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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支那)의 식인문화 (정말 공자님은 인육을 쳐 드셨던 걸까요?)

2020-01-27 10:01:57 | 식인종 지나(支那食人文化)

 

지나(支那)의 식인문화 (정말 공자님은 인육을 드셨던 걸까요?)

 

강태희

2003.12.20 23:29:17 (*.181.103.201)

 

 

 

<< 눈 덮인 들길 걸어갈 제 행여 그 걸음 아무렇게나 하지 말세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書 - 백범 김구, 作 - 서산대사) >>

아래의 있는 글은 다음카페에 올라와 있던 글입니다. 
정말 공자님은 인육을 드셨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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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支那)의 식인문화 >>
 
대만의 사학자 황문웅은 지나(支那)의 식인문화는 5천년을 관통하며 지속되고 있고 식인문화를 알지 못하고서 지나(支那)의 역사와 문화를 논한다는것은 있을수 없는일이며 지나(支那)인의 보편적인 사고방식도 이해할수 없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왜 지나(支那)인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부모자식간에서 배신을 하는가? 왜 지나(支那)인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 잔인한가? 왜 지나(支那)는 지나(支那)특유의 대가족주의가 발달했는가 등등.. 이모든것이 식인문화와 관련이깊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식인문화로 인한 폐해와 지나(支那)인들의 사고에 미친 악영향을 노신은 광인일기를 써서 정면으로 비판했죠. 

 
 
지나(支那)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지나(支那)의 식인문화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를 한 사람들은 바로 일본인들입니다. 그들은 이 식인문화 연구를 통해 지나(支那)인의 특성을 잘 간파하고 있었고 이를 대지나(支那) 전략을 짜는데 기본지식으로 활용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옆나라에 살면서도 지나(支那)의 식인문화가 존재했는지 조차도 모르고 그것이 지나(支那)사람들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게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차이가 아닐까요? 여기 계신 분들이 허락하신다면 제가 알고 있는 지나(支那)의 식인문화를 연재형식으로 차례대로 올릴까 하는데 허락해주시면 하루나 이틀에 한개정도 제가 시간이 날때마다 정리해서 올리고자 합니다. 
 
 

 

 

지나(支那)의 식인문화는 미개종족의 식인문화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확실히 지나(支那)의 식인문화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역사와 정치,문화 지나(支那)인의 사고방식에 미친 영향은 엄청납니다. 왜 지나(支那)인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며 부모자식간에도 안믿는지.. 식인문화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실것입니다. 또 입으로는 예를 외치면서도 같은 입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그들의 심리상태토 이해가 가실겁니다. 연재해도 좋다는 리플이 있으면 연재를 시작할까 합니다. 그럼 건강하십시요. 

 

 

식인종으로 알려진 마사이족 여자들이 뇌가 석회화되어 죽는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세계보건기구에 보고되었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역학팀을 보내 연구했더니 그들의 식인풍습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고기는 제일 좋은 부분부터 남자, 노인, 어린이 차지가 되고 가장 먹기 어려운 골수나 뇌부분을 여자들이 먹기 때문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 식인문화가 생겨난 배경

 
 
 

1.격한쟁투에 따른 가혹한 형벌제도의 탄생 

 
지나(支那)의 역대 황제들은 율령에 의해서 성문법을 규정했습니다. 중원을 둘러싼 격렬한 쟁투는 잔혹한 보복을 낳았고 잔혹한 형벌제도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잔혹한 형벌들은 지나(支那)의 식인문화를 정당화시키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전세계에 유래가없는 황제의 명령에 의한 인간1의 고기를 먹거나 먹이게 하는 "식육의 형벌" 이 그것이며 그 잔혹한 형벌은 놀랍게도 성문법으로 규정되어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주나라시대에는 중죄인에게 5가지 형벌을 내리는데 묵형, 비형, 궁형, 월형, 살형이 성문법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묵형은 이마에 먹으로 죄인의 문신을 새기는것이고 궁형은 거세를 시키는 형이며 월형은 다리를 자르는형입니다. 사상가인 묵자는 묵형을 받았고 사마천은 궁형을 그리고 병법의 대가인 손자는 월형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 형벌은 더 잔혹해지고 가짓수도 대폭적으로 늘어나 나중에는 여자의 생식기를 틀어막아 버리는 형벌까지도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식육의 형벌이 성문법으로 기록되어 실시되게 되며 이는 전 중국인의 식인풍습을 확산시키는데 기폭제 역활을 하게 됩니다. 

