수부대가 애국투사인

김대중 선생님을 도와주기위해서 내려가서 싸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1968년도에 박정희를 죽이러 남조선에 갔다가 죽은 사람들의 영웅묘지도 있고

1980년도에 광주인민봉기에 내려가서 죽은 사람들의 영웅묘지도 조선에 있어요.

내 눈으로 직접 봤는데요.”(165쪽 10줄-166쪽 2줄)

 

3) 김일성은 광주폭동이 성공해서 전국적인 인민항쟁으로 퍼져나갔다면 남조선괴뢰정권은 무너지고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혁명정권이 남조선에 수립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 큰 실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김정일이도 자기의 생일날인 1981216일,

광주인민봉기는 수령님께 바치는 나의 선물이었는데 우리의 역량이 너무 적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수령님을 볼 면목이 없다고 일군들 앞에서 말했습니다.(224쪽6-12줄)



4) 당시만 해도 북한사회에서 김대중의 몸값은 ‘선생님’이라는 칭호와 함께

 

통일혁명당의 수괴였던 김종태, 차영도 등과 함께 조국통일과 남조선혁명을 위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영웅’으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이 사실만 놓고 보아도 북한이 광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5.18의 조작을 위하여 고민하고 공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다.

북한사회에서는 광주사태를 마지막까지 남조선통일과 연결시키지 못한 것을 두고

지금까지도 도처에서 후회하는 목소리가 많다. (243쪽 8-16줄)

 

 

5) 김대중이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북한에서는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남조선의 ‘김대중 선생’이라고 하면 통일을 위해서 적후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투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남조선에 와서 지금까지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발언들을 보면서

북한에서 이 사람을 큰 인물로 인정하고 내세워주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었고

과연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북한 쪽의 사람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5.18사건이 김대중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김일성이 생전에 정권을 잡고 있을 때나

지금의 김정일 정권에서나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고 북한사람들 치고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 한목소리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257쪽 하1줄-258쪽 11줄)


 

6) 광주사태는 보태지도 덜지도 않고 김대중의 친북 조직과 북한정권이 남조선에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조작한 협공작전이라는 것이 그가 확실하게 장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421쪽 하3줄-422쪽 1줄)

 

수기집에는 문익환에 대한 증언도 있다.

“(공화국 영웅 평양사자) 자서전의 내용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그가 남조선에 내려와서 대남공작을 시작하면서 진행한 일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그의 아버지 친척들의 이름을 비롯해서 자기가 공작한 대상들의 이름이 개별적으로 적혀있었고

특히 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종교와 관련된 사람들의 명단 속에 있던

죽은 문익환 목사의 이름이었다.

1989년인가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과 만났을 때 나는

‘평양사자’의 자서전에서 보았던 문익환 목사의 이름이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던 기억이 있다.

어렴풋이 생각되는 내용이지만 ‘평양사자’가 남파되어 문익환을 만나서 김일성의 친서를 전달하자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생의 마감까지 수령님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하였다.(142쪽 2줄-15줄)

실제로 2006년 98일 한국일보는 평양에서 발행되는 영자지 평양타임스를 인용하여

문익환의 초상이 북한 기념우표에 올라 있고,

우표에는 민족통일상 수상자로 표기돼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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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어민국 마스코트

エイ漁民国マスコット

 

홍어 국기

エイ国旗

홍어국 여권

エイ国パスポート

 

홍어국 수도 광주시청 홈 폐이지

エイ国首都光州市庁ホームページ

 

홍어국 영웅 축사망!(畜死亡!) 쩔뚜기 제갈대중 슨상

エイ国英雄 畜死亡!スンサン諸葛大中

 

エイが先だ

 

현  홍어국 국가 주석 치매 문죄앙

現 エイ国 国家主席認知症文ジュェアン

 

홍어국군 폭도 집단

エイ国軍エイリアン暴徒集団

 

현 홍어국 우방국 북괴 홍어혈통 김정은과 지나(支那)바퀴벌레 씹진핑

現 エイ国友好国首脳 エイ血統金ジョンウンとシナ(支那)ゴキブリ習近平

 

