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록에 나타난 지나(支那)의 식인 문화
최초의 식인 이야기는 지나(支那) 전설의 왕조 하나라 때
아들을 죽인 원수를 육장(肉醬)으로 만들어 원수의 아들에게 먹기를 강요한 여인의 이야기다.
"그는 대신인 구후의 딸이 절세미인이란 말을 듣고 아내로 삼았는데
그 아내가 너무 정숙해 자신의 성적인 취향에 맞지 않자 격노해 그녀를 살해하고
그녀의 아버지 구후를 해(인육을 소금에 절인 육젓)로 만들어 먹어버렸다.
신하인 곽후가 이를 강력히 말리자 주왕은 곽후 또한 포(脯:찢어 말린고기)로 만들어 먹어버렸다."
그 외에도 주왕은 자신에게 간하는 신하 익후를 자(炙:불고기)로 만들어 먹어버리는가 하면
신하인 황비호의 아내 경씨를 희롱하다 거절 당하자
그녀를 해로 만들어 남편인 황비호에게 하사하고 먹게 하는 끔찍한 짓까지 저지른다.
(후에 황비호는 격노해 군사를 일으켜 주왕을 제거하게 된다)
이것 없이는 식사를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예기, 동주열국지, 논어 등에서 언급된 내용)
그러나 그의 수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된 후
그 시체가 잘게 토막나 해로 만들어져 공자 자신의 밥상에 올라온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이후 그는 그렇게 좋아하던 해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군중들(내준신에게 처형당한 이들의 가족들)이 다투어 내준신의 고기를 산채로 잘라 먹어은 통에
시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동이 났다.
눈알을 도려내고 안면의 가죽을 벗겼으며 배를 찢고 심장을 끌어내니
마침내 진흙 같은 찌꺼기만 남게됐다. (자치통감의 기록)
군중들이 몰려 와 그의 살점을 발라가는 바람에
뒤늦게 시신을 수습하러 온 이들은 뼈밖에 수거할 수 없었다.
지나(支那)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힌 대중적인 소설들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은
그들 특유의 식인풍습을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 삼국지연의에서는 싸움에 지고 도망가는 유비에게
자신의 아내를 죽여 그 엉덩이살로 음식을 만들어 바쳤다는 사냥꾼의 얘기가 있고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는 유비가 즐겨먹은 음식이 인육으로 만든 포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포가 잡혀 죽은 후 그 고기를 죄인들이 먹었다는 얘기 등이 나온다.
숨어 있다가 부자가 지나가면 뛰쳐나와 금품을 빼앗고 그 살은 고기로 먹고 기름은 등불을 밝히는 데 쓴다.
뚱뚱한 자는 쇠고기 대용으로, 마른 자는 만두소로 만든다.
이것은 양산박 법도를 설명하는 부분에 나오는 것으로,
소위 의적이라는 양산박 무리들은 사실은 사람을 죽여 재물을 빼앗고 그 고기를 먹는 극악무도한 악인들이었던 것이다.
주인공 송강의 아우인 ‘흑선풍’ 이규는 사람을 죽이고 난 후 그 인육을 먹곤 했는데
너무 많이 인육을 먹어서인지 눈알이 항상 붉게 충혈되었다고 한다.
무송이 유배가는 과정에서는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죽여 그 고기로 만두를 만들어 파는 끔찍한 주점이 나온다.
때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곤 했다.
며느리는 시부모가 자신을 잡아먹을 거라는 말을 듣고, 놀라 친정으로 도망을 친다.
친정 아버지는 "누구 딸을 마음대로 잡아먹어!" 라고 분개했지만
후에 그 딸을 잡아먹은 건 친정 아버지였다.
● 지나(支那) 오호십육국시대 '후조'의 태자 '석수'는 날래고 용감했지만, 남의 아내를 겁탈하는 음란하고 잔인한 자였다.
석수에게는 독특한 취미가 있었는데,
미녀를 골라 예쁘게 단장을 시키고는 목을 자르고, 피를 잘 닦아서
소반에 담아 자신의 손님들과 감상하는 것이었다고...
그리고 미녀의 몸은 삶아서 손님들과 함께 먹었다.
원나라의 도종의가 지은 ‘철경록(輟耕錄)’, 송나라 장작이 지은 ‘계륵편’에는
사람고기를 요리하는 방법이 상세히 나와 있기까지 하다.
인육을 장에서 공공연히 사고 팔며 아무 거리낌 없이 그 맛을 즐기게 되었다.
‘신용문객잔’으로 대표되는 흑점(인육을 파는 주점)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인 것이다.
본격적으로 인육을 요리재료로 쓰기 시작했다.
이 때의 인육애호가가 열전(列傳)에 기록되기도 했는데,
친구를 젓갈로 만들어 먹은 설진, 자기의 첩을 삶아 먹은 고찬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병중에 자기 노비의 고기를 먹은 독고장 등이 나오는데 모두 이 무렵의 인물들이었다.
● 당나라 시기 이전에는 인육이 암시장에서 몰래 유통됐지만
당대에 이르러 전국 각지에 상육(인육)을 판매하는 시장이 생겨 공개적으로 거래를 하게 되었다.
양주(楊州)와 봉상(鳳翔)은 당나라의 대표적인 상설 인육시장이 있던 곳.