 
 
 

 

2.지나(支那)의 역사는 살인의 역사 

 
지나(支那)의 역사상 대규모적인 내란은 진시황제 이후 1920년까지 160차례이고 소비된 기간은 896년입니다. 즉 3년에 1년은 내란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봉건영주간의 침탈전쟁은 448차례에 이르고 대규모 전쟁은 222차례입니다. 소비된 기간은 이루 말할수 없을정도지요. 
 
 

 

근대에 이르면 이러한 양상은 더욱 격해집니다. 중화민국 정권수립이후 22년 동안 7백회의 내전이 발생했고 그중 사천성에서만 5백회이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두고 모택동은 지나(支那)를 방문한 알바니아 군사대표단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나(支那)인을 가르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 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투쟁과 전쟁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양계초라는 인물은 지나(支那)인을 육민(戮民)이라 칭했는데 이는 전란에 의한 살육사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국민이란 뜻입니다. 내란과 기근이 덮칠때마다 소,돼지처럼 죽어가는것이 역사의 숙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1989년 천안문 사태에서 또다시 한번 증명됩니다. 

 

 

 

 

3.역사상 유래를 찾을수 없는 천재지변과 기근 

 
등운특이란 사람이 지은 지나(支那) 구황사란 통계에 의하면 지나(支那)는 기원전 18년 부터 1937년 까지 수해, 한발, 메뚜기창궐, 우박, 태풍, 지진, 대설등의 전채만 5천 2백여차례가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즉 평균 6개월마다 1차례의 재해가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가혹한 형벌체계의 발전과 성문법화, 그리고 전란의 역사, 그리고 기근의 역사, 대개 심한 기근이 들었을때 전란이 발생하는점을 두고보면 그때의 식량사정이 어떠했을런지는 어렵지않게 짐작이 가시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지나(支那) 정사 중 사기(史記)를 비롯한 이십육사등에 기록한 전란, 기근, 형벌로 인한 식인풍습은 220여차례가 기록되고있고 자치통감, 속자치통감, 명통감, 문헌통고, 속문헌통고, 등등의 자료에 기록된 식인풍습까지 계산하면 거의 셀수가 없을정도의 식인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나(支那)의 식인문화(3) 유교와 지나(支那)인의 식인의 관계 

 
지나(支那)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들의 역사를 알아야하고 그것이 그들 사고와 가치 및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직접 그들과 부딪히며 배워나가야 하겠죠. 

식인문화는 지나(支那)의 고유문화이며 이를 잘 이해하면 지나(支那)인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서 입니다. 이 연재글이 불쾌하시다면 연재를 중단할 계획입니다만.. 중단하라는 리플이 없는한 계속할 작정입니다. 

먼저 식인문화에 대한 전반을 살펴보고 그것이 지나(支那)인의 가족주의, 대인관계, 중화사상, 기업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름대로 분석하고 그것을 연재하려 합니다. 

지나(支那)의 식인문화가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중원을 둘러싼 격한 쟁투에 따른 잔혹한 형벌제도의 탄생과 사람을 잡아먹는 형벌이 성문법으로 제정되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는점과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수없는 잦은기근과 천재지변, 전쟁, 농업기술낙후로 인한 식량부족등이 한대 맞물리면서 확산되었다는것입니다. 

법적으로 식인이 허용되고 식량부족에 기근, 전란이 잦아들면서 차츰 식인문화는 아무 저항감 없이 지나(支那)민중에게 뿌리 박히게 되었던것 같습니다. 따라서 정쟁, 전쟁에서 패배한 정적, 적국군병 및 국민등은 "잡아 먹히는 인육"이 되는것은 너무도 당연했고 상황에 따라선 자국국민을 임의로 대량 징발해서 하루에 수천명씩 군대의 식량으로 사용되어진것도 지나(支那)역사를 살펴보면 결코 보기 드문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와 인의를 강조하는 유교도 이에 한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왜냐면.. 공자역시 정당한 복수를 칭송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나(支那)에서 왜 유교가 발달할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식인문화와 관련깊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떠도는 말중에 하나가 "만일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말은 그만큼 식인문화가 널리퍼져 있었고 모든 지나(支那)인이 사람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분위기가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예"와 "도덕"이 강조되어질수 밖에 없었고 그런 사회분위기 하에서 유교가 발달 했습니다. 
 
