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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支那)의 역사는 95%가 조작된 역사 2편

2020-01-29 20:00:34 | 지나(支那)
왕조 교체기마다 수천만 인구가 격감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나(支那;中國)의 왕조교체기(王朝交替期)마다 수만 또는 수백만도 아닌 수천만(數千萬)의 인구가 격감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의문을 가지고 살펴보게 된다. 이미 부분적으로는 다 살펴봤으나 지나(支那;中國)의 인구변천을 바로 봄으로써 그 나라의 문명과 문화의 척도를 알 수 있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존귀함을 존중한 나라였는지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인구격감(人口激減)의 원인(原因)은 첫째 국내에서는 정부군(政府軍)과 반란군(叛亂軍)의 항쟁(抗爭)에 의해서 농업노동인구(農業勞動人口)의 주역인 남자가 군대에 감으로 농지가 황폐하게 되어 기근(饑饉)에 빠지는 일이다. 혹은 작물이 메뚜기 등 해충에 의해서 작물을 먹어 없애기 때문에 식량이 점점 부족하게 된다.
 
그 외에도 장기(長期)에 걸친 가뭄과 홍수(洪水)로 인해 하천의 대홍수가 나게 되면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 대책도 없기 때문에 수 천에서 수 백만 인구가 기근(饑饉)이나 홍수(洪水)로 사망(死亡)하는 것은 결코 고대에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둘째로 인구의 격감이유(激減理由)는 전란(戰亂)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자가 수십만(數十萬)으로부터 수백만(數百萬)에 이르는 규모가 되는 경우이다. 예컨대 서기전 5세기~서기전 3세기에 걸쳐서 많은 살육의 사실로서 ‘사기(史記)’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진군(秦軍)과 조군(趙軍)이 장평(長平)의 싸움에서 진군(秦軍)이 대승(大勝)을 거두자 조군(趙軍)은 40만 군인이 항복했다. 진군(秦軍)은 이때 조군(趙軍) 40만을 생매장(生埋葬)했다. 또한 진군(秦軍)을 파한 항우(項羽)는 항복한 진군(秦軍) 20만을 생매장하고 있고 최근 모택동은 문화혁명 시 수천만을 살해했다.
 
이러한 천인공노할 살육(殺戮)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 때 731부대의 생태실험과 남경(南京)의 30만 민간인학살(民間人虐殺)을 행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사(戰史)에서나 로마시대부터 20세기까지 유럽제국(諸國)에서는 같은 동일민족(同一民族)끼리는 결코 지나(支那;中國)나 일본(日本) 같이 수십만 대학살은 없었다.
 
한편 유럽사에 있어서 학살은 민족이 다른 경우와 종교(宗敎) 이데올로기(ideology)가 다른 경우 학살을 볼 수 있으나 지나(支那;中國)에서와 같은 대학살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지나(支那;中國)는 2000년 이상 자기민족의 대학살(大虐殺)을 행한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우리도 6.25때 저지른 학살은 수적으로는 지나(支那;中國)과 일본에는 미치지 않으나 20세기 제2차 세계대전 후 1948년 세계인권선언(世界人權宣言)과 인도적(人道的)인 인권사상(人權思想)이 세계 흐름을 외면한 학살은 우리도 크게 반성할 점이다.
 
글을 맺으며
 
지나(支那;中國)의 역사를 아는 실마리로서 어찌해서 지나(支那;中國)에서는 왕조가 바뀔 때마다 수천만인이 사라지는지를 인구변천을 통해서도 볼 수가 있었다.
 
지나(支那;中國)의 역사를 연구하는 후학을 위해서 지나(支那;中國) 역대 인구의 변천을 1942년 발행된 ‘만철조사월보(滿鐵調査月報)’의 통계(統計)로 지나(支那;中國)역사를 살펴본다.
 