과거 홍어국 외무장관 축사망!(畜死亡!) 목사 문익환과 북괴 축사망!(畜死亡!) 홍어혈통 김일성

過去エイ国外相 畜死亡!目師文益煥と北傀 畜死亡!エイ血統金日成

 

북괴 문익환 기념우표

北傀文益煥記念切手

 

축사망!(畜死亡!) 홍어목사 문익환의 아들 탈렌트 문성근

畜死亡!エイ目師文益煥の息子タレント文ソングン

 

홍홍상종

同類相求む

 

우덜의 영원한 태양 슨상 제갈대중의 미스테리 그때 그때 달라요

エイたちの永遠の太陽 諸葛大中先生のミステリーその時その時違い

 

센세이 오겡키 데스까? 토요타 다이츄데스!
토요타 다이츄 센세이 반자이!반자이!반자이!

쌀로 핵을 개발하여 노벨 물리학 삥땅상을 받은신 홍어들의 영원한 태양 쩔뚜기 제갈대중 슨상 만쉐이~!만만쉐이~!
축!사망(畜死亡!) 홍어 근친 사생아 친일파출신 북괴간첩 쩔뚜기 제갈대중 슨상 만쉐이~!만 만쉐!

앞으로이~갓!
왼발 절뚝!,오른 발 쩔뚝! 오른 짝 절뚝!왼짝 쩔뚝!, 왼짝 오른짝 절뚝 쩔뚝
 
 

우덜의 영원한 태양 쩔뚜기 슨상 제갈대중

エイたちの永遠の太陽チョルツギ諸葛大中先生

 

홍어 삭히기

エイ腐敗方法

1차 숙성 단계

1次腐敗段階

 

2차 숙성 과정

2次腐敗段階

 

숙성과정 완료후의 삭힌 홍어

腐敗過程完了後の腐敗エイ

 

숙성 정도 테스트  우~웩 

腐敗度テストオエッ

 

요리된 삭힌 홍어  요리명 : 슨상 홍어 삼합

調理された腐敗エイ 料理名:スンサンエイ三合

 

エイ配達来たん~

エイどう?

 

우~웩! 홍어 썩는 내

オエッ!臭い~エイ腐臭

 

 


전태일은 방치됐다. 전태일은 살해당했다.

2020-07-19 11:45:14 | 홍어+5.18폭동 (魟魚 : エイ=全羅道)

전태일은 방치됐다. 전태일은 살해당했다.

 Baekbeom
 

2015.03.29 10:27:18 (*.49.*.167)
 
 
 

전태일은 방치됐다. 전태일은 살해당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 전태일 스스로 근로기준법 책을 들고 자기 몸에 불을 지른 것처럼 상황을 묘사해놨다. 전태일은 당시 뒤에서 누군가 전태일의 몸에 석유나 시너를 끼얹은 다음, 다른 사람이 전태일에게 불을 붙였다.

 

그리고 전태일이 3분~5분 정도 고통스러워하며 청계천 다리를 뛰어다녔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아무도 전태일에게 붙은 불을 꺼주지 않았다. 이는 조영래 변호사의 증언이다. 

 

조영래가 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이다. 

 

조영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돌베개, 1983)

 

그러고 매년 5월 1일(근로자의 날), 8월 28일(전태일 생일), 11월 13일(전태일 죽은 날)에 전태일의 무덤에 찾아가는 것이다.

 

당시 전태일이 고통스러워하며 뛰어다닐 때 아무도 불을 꺼주지 않았다. 현장에 수많은 운동권들... 그러나 아무도 불을 꺼주지 않았다.

 

전태일이 3분~5분 정도 고통스러워하며 뛰어다녔지만, 현장에 있던 아무도 전태일에게 붙은 불을 꺼주지 않았다. 그리고 전태일을 향해 근로기준법 책을 던진 것이다. 불타는데 종이를 던진다는 것은 불에 더 잘 타라는 소리가 아니냐? 완전 살인자들이 따로 없다.