 

 

 

 

지나(支那)의 식인문화(4)지나(支那) 식인문화의 3대특징

 
1)지나(支那)문명의 발전과 그 식인문화의 전파는 그 족적이 일치한다. 
식인문화의 시작은 거의 대부분이 황하유역의 산동, 하남, 하북, 산서, 섬서성이 중심이었습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점차 남쪽으로 남하해가는 특징을 찾을수 있습니다. 이어 식인문화는 지나(支那)문화의 전파에 따라 남하하여 회화유역에서 장강을 넘어 산동, 복건성으로 파급되어 집니다. 

그 파급경로는 지나(支那)인들의 강남개발과 이주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즉 지나(支那)인이 많이 이주하면 인구가 급증하고 과잉개발에 의해 자연환경이 파괴되며 자연생태학적 균형이 깨어져 기근이 발생하고 식인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한나라 시대 고조 2년 부터 흥평원년에 이르는 400년 도안 식인현상은 대부분 지나(支那)문명의 시작인 황하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흥평 2년 이후에는 장강, 황하일대에서도 발생하고 강남, 광동, 복건성에서 식인현상이 나타는것은 지나(支那)세력이 남하한 3-4세기 이후 동진시대 이후가 됩니다. 

2)인구과밀지역과 일치한다. 
식인현상은 대부분 인구과밀지역과 일치해서 발생합니다.변경지역이나 미개발지역이 아닌 인구 과밀 개발지역에서 출현합니다. 특히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장안, 낙양, 개봉, 북경, 남경, 양주, 항주등의 도시가 식인문화의 다발지역임은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3)정치환경변화와의 인과관계가 있다. 
노신은 고대 지나(支那)국가 성립이후의 사회를 "사람이 사람을 먹는 역사사회" 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즉 노신이 말하고자 했던것은 국가라고 하는 사적인 권력에 의해 구축된 고대국가 폭력기관이 광대한 대중을 국가라고 하는 우리에 가두고 수탈의 대상으로 삼고 우리 속의 극빈한 군중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작용을 통해서 인구와 식량의 자동제어를 하고 자생자멸해간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하는것입니다. 

노신은 수탈의 가혹화와 인구 과밀화가 가져온 식량위기 및 자연-사회환경의 악화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를 형성하고 지나(支那)의 식인문화를 창출했다고 주장합니다. 


다음편에는 식인문화를 충성심으로 미화하는 케이스를 살펴보고 식인문화를 정당화 그리고 더 나아가 미화하고 칭찬하며 여러 사람에게 본받게 함으로써 식인문화를 더욱더 부추긴 역사를 소개하고져 합니다. 
 
 

 

 

 

 

지나(支那)의 식인문화(5) 역사에 기록된 지나(支那)인의 식인

 

 

지나(支那)에서는 기원전 206년부터 19C초까지의 식인기록이 정사에 200여개가 넘게 기록되어져 있다.사기(使記)에서는 은 왕조(지나(支那)최초의 왕조)의 마지막 임금 주왕이 자신의 신하들을 해, 포, 자로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해'를 좋아해서 식탁에 '해'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위나라의 신하로 공자가 총애하는 제자 자로가 권력다툼에 밀려 처형되었고 그의 시신이 '해'로 만들어져 공자의 식탁에 올려졌다. 그 날 이 후 공자는 해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육요리분류 해 : 인육을 잘 게 썰어 소금에 절인 고기 포 : 인육을 저며서 말린 고기 자 : 인육을 구워서 익힌 고기 


본초강목(本草綱目) : 인체 각 부위의 약효에 대해 기록 
철경록(輟耕錄) : 송나라 말기에서 원대에 이르는 시대의 인육 요리법을 기록한 책 
진수의 삼국지(三國地) 
- 현덕 유비가 '포'를 즐겨먹었으며 여포의 시신을 죄인들에게 먹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 지나(支那) 정사에 나타난 식인의 시초
 

 

어제는 은나라시대의 식인사례를 게재했습니다만 그것은 정사에 기록된 사례는 아닙니다. 오늘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즉.. 정사에 최초로 기록된 식인사례를 올리고자 합니다. 은왕조의 주(紂)왕은 대신인 구후의 딸이 절세미인이란 말을 듣고 아내로 삼았는데 그 아내가 너무도 정숙하고 외설을 좋아하지 않아 자신의 성적취향에 맞지않자 격노하고 그녀를 살해하고 그녀의 아버지 구후를 해(소금에 절인 육젓)으로 만들어 먹어버립니다. 