지나(支那;中國)의 인구 변천을 보면, 서기 2년의 전한시대(前漢時代)는 5959만 4978명에서 서기 57년에는 2100만명으로 3800만명 이상이 격감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서기 156년 후한시대(後漢時代)에는 5006만 6856명의 인구가 서기 242년인 삼국시대(三國時代)에는 763만명으로 4000만명 이상의 대 격감(激減)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42년 후 289년 진(晋) 때는 1600만명으로 인구가 늘었는데 서기 580년 수(隨)나라 때 900만명으로 감소헸다가 서기 606년 4601만 9056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당(唐)나라 때인 서기 626년에 1652만명에서 서기 755년에는 5291만 9309명으로 증가했다가 서기 976년 송(宋) 때는 1800만명으로 감소되었다. 1101년 4673만 4784명으로 증가했다가 서기 1101년 남송(南宋) 때는 1923만명으로 감소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나(支那;中國)가 살육하였나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원(元)나라 때인 1264년에 1302만명이 서기 1290년에는 5887만명으로 증가했고 명(明)나라에 와서는 5987만명으로 서기 1504년에는 6010만 5853명이 되고 있다. 이 인구가 청(淸)나라 때 1063만명으로 내려왔다가 1851년 4억 3216만명으로 10년 후인 1861년에는 2억 6688만명이 1910년에 3억 4200만명이 되어 있다.
 
1929년 소위 중화민국(中華民國)이 수립 후 4억 5000만으로 증가하고 지금은 14억의 인구로 세계 최고의 인구를 갖고 있는데 이 숫자도 정확하지가 않다. 지나(支那;中國)에는 미등록의 사람들이 많기에 정확한 인구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옳은 답이다.
 
지나(支那;中國) 역대왕조(歷代王朝)에 있어서 인구(人口)의 변천(變遷)은 구왕조(舊王朝)가 멸망해서 신왕조가 성립할 때 우선 세금을 거두기 위해 바로 호구조사를 행해 전왕조가 남긴 기록보관(記錄保管) 고(庫)는 파괴하지 않고 맨 먼저 이곳을 장악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로서 반드시 정사(正史)로서 기록을 남겼다. 인구의 변천에 관해서는 상당한 신뢰성(信賴性)이 있는 자료가 남겨지고 있다. 위 자료는 중화민국시대의 학자인 진장위(陳長衛)도 1932년 8월 중국사회학사(中國學社編)으로 발표한 논문 ‘중국인구문제(中國人口問題)’로부터 보족(補足)하고 있다. (以上은 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58面~66面, 貝塚茂樹, ‘中國の歷史’.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 하였음.)
 

 

위에서 보듯 지나(支那;中國)의 잔혹(殘酷)한 살육(殺戮)과 인간존엄과 생명의 존엄, 인간다운 삶의 생존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21세기 오늘도 이러한 상태는 용납하지 않은 국제사회인데도 전후 인권의 보호는 국제사회전반에 관련되는 공통의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음에도 아직도 상존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음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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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支那)의 역사는 95%가 조작된 역사 1편

2020-01-29 16:25:40 | 지나(支那)

지나(支那)의 역사는 95%가 조작된 역사

진왕(秦王)이 처음 황제 명칭을 사용했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기사입력 2019-12-14 12:49:58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지나(支那)의 역사를 살펴보면 진왕(秦王;정(政)이 서기전 221년에 제(齊)를 멸망시켜 춘추이래의 난세(亂世)를 통일하고 지금까지 사용하던 왕(王)의 칭호를 버리고 황제(皇帝)라 칭했다고 하며 그가 황제(皇帝)라는 칭호(稱號)를 처음 사용했다고 하나 모두 날조(捏造)이다.       
 
또한 진왕(秦王)은 대륙의 중원(中原)을 완전히 통일(統一)했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과장(誇張)된 말이다. 그는 중원을 완전히 통일한 것도 아니고 세계 최초로 황제라 칭하지도 않았다. 지나(支那)가 그를 높이기 위해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나(支那)는 진왕(秦王)이 중원(中原)을 통일해서 지나(支那)라고 했다고 했는데 이 지나(支那)를 중국(中國)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폄하(貶下)하며 말하는 이적(夷狄)에 대립하는 개념(槪念)이며 여기서 중국(中國)이란 문자(文字) 그대로 우수(優秀)한 문화(文化), 문명(文明) 꽃이 피는 중앙(中央)의 나라라는 의미(意味)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에게서 문화와 문명이 전수(傳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인(支那人)들이 자신(自身)들을 높이기 위하여 자칭(自稱)해서 부르는 미칭(美稱)이 중국이다.
 