 

그리고는 1990년대 들어와서는, 전태일이 스스로 불을 붙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했다. 조영래 변호사가 좌파 운동권들에게 욕먹는 이유가 바로 전태일의 죽음을 사실 그대로 적어놨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에 쓴 전태일 관련 서적은 전태일이 스스로 분신자살한 것처럼 왜곡, 묘사해 놓았다. 조영래가 쓴 전태일평전의 초기 버전, 83년부터 89년 사이에 출간된 책을 찾아서 본다. 

 

 

 

약 10분 후에 전태일이 내려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김개남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눈짓을 하여 그를 사람이 좀 덜 다니는 옆 골목으로 끌고 갔다.

 

“아무래도 누구 한 사람 죽어야 될 모양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김개남에게 성냥불을 켜서 자신의 몸에 갖다 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전날 저녁에 김개남은 전태일이 내일 “누구 한 사람 죽는 것처럼 쇼를 한판 벌려서 저놈들 정신을 번쩍 들게 하자”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

 

성냥불을 켜서 갖다 대어 달라는 전태일의 부탁이 심각하였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긴 했으나 “설마.......”하는 생각에 그는 성냥불을 켜서 전태일의 옷에 갖다 대었다. 순간 전태일의 옷 위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 친구들 보고 먼저 내려가라고 한 뒤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한 되 가량의 석유를 온 몸에 끼얹고 내려왔던 것이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갔다.

 

그는 몇 마디 구호를 짐승처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입으로 화염이 확확 들이 찼던 것인지 나중 말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 소리로 변하였다.

 

때마침 그 자리에 있던 한 회원이 근로기준법 책을 전태일의 불길 속에 집어 던졌다. 이렇게 하여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은 이루어졌던 것이다.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가량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여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 내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뛰어와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잠바를 벗어서 불길을 덮었다.

 

조영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돌베개, 1983) pp.227~pp.228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가량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여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 내었다.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가량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여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 내었다.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가량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여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 내었다. 

 

과연 불을 안 끈 것인가? 아니면 못 끈 것인가???

 

전태일의 몸에 시너와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전태일이 고통스러워하며 뛰어다니는 3분(혹은 그 이상)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불을 꺼주지 않고 그냥 방치했다. 그리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비가 없어서 의사들이 진료 거부, 그리고 전태일 사망!

 

그러고도 해마다 전태일의 무덤에 찾아가는 것이다. 무슨 염치로 전태일의 무덤을 찾아가느냐. 

조영래가 사실대로 적었다는 이유로 조영래를 미워하는 인간들까지 있다.

 

주. 박정희가 1977년 12월 31일 별도의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을 대상으로, 1978년 8월 11일부터는 일반 회사원에게 의료보험제도를 적용해주기 전까지, 돈이 없으면 신원보증인이 있어야 진료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여기서 숨겨진 사실 하나. 박정희가 의료보험제도를 만들어준 덕분에 비교적 저렴한 값으로 병원 입원, 진료가 가능했다는 사실.

 

 

다섯 줄 요약

 

1. 전태일에게 누군가 기름 끼얹고 불을 붙였다.

2. 전태일은 3분간 고통스러워하며 뛰었지만 아무도 불을 꺼주지 않았다.

3. 3분 이상 불타는 전태일에게 물 대신 근로기준법 책들을 던졌다.

4. 1990년대 와서 운동권들은 전태일이 스스로 분신자살한 것처럼 왜곡해 놓았다. 전태일 관련 작품과 서적에서!!!

5. 조영래는 누군가 전태일의 몸에 불붙인 것을 사실대로 기록했다. 그래서 좌빨들 중에는 조영래 변호사를 싫어하는 인간도 있다.

 

 

전태일은 스무살 밖에 안된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였다. 꼭 그렇게 죽여야만 했느냐? 박정희가 얄밉다고 어리숙한 젊은이를 죽여?

 

 

전태일에게 불붙여서 태워죽인 대학생 노동운동가들아. 그러고도 너희가 인간이냐? 너희도???

 

그러고도 해마다 전태일 무덤 찾아가다니... 노동운동가 너희가 무슨 염치로 전태일 무덤을 찾아가냐? 좌빨 놈들아. 너희가 인간이냐? 

그러고도 조영래를 미워하기까지 하다니... 사실대로 적은게 죄냐? 좌빨 놈들아. 너희가 인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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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전태일이 불타 죽을 때 뒤에 있던 사람들의 명단이다.