신하인 곽후가 이를 강력히 말리자 주왕은 곽후를 포(脯:찢어 말린고기)로 만들어 먹어버립니다. 그밖에도 주왕은 자신에게 간하는 신하 익후를 자(炙:불고기)로 만들어 먹어버립니다. 또 신하 귀후는 포로 매백은 해를 만들어 먹어버렸습니다.또 주왕은 신하인 황비호의 아내 경씨를 희롱하다 거절당하자 그녀를 해로 만들어 남편인 황비호에게 하사하고 먹게 합니다. 이에 황비호는 격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주왕을 제거하게 됩니다. 

동물세계에서나 통하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인간에도 적용되는 적나라한 사례입니다. 

 

 

 

 

 

 

# 식인의 시작 夏왕조시대 #

 

 

최초로 문헌에 기록된 식인풍습은 하나라때부터 시작합니다. 하왕조의 후예란 인물은 병사를 이끌고 약정국을 침공하여 국왕인 백봉의 궁전에 들어가 재산을 약탈하고 백봉을 살해한후 그 육신을 잘게 쪼개어 육장(肉醬)을 만들어 하나라 왕인 중강왕에게 바쳤습니다. 

즉 속국의 임금의 고기로 만든 육젓을 진미로 만들어 전리품으로 하왕에게 헌상한것입니다. 그 사건이 있고 얼마지나지 않아 후예는 그 신하인 봉몽과 자신의 애첩간의 공모에 의해 살해를 당합니다. 후예의 애첩은 과거 후예가 정복한 나라에서 전리품으로 데려온 왕녀였습니다. 

그녀는 후예를 살해한뒤 그를 역시 육장으로 만들었죠. 다음날 후예의 아들은 아버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의붓어머니에게 아버지의 행방을 묻자 후예의 육젓을 가져와 보여주며 "너의 아비가 우리나라를 멸망케하고 나의 아들을 죽여 육젓으로 담았으니 나도 너의 아비를 죽여 육젓으로 담았다. 너도 그의 아들이니 용서할수 없느나 니 아비의 육젓을 먹으면 용서해주겠다" 후예의 아들은 놀라 도망쳤으나 곧 잡혀 역시 육젓이 되었습니다. 


하왕조에서 처음으로 문서에 기록된 식인의 역사는 복수에 의한 것입니다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복수 및 형벌로서의 식인에서 군량비 대신쓰는 식량으로써.. 단지 사람고기를 너무나 맛있어해서 즐기는쪽으로 발전하고 대상도 죄인, 원수에서 아무런상관이 없는 자국백성 및 부녀자로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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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옹호하려는 친지나(支那) 쥐대가리들+친지나(支那) 홍어+조선족들의 댓글에 올려 놨던 댓 글

 

 

1990년대 중반경까지 일본에서 야키니쿠(불고기) 하면  일본인들은 무슨고기로 인식하고 있었을까? 
물론 야키니쿠(불고기)는 제일교포들에 의해서 퍼진 한국요리인데  

한국에선 보통 불고기에 사용되어지는 고기라하면 일반적으로 소고기와 돼지고기 두 종류지만 
일본에선 오키나와 지역을 제외한 육지쪽에선 대체로 돼지고기로 만들어진 요리종류가 돈카츠등 몇가지 외엔 그다지 많지않고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1990년대 중반경까지는 일본인들에게 야키니쿠에 사용되는 고기는 누구랄것 없이 소고기 란 대답이 나왔고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실제 1990년 대 초 일본인들에게 물어 보고 들은 사실) 

지금은 한국 관광와서 돼지고기맛을 알게 된 일본 관광객들에 의해 돼지고기를 찾는 일본인들도 많아진 편이다. 