우리도 지나(支那)를 지금은 정식으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또는 중국(中國)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중국이라는 것은 우리가 먼저 사용(使用)한 명칭(名稱)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卷二 駕洛國記)’에 보면, 수로왕(首露王)이 황천(皇天)의 명(命)을 받아 왕(王)이 되었다고 하면서 가락국(駕洛國)을 ‘중국(中國)’이라 칭(稱)했다고 했다. 황천(皇天)의 명(命)과 결부된 중국(中國)이라는 것은 세계의 중심지를 가리킨 것이다.
 
지나(支那)는 가락국(駕洛國)을 중국(中國)이라 칭(稱)한 것을 가로챈 것이다. 여기서 중화(中華)라는 것은 지나인(支那人)이 자국(自國)을 부르는 미칭(美稱)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제대로 구분해서 중국(中國)이나 중국인(中國人)으로 부르는 것보다 지나(支那)와 지나인(支那人)이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이다.
 
여기서 지나(支那)라는 것은 주로 외국인이 ‘지나(支那)’라 부른 것인데 그 유래는 진왕(秦王)이 건국한 진(秦)에 있으며 그 국명(國名)이 주변제국(周邊諸國)으로부터 유럽에 전해져서 그 명칭도 진(秦) 지나(支那, 또는 차이나)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인도(印度)에서 쓰여진 산스크리트어(語)의 불전(佛典)에서는 지나사정(支那事情)을 기록한 것이 있어서 여기서 지나(支那) 등으로 한역(漢譯)돼서 세계 모든 나라들이 지나(支那)를 어원(語源)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도 지나(支那)로 부르는 것이 옳다.
 
지나(支那)의 역사적 사실 제대로 알아야
 
우리나라는 역사가 왜곡된 것이 800년에 이르며 중국이 대단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것 같이 포장되어 있는데다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우리 역사를 철저히 뒤집어 놓아서 우리나라 역사가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를 자학사관(自虐史觀)으로 뒤엎어 놓은 데서 역사말살(歷史抹殺)을 해 왔는데 아직도 자학사관(自虐史觀)에 매어 있다면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것도 모르고 지나(支那)의 이미지를 거의가 사마천(司馬遷)의 쓴 ‘사기(史記)’나 ‘삼국지(三國志)’, ‘18사(史)’ 등의 ‘고대의 역사서(歷史書)나 ‘논어(論語)’를 비롯해서 ‘사서오경(四書五經)’ ‘서유기(西遊記)’나 ‘수호지(水湖志)’ 등에 익숙해서 문화적으로 지나(支那;中國)라는 이미지로 도배돼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支那;中國)라는 역사의 밝은 사실만을 미화(美化)한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으로 그들의 어떠한 일을 해 왔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어두운 면도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모르면 허망(虛妄)한 것만 좇아갈 뿐이다.
 
필자가 지나(支那;中國)의 역사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지나(支那;中國)의 역사와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해왔는지를 바로 알아야 하기에 지나(支那;中國)의 어두운 면도 추적해 살펴봐야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조선조 500여년과 지금까지 지나(支那;中國)의 어두운 면을 말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고 지나(支那;中國)의 역사가 너무 미화(美化)돼 있다. 필자는 역사적 추적을 위해서는 지나(支那;中國)의 어두운 면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들이 주변 민족에 대한 침략(侵略)과 말살(抹殺), 왕조교체기(王朝交替期)마다 수천만(數千萬)의 단위(單位)로 반복(反復)된 대학살(大虐殺)의 전율(戰慄)의 4000년 역사임을 제대로 알아야 그 이면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지나(支那;中國)는 수천 년 역사에 있어서 어떻게 침략(侵略)하고 지배(支配)했으며 약탈(掠奪), 말살(抹殺), 차별(差別), 학대(虐待)를 반복해 왔는가!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지금도 지나(支那;中國)는 자국 어린이에게도 이 사실을 숨기며 가르치지 않는다.
 