김대중이 왜 주민등록의 본적을 없앴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기준법을 준수하라


(주:진정서의 한 페이지에 가득차게 적혀있다)


주민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
성명 全泰壹


현주소 서울 용산구 서계동 33의 38호
성명 이0섭


현주소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 산 14번지 13통 9반
성명 申0哲


현주소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33의 38호 3통
성명 崔0寅


현주소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 890-99호
성명 주0민



본적지를 표시했을 경우........



기준법을 준수하라


(주:진정서의 한 페이지에 가득차게 적혀있다)



본적 경북 대구시 삼덕동 149
주민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
성명 全泰壹

본적 전남 화주군 동강면 곡천리 911
현주소 서울 용산구 서계동 33의 38호
성명 이0섭

본적 전남 광산군 명동면 지축리 96
현주소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 산 14번지 13통 9반
성명 申0哲

본적 전남 영암군 신북면 행정리 53
현주소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33의 38호 3통
성명 崔0寅

본적 전남 고흥군 호두면 남촌리
현주소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 890-99호
성명 주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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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은사의 지적 “北의 연방제 수순으로 비치네”

2020-07-18 20:48:21 | 홍어+5.18폭동 (魟魚 : エイ=全羅道)

 

임종석 은사의 지적 “北의 연방제 수순으로 비치네”

한양대 교무처장이던 맹주성 명예교수, 제자에게 보는 SNS 글 화제오피니언뉴스l승인2017.07.18 15:54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대협 의장일 때 한양대에서 교무처장의 보직에 임했던 맹주성 한양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다. 그가 17일 올린 ‘대통령 비서실장 임종석군에게’라는 제목의 글은 전대협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으로 시작했다.

그는 수업을 한시간도 들어오지 않던 일, 찬란한 조명 아래 7선녀라는 운동권 여학생과 함께 유유히 등장하던 일, 총장과 함께 만나러 갔다가 실패한 일등을 적시했다.

맹 교수는 이어 “김정일이 죽었을 때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를 애도한다는 내용을 북에 보내지 않았나? 그리고 북으로부터 계속 투쟁하라는 답을 받지 않았나?”라고 묻고 “현 정권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향이 나의 눈에는 최종 목표인 북에서 주장하는 연방제로 가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고 비치네”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발표하는 박근혜 정부의 괴문서와 관련해 “대통령의 기록물이 아니라는 미명하에 문서를 검찰에 넘겼는데 이 것은 엄연히 헌법 위반”이라며, “첫째 대통령의 기록물이 아니라면 주인에게 돌려 주었어야 할 문서 아니던가? 둘째 대통령 기록물이라면 보관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셋째 법원의 요청이 있었다면 법원에 제출해야지 왜 특검에 넘겼는가?”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맹 교수는 “학과가 달라서 직접 강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학생의 수업등 모든 것을 관장하는 보직자로서 자네를 잘못 교육 시켰다는 자괴감과 그래도 제자라는 정 때문에 마지막 충고를 하는 바”라고 끝을 맺었다.

 

▲ 1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 /청와대 홈페이지

 

맹주성 한양대 전 교무처장 페이스북 글

 

대통령 비서실장 임종석군에게

 

자네 이제 청와대에 입성했으니 맹주성? 그 사람이 누구인데? 라고 하겠지.

나는 자네가 수업은 한시간도 않들어 가고 전대협(전국대학생협의회)에서 데모를 주도할 때 그리고 마침내 전대협 의장으로 옹립(운동권의 표현) 될 때 교무처장이었지.

굉장 하더군. 대부분이 지방 학생들이었지만 운동장을 한치의 틈도 없이 꽉 메우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상황이었지. 지명 수배 상태였던 자네는 찬란한 조명 아래 7선녀라는 운동권 여학생이 등장하면서 유유히 등장하더라 나는 학교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모두 학교책임이라는 법규 때문에 119 및 앰불란스를 대기시키며 꼬박 행사를 지켜 보았네.