고대 지나(支那:짱깨)의 해(醢)는 지나(支那:짱깨)인들에게 무슨 고기로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그러고 공자놈께서는 해(醢)를 무슨 고기로 알고 즐겨 쳐 먹었을까~요?? 



他被处以最残酷的醢刑。 그가 가장 잔인한 해형에 처해졌다. 
醢时古代的一种酷刑。 해(醢)는 고대 형벌의 일종이다.

 

-흥부의 성-

국회  문죄앙 탄핵 청원 (효력없는 적와대 청원이 아닌 효력있는 국회청원임 : 10만 이상시 효력 발생)

☞ ☞ ☞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9EB32089E7B105CBE054A0369F40E84E

 


지나(支那)족도 혀를 내두르는 지나(支那) 혐오음식

2020-01-26 23:56:39 | 식인종 지나(支那食人文化)

지나(支那)인도 혀를 내두르는 지나(支那) 혐오음식

 

자고로 지나(支那)의 음식문화는 다양하고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독특한 재료, 희한한 요리법, 요리사의 상상력이 더해져 상상을 초월하는 ‘음식’을 창조해 내곤 한다.

가끔은 이해 불가능한 재료들로 만들어 낸 ‘별종 음식’들도 눈에 띄는데, 최근 중국 온라인 매체‘미식미언(美食美言)’에 보도된 ‘별난 재료, 별난 음식’들을 소개한다.

1. 자혈육(紫血肉)

 

 
 
 



첸동난(黔东南) 동족(同族) 음식인 ‘자혈육’의 주재료는 돼지고기와 돼지피다. 여기서 쓰이는 돼지피는 반드시 복강혈(腹腔血)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요리시 피가 쉽게 응고되기 때문이다. 요리법은 매우 간단하다. 익힌 돼지고기에 돼지피를 섞어 먹는다. 우리나라에도 소나 돼지 피로 만든 선지 음식이 있지만, 고체 상태라 먹기에 그다지 역겹지가 않다 그러나 자혈육은 돼지피를 액체 상태 그대로 돼지고기에 부어 먹는다.

2. 변변어(便便鱼)

 

 
 



‘변(便)’은 대변(大便)의 ‘변’으로 배설물을 의미한다. 어려서부터 인간의 배설물을 먹고 자란 물고기를 뜻한다. 첸동난(黔东南) 지역에서 주로 먹는다.

3. 량반계혈(凉拌鸡血)

 

 
 



꾸이양(贵阳)의 유명한 간식으로 명칭 그대로 닭피에 조미료, 야채, 땅콩 등을 넣어 버무려 먹는다. 현지 훠궈(火锅·중국식 샤브샤브) 음식점에서 판매되며, 양혈작용 및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닭피는 반드시 깨끗하게 세척해야 하며, 청결하지 않은 경우 인체에 해롭다.

4. 찹쌀생고기(糯米生肉)

 

 
 



꾸이저우성(贵州省) 창순현(长顺县)의 별식요리다. 찹쌀에 생고기와 조미료를 섞어 항아리에 넣어 한달 간 밀봉한 뒤 꺼내 먹는다. 일반적으로 술안주로 즐겨 먹는다.

5. 취산(臭酸)

 

 
 



과거 냉장고가 없던 시절 먹다 남은 음식을 모아 밀봉한 뒤 효모로 만들었다. 한달 뒤 음식을 꺼내 다시 먹었다. 음식 모양새는 물론이요, 냄새 또한 심한 악취를 풍겨 지나(支那)인들조차 먹기를 꺼려하는 음식이다.

6. 자오씽 쥐구이(肇兴烤鼠)

 

 
 



꾸이양(貴陽) 자오씽(肇兴)에서는 가을 수확기가 되면 들에 나가 들쥐를 잡아 구워 먹었다. 들쥐를 불에 굽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간장에 삶는 등의 방식으로 요리해 먹는다.

7. 소똥훠궈(牛粪火锅)

 

 
 



이름만 보고 소의 분비물을 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음식은 소의 위에서 소화된 약초를 꺼내 훠궈(火锅)에 조미료로 사용해 먹는다.

8. 구붕장(狗蹦肠)

 

 
 



‘개고기 소시지’로 꾸이저우(贵州) 소수민족의 가정식 별미요리다.