인육은 납치, 인신매매 등으로 공급이 되었으며 또 중죄수들을 인육으로 만들곤 했는데,
억울하게 인육이 된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여자의 경우 외모가 아름다우면 기방 등으로 팔려가지만,
얼굴이 변변치 못하고 일을 할 만큼 튼실하지도 못하면 인육이 되곤 했다.측천무후 때는 식인 문화의 극성기로
보통 인육은 두 발 달린 양고기라 불렸으며
인육이 너무 많이 유통되어 다른 고기값을 폭락시킬 정도였다. (쌀값보다 싸고 개고기의 1/5 정도)
● 황소의 난때는 인육을 가공하는 기계를 끌고 다녔고,
절도사의 군대는 마을을 종종 습격해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절도사의 군대가 휩쓴곳은 사람이며, 짐승이며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 상설 인육시장은 이후에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
송나라 때의 항주(杭州), 명나라 때의 개봉(開封)과 중경(重京), 청나라 때의 안경(安京) 등에 개설되었다.
● 청나라 말기에는 말레이계 사람의 인육을 수입하여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서 판매하였고,
한족들은 이것을 보약(補藥)으로 먹었다고 한다.
● 인육판매에 대해 형식적이나마 송나라때 금지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 심지어 외국에서도 지나(支那)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인육이 판매되곤 했는데
1919년에는 식량 부족이 심했던 러시아에서 지나(支那)인들이 인육 장사를 하다가 총살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명나라 때 사천(四川)지방에서는 인육이 남자일 경우 한 근에 7전, 여자는 8전에 거래되었다.
그러나 이 가격은 다른 고기들과 비교했을 때 형편없는 것이었다.
1860년 강소지방의 상육은 한 근에 90전이었는데
태평천국의 난 때 인플레가 심해서 130전까지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으며
1900년대 초 군벌시대에는 상육이 90전에 거래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지나(支那)문명의 찬미자로 불리는 마티니(1614~1661)의 견문록에도 목격담이 나온다.
마르코 폴로 또한 ‘동방견문록’ 에서 자신이 직접 목격한 복주(福州)의 식인 풍습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지방에서 특별히 기록할 만한 것은 주민들이 그 어떤 불결한 것이라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의 고기라도 병으로 죽은 것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횡사한 사람의 고기라면 무엇이건 즐겁고 맛있게 먹는다.
병사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머리 앞부분을 깎고 얼굴에 파란 표식을 하고 다니면서 창칼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인 뒤,
제일 먼저 피를 빨아먹고 그 다음 인육을 먹는다.
이들은 틈만 나면 사람들을 죽여 그 피와 고기를 먹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 근대 문학가 노신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아Q정전’ 에서
노예근성과 함께 식인 풍습을 '지나(支那)의 2대악'으로 규정했다.
당시 지나(支那)의 식인풍습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충효, 인의를 강조한다는 유교는 ‘복수주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를 했다.
‘부모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不俱戴天)’ 는 생각으로
심하면 부친의 원수를 29대까지 갚기도 했는데 그것을 효라고 본 것이다.
● 부모의 복수를 하는 자는 지원극통함을 푼다는 의미로
한 칼에 원수의 숨통을 끊지 않고 수천갈래로 난도질을 한 후 그 고기를 먹거나 심장과 간을 꺼내어 씹기까지 했다.
‘효’라는 유교 사상의 실행으로서
병으로 죽어가는 부모에게 자신의 넓적다리살 등을 잘라서 봉양하는 일이 흔했다.
● ‘충’을 보이기 위한 식인이 자행되기도 했는데,
실례로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제나라 환공의 일화가 있다.
환공은 유명한 미식가였는데 그가 진미를 찾자
요리사였던 역아(易牙)는 환공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자신의 세 살짜리 아들을 죽여서 요리해 바침으로 환공에 대한 충성심을 보증 받는다.
(역아는 후일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간신이 된다)
역아뿐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자기 살을 베어내거나 아내, 자식을 잡아 자신의 주군에게 대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흔히 이런 행위는 충으로 기려졌다.
● 인육은 약용으로도 쓰였다.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인육의 각 부위에 대한 약효까지 설명하고 있다
(동양대 김운회 교수의 글 + 잡다한 정보 몇개 끄집어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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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옹호하려는 친지나(支那) 쥐대가리들+친지나(支那) 홍어+조선족들의 댓글에 올려 놨던 댓 글
1990년대 중반경까지 일본에서 야키니쿠(불고기) 하면 일본인들은 무슨고기로 인식하고 있었을까?
물론 야키니쿠(불고기)는 제일교포들에 의해서 퍼진 한국요리인데
한국에선 보통 불고기에 사용되어지는 고기라하면 일반적으로 소고기와 돼지고기 두 종류지만
일본에선 오키나와 지역을 제외한 육지쪽에선 대체로 돼지고기로 만들어진 요리종류가 돈카츠등 몇가지 외엔 그다지 많지않고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1990년대 중반경까지는 일본인들에게 야키니쿠에 사용되는 고기는 누구랄것 없이 소고기 란 대답이 나왔고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실제 1990년 대 초 일본인들에게 물어 보고 들은 사실)
지금은 한국 관광와서 돼지고기맛을 알게 된 일본 관광객들에 의해 돼지고기를를 찾는 일본인들도 많아진 편이다.
고대 지나(支那:짱깨)의 해(醢)는 지나(支那:짱깨)인들에게 무슨 고기로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그러고 공자놈께서는 해(醢)를 무슨 고기로 알고 즐겨 쳐 먹었을까~요??
他被处以最残酷的醢刑。 그가 가장 잔인한 해형에 처해졌다.
醢时古代的一种酷刑。 해(醢)는 고대 형벌의 일종이다.
-흥부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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