지명 수배 당해서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전국 운동권 학생들을 동원해 자네 모교에서 데모를 하던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네. 공권력에 밀려서 모두 인문관으로 들어갔지 자네들이 책상 걸상들로 쌓아놓은 바리케이트를 뚫고 총장님과 함께 자네를 만나러 들어 가려다 실패했던 일, 인문관에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 교수들에게 일일이 전화하던 일(배가 고프면 자살조가 자살할테니까 걱정이 돼서) 등등. 쓸 내용이 너무 많은데 생략하겠네.

 

자네가 초선 의원이 된 이후에도 나하고 졸업식 같은 행사장에서 많이 부디치지 않았나. 그때마다 자네는 나에게 뭐라고 했나. 처장님 속많이 썪였습니다 하면서 꼬박꼬박 90도 각도로 숙이지 않았나.

그 당시에도 자네의 그런 행동이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네. 운동권 학생들이 처음엔 눈을 부라리며 덤벼들더니 사회 반응이 않 좋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일제히 공손한 척하면서 인사하는 모습으로 일제히 바뀌지 않았던가.

북이 그렇게 좋으면 그곳에 가서 살면되지 왜 이곳에서 야단인가 하니까, 첫해엔 답변을 못하더니 다음해부터는 아닙니다 이곳에 남아 민중을 해방시켜야 합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각 대학마다 일사불란하게 하는 통일된 언행에 소름이 끼쳤네.

오랜 세월 이런 의식화된 사고와 행동을 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갑자기 바뀔 수있다고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자네 김정일이 죽었을 때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를 애도한다는 내용을 북에 보내지 않았나? 그리고 북으로부터 계속 투쟁하라는 답을 받지 않았나? SNS에 전문이 나와 있더군.

이제 자네 세력들이 이 나라를 장악했으니 최종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군. 지금 현정권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향이 나의 눈에는 최종 목표인 북에서 주장하는 연방제로 가기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고 비치네.

자네가 학생일 시절에는 나는 운동권은 브레이크 없는 전차라고 표현 했는데 지금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하는 기관차라 표현하네. 내 말이 틀렸나.

지금까지 이 나라를 유지해온 정체성을 모조리 뒤엎어 버리고자 법 위에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 부속실인가? 자네와 같이하던 학생회장 또는 학생회 임원들로 깔아버렸더군 SNS에서 명단을 상세히 보았네 무슨 꿍꿍이 인가?

그 명단에는 소위 국내 명문대학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네들의 뜻대로 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게.

진리 !!! 이것은 창조주가 자연을 창조할 때 만들어 놓은 법칙이라네 자연은 언제나 잘 잡혀진 균형을 이루고 있지.

인간이 진리를 가릴 수는 없는 것이네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애초부터 부여되지 않았네. 브레이크 없는 폭주하는 기관차. 한번 상상해보게 기관차의 끝은 어디인가 탈선하게 되는 것아닌가.

이미 그 전조가 보인다네.

괴문서? 한번 따져보세. 대통령의 기록물이 아니라는 미명하에 문서를 검찰에 넘겼는데 이 것은 엄연히 헌법 위반일세.

첫째 대통령의 기록물이 아니라면 주인에게 돌려 주었어야 할 문서 아니던가?

둘째 대통령 기록물이라면 보관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셋째 법원의 요청이 있었다면 법원에 제출해야지 왜 특검에 넘겼는가?

하기는 학창 시절부터 법을 어기는 짓을 밥먹듯이 하였으니 지금의 자네에겐 위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개념 조차 없을 법도 하군.

무슨 의도로 이런 치졸한 짓을 하는지 누구나 짐작 할수 있다네. 이런 짓으로 진실을 가릴 수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리석은 짓 당장 멈추게.

 

학과가 달라서 자네에게 직접 강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학생의 수업등 모든 것을 관장하는 보직자로서 자네를 잘못 교육 시켰다는 자괴감과 그래도 제자라는 정 때문에 마지막 충고를 하는 바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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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홍어들(従北エイ達)
 
386 역적 홍어들
 
 
게이 성향 홍어??
 
7시 홍어국 폭도 집단 (7時エイ国エイリアン暴徒集団!)
 
 
 
 
세계의 평화와 대한민국의 안정을 위하여 지나(支那)와 홍어는 몰살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