한제국시대(漢帝國時代)의 사마천(司馬遷)은 은(殷)부터 한(漢)까지의 각기 역사(歷史)를 ‘사기(史記)’라는 책으로 만들었다. 사기는 권력자에 아부(阿附)하기 위해 거짓을 쓴다든가 거짓말이나 왜곡하지 않고 지나(支那;中國)의 소행(所行)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바른 역사 인식태도라 자부하는데, 이는 지나(支那;中國)의 어두운 면을 감춘 것이다.
 
지나(支那;中國)의 역사왜곡 원칙과 일본의 원칙도 가관
 
필자는 지나(支那;中國)와 왜(倭;日本)의 역사를 연구하다 보니 여러 각도에서 그들의 역사를 추구하게 되는데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중국과 일본, 우리 자학사관(自虐史觀)자들은 이 ‘사기(史記)’를 많이 인용하는데 이 ‘사기(史記)’ 자체가 거의 지나(支那;中國)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19년 11월 22일 ‘한국우리민족연구회’와 ‘삼국사연구회’, ‘우리역사교육원’이 공동 주최한 포럼의 격려사(激勵辭)에서 필자는 분명히 “중국 역사는 5%도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원등비(袁騰飛) 교사가 말한 것이나 일본의 사학자 아고기요히코(吾鄕淸彦)가 이야기한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고조선사(古朝鮮史)를 거꾸로 교묘히 꾸민 것이다”라는 말과 같이다.
 
우리는 사서들이 거의 없애거나 불질러 없앴기에 거의가 위서(僞書)인 사서(史書)를 인용하게 되는데 지나(支那;中國)와 왜(倭;日本)의 역사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지나(支那;中國)는 95%이상이 조작이고 왜(倭;日本)의 역사는 상반(上半)이 우리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나(支那;中國)와 왜(倭;日本)의 역사를 다룰 때는 특히 유의해야 함은 그들의 역사필법은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고대부터 휘치필법(諱恥筆法)으로 지나(支那;中國)의 수치스러운 역사는 숨기고 외국은 깎아내리고 작게 쓰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나(支那;中國)는 자기들이 조작(造作)된 역사를 철저히 숨기고 알리지 않는다.
 
또한 일본(日本)의 역사기술(歷史記述) 역시 승리(勝利)는 과장(誇張)하고 패배(敗北)는 고쳐서 개서(改書)하고 양자강 이남과 타이완(臺灣)에서 다시 일본열도(日本列島)로 간 사실(亡命)은 서술(敍述)하지 않는다는 수법(手法)을 일본역사日本歷史)를 작성(作成)하는 기본원칙(基本原則)으로 허장성세를 벌여 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나(支那;中國)의 수치스러운 역사의 예를 든다면 그들은 왕조교체기(王朝交替期)마다 수천만(數千萬)의 사람들이 살육(殺戮)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서책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왜 지나(支那;中國)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지 않은 원격지(遠隔地)를 황제가 지배하였는지, 또한 조공제도(朝貢制度)가 20세기까지 행해졌는지, 이에 대한 서물(書物)을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에서도 명확히 답한 것이 없다.
 
또한 그들은 피해자에 대한 반성도 없다는 것이 지나(支那;中國)가 취해온 정책이다. 그들은 대집단의 민족도 거리낌 없이 절멸(絶滅)시킨 예가 무수히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타이완(臺灣)의 유명한 평론가(評論家) 백양(柏楊) 씨는 지나(支那;中國)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서 “중국사는 참으로 박해의 역사이며 지나(支那;中國)의 문화는 인간에 대한 존엄(尊嚴)과 포용력(包容力)이 전혀 결여(缺如)되고 있다”고 했다.
 
 
계속..

