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과연 국회에 들어가 친북좌파를 청산할 수 있을까? |
金成昱 |
한나라당은 이번 공천에서 보수성향 중진은 물론 애국운동을 벌여온 右派인사를 배제해 버렸다.
반면 90년대 초반 활동했던 민중당 출신이 주요 파벌로 떠올랐고, 李明博 대통령 참모로 활동해 온 386운동권 출신들도 대부분 공천됐다. 실로 左派출신이 한나라당 주류로 등장한 셈이다. 이념은 감정이다. 안타깝게도 左派출신은 사상적으로 전향을 했어도 정서적으론 돌아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에서 끝나지 않은 냉전(冷戰)을 회피하고, 반공(反共)에 손사래 친다. 집단화 될 땐, 이런 현상이 극대화된다. 보통 땐 멀쩡하다가도 左派출신끼리 모이면 김일성주의 전력을 훈장처럼 들먹인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左派출신은 뉴라이트와 같은 최소한의 반성이나 재교육도 받지 않았다. 이들이 과연 국회에 들어가 사회 곳곳에 만연한 친북좌파를 청산하고, 북한의 급변사태를 처리해 자유통일을 이뤄낼 수 있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자료. 한나라당 내 민중당 출신과 민중당의 실체] 1. 한나라당은 최고 실세로 불리는 이재오(李在五) 의원과 경기도지사 김문수(金文洙) 의원이 각각 민중당 사무총장과 노동위원장 출신이다. 한나라당 최종공천 결과, 李在五 의원 외에도 민중당 멤버였던 박형준(朴亨埈, 부산 수영), 정태윤(鄭泰允, 부산 남乙), 차명진(車明進, 부천 소사), 임해규(林亥圭, 부천 원미甲), 김성식(金成植, 서울 관악甲), 허숭(許崇, 경기 안산 단원甲)씨가 공천을 받았다. 역시 민중당 활동을 했던 최유성(崔有成, 서울 금천), 노용수(魯龍洙, 경기 시흥甲), 최우영(崔佑榮, 남양주 乙), 조춘구(曺春九, 서울 성북乙)씨는 최종심사에서는 탈락했지만 1차 공천심사에서 통과됐었다. 2. 민중당은 1990년 11월10일 공식출범했다. 『민중의 수탈과 억압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 분단(分斷)과 예속(隸屬)체제를 타파하겠다(발기취지문)』『외세(外勢)와 군사독재를 종식시켜 민중주체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겠다(창당선언문)』『민중의 역량을 결집해 독재(獨裁)권력과 독점(獨占)재벌, 외세(外勢)의 지배(支配)를 청산함(강령)』 등 민중당은 대한민국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 상태로 인식했다. 또 『민중주체 의회 제도를 정착시키고 재벌을 해체하며 기간산업 및 일정규모 이상의 토지를 국유화(國有化)한다』며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한편 『1단계로 남북한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2단계로 남북 地域정부의 자치권이 동등한 권한을 갖는 연방제(聯邦制) 방식의 통일국가를 창출하겠다(以上 민중당 발표 기본정책 中)』며 연방제 통일을 주장했다. 민중당은 창당 이래 국가보안법 폐지를 줄곧 주장해 왔다. 92년 2월27일 총선공약에서는 국방비 획기적 감축, 예비군 및 민방위 폐지 등 국군의 무장해제와 함께 국보법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민중당은 북한정권과의 공조에도 역점을 기울여왔다. 90년 8월3일에는 소위 북한의 정당 및 사회단체와 민족통일문제를 협의키 위해 30명에 달하는 북한방문대표단(단장 이재오 조국통일위원장)을 구성했다. 91년 2월23일에는 조선로동당의 초청을 수락해 방북을 결정하기도 했다. 3. 親北·左派 노선을 걸어 온 민중당 당 간부들은 굵직굵직한 간첩사건에 거듭 연루돼왔다. 90년 10월 검거된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는 이성수 민중당 인천 남동구지구당 사무장 등 다수의 당 관계자들이 검거됐다. 92년 9월에는 다수(多數)의 민중당 간부 출신이 「남한조선로동당(남로당)」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졌다. 남로당 사건은 해방 이후 최대 간첩사건으로서 민중당 前대표 김낙중(金洛中)을 주범으로, 민중당 前고문 권두영, 민중당 前조국평화통일위원장 손병선 등 주요 간부가 연루됐었다. 金洛中은 36년간 간첩으로 암약하면서 북한으로부터 미화 2백10만 달러(한화 약 16억 원)를 넘겨받아 민중당 창당을 지원하고 장기표(張琪杓), 이우재(李佑宰) 등 민중당후보 18명의 선거자금에 사용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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