‘우한 폐렴’의 정체 드러나기 시작

2020-01-29 15:33:20 | 지나(支那)

‘우한 폐렴’의 정체 드러나기 시작

지난해 11~12월 발생, 사람 간 2차 감염 단계 진입

 

2020.01.28 11:28 이강봉 객원기자

 

 

‘우한 폐렴’ 환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과학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27일 ‘BBC’, ‘가디언’ 지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현재 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사람에게 전염되고, 다시 사람으로부터 사람으로 전염되는 ‘스필오버(Spillover)’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그 진원지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다양한 바이러스를 보유한 박쥐와 치열한 먹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원숭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이 원숭이를 잡아먹은 어떤 동물이 사람과 접촉해 바이러스를 전파했을 수 있다는 추정 하에 최초의 감염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우한 폐렴’을 유발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여행객들이 공포에 휩싸이고 있는 가운데 과학자들과 신종 바이러스 간에 바이러스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치열한 사투가 이어지고 있다.  ⓒ 이강봉/Sciencetimes

과학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씨름 중

과학자들의 주장대로 ‘스필오버’가 사실이라면 향후 사태와 관련, 두 가지 경우가 예상된다.

동물과 사람 간의 1차적인 경로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1차 경로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 간의 2차적 경로에 들어서 있는지를 말하는데 1, 2차 여부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먼저 1차적인 경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가 매우 수월해진다. 특정 동물과 사람 간의 감염 경로를 막아 빠른 시일 내에 폐렴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2차로 사람과 사람 간의 감염이 이미 시작됐을 경우 감염 사태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

미국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FHCRC)의 진화유전학자인 트레버 베드포드(Trevor Bedford) 박사는 “바로 지금이 모든 인류에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중요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진료 및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차 경로보다는 2차 경로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중이다.

지나(支那) 정부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지나(支那) 국가주석은 춘제(지나(支那) 설) 기간인 25일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열어 ‘우한 폐렴’에 대한 대응을 논의했고, 향후 사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지난 26일 현재 지나(支那) 우한 시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80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2차 경로에 들어섰을 경우 감염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 간의 감염일 경우 상황 더 나빠져

코로나바이러스는 조류뿐만 아니라 사람을 비롯한 다양한 포유류에서 발견된다.

그 종이 다양한 만큼 서식하는 방식도 다양해 수많은 동물에 서식하면서 호흡기와 소화기 등에서 다양한 증상을 유발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감기 증상을 유발하는 정도로 알려져 왔으나,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 그리고 지나(支那) 우한 시에서 발생한 전염성 폐렴과 같이 심각한 증세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과학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은 그동안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죽음에 이를만큼 치명적인 증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FHCRC 베드포드 박사와 같은 유전학자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 ‘2019-nCoV’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고 있다. 7일 정도의 긴 잠복기를 거친 뒤 발열이나 기침, 호흡곤란에 이어 중증 폐렴으로 발전한다는 것.

과학자들을 더 당혹게 하는 것은 ‘2019-nCoV’의 균주들이 환경에 적응해 끊임없이 새로운 균주들(strains)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들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이 결핍돼 있어 어디서 이 균주들이 비롯된 것인지 그 조상을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난해 11~12월 등장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최근 1~3개월 사이의 급속한 감염이 동물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명확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 노팅엄 대학의 바이러스 전문가인 조나단 볼(Jonathan Ball) 교수는 “가장 먼저 지나(支那)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있다며, 지나(支那) 보건 당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촉구했다

26일 영국의 최고 의료 책임자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크리스 휘티 (Chris Whitty) 교수는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영국은 물론 세계 전역이 ‘2019-nCoV’의 사정권에 들어선다.”며, 대책을 서둘러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24일 의·약학 전문 학술지 ‘란셋(LANCET)’에는 4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진료 결과가 게재했다.

3분의 2가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었던 해산물과 뱀과 박쥐 등 야생동물을 섭취하거나 접촉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환자들은 급격한 피로감과 두통, 설사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란셋’에 게재된 또 다른 논문에는 최근 우한을 여행하고 온 다섯 가족의 진료 결과가 담겨 있는데 발열, 설사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과는 달리 한 아이는 아무런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과학자들이 신종 바이러스를 파악하는데 더욱 어려움을 주고 있다.

홍콩 최고의 전염병 전문가인 홍콩대 위안궈융(袁國勇) 교수는 “신종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고립된 환자를 대상으로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내고, 대중과 협력해 폐렴을 예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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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支那)족 입국 금지 요청 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4593 
 
 
 이 상황이 장기화되면 식량이 떨어져 지나종특 인육 카니발리즘이 횡횡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