9. 방귀벌레 볶음(炒放屁虫)

 

 
 



곤충을 먹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방귀벌레는 좀 특이하다. 그러나 ‘본초강목’에는 ‘구향충’이라 하여 신경성 위병, 신경우울증, 기력부족 등의 병에 큰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우선 방귀벌레는 온수물에 담궈 ‘냄새’를 제거한 뒤 말려 기름에 튀겨낸다. 여기에 고추, 산초열매, 미나리, 생강채, 박하채 등을 곁들여 먹는다.

지나(支那) 최고 잔인한 음식

한편 현재 지나(支那)에서는 금지된 ‘잔혹 음식’들도 있다. 동물들을 식재료로 삼는데, 동물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해서 현재는 금지된 음식이다.

지나(支那)에서 가장 잔인하기로 손꼽히는 음식은 싼쯔얼(三吱儿), 원숭이뇌(猴脑), 탄카오루양(炭烤乳羊), 카오야장(烤鸭掌) 등이 있다.

 

 
▲ 싼쯔얼



‘싼쯔얼’은 갓 태어난 새끼쥐를 산 채로 먹는 요리다. ‘쯔얼(吱儿)’은 새끼쥐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다. ‘싼쯔얼’이니 새끼쥐가 세번 ‘찍’하며 운다는 의미다. 막 세상에 태어난 새끼쥐가 접시에 담겨 나온다. 젓가락으로 살아있는 쥐를 잡아 올리는 순간 ‘쯔얼(吱儿)’, 쥐를 들어 조미료에 담그는 순간 ‘쯔얼’, 마지막으로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쯔얼’, 이렇게 세번 운다고 해서 ‘싼쯔얼’이다.

‘원숭이뇌’ 요리는 중간에 구멍이 뚫린 탁자에 2~4명이 둘러 앉아 구멍을 통해 원숭이 뇌를 들어올려 금속 테두리로 결박한다. 날카로운 칼로 두개골을 자르면 연두부 같은 원숭이 뇌가 보인다. 여기에 펄펄끓는 기름을 붓고, 다진 파를 얹어 수저로 젓는다. 계속해서 뜨거운 기름을 부으며 먹는다. 요리를 먹는 내내 원숭이의 참혹한 비명이 들린다.

 

 
 



‘탄카오루양’의 ‘루양(乳羊)’은 말 그대로 젖먹이 양을 뜻한다. 껍질은 바삭하고 고기는 부드러워 맛좋기로 유명한 음식이다. 그러나 이 음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끔찍하고, 잔인하다.

우선 출산에 임박한 어미양을 숯불에 올려 굽는다. 숯불이 어미양의 전신에 붙으면 칼로 배를 갈라 어미양을 꺼낸다. 이렇게 자궁에서 막 꺼내든 어린양으로 만든 요리다. 말은 젖먹이 양이지만 어미젖을 맛보기도 전에 인간의 식탁 위에 올라오는 것이다.

 

 
 



카오야장(烤鸭掌)은 오리발바닥 요리다. 조미료를 칠한 철판에 열을 가한 뒤 산 오리를 올려둔다. 오리는 뜨거운 열기에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오리 발바닥이 불에 익으면 오리는 산 채로 발목이 잘린다. 잘린 오리 발바닥이 식탁 위에 오른다.

‘미식’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라지만, 생명을 지닌 동물을 이토록 잔인하게 희생해 가며 만들어낸 음식이 과연 얼마나 ‘맛’과 ‘영양’을 주는지 의문이다. 지금은 ‘금지된 음식’이지만, 애초에 존재해선 안되는 음식이었지 않나 싶다.

사진=미식미언(美食美言), 바이두바이커(百度百克)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국회  문죄앙 탄핵 청원 (효력없는 적와대 청원이 아닌 효력있는 국회청원임 : 10만 이상시 효력 발생)

☞ ☞ ☞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9EB32089E7B105CBE054A0369F40E84E

지나와 홍어는 죽여도 된다.
특히 주변에 지나새끼들 (특히 여론조작하는 지나 유학생 먼저)이 있으면 흔적없이 죽여 버립시다!


이건 빨간 원숭이 탄핵 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UQwzdP

이건 전에 내가 쓴것
https://www1.president.go.kr/forums/37957

지나(支那)족 입국 금지 요청 청원!

2020-01-25 19:40:01 | 사회,정치(社会、政治)

지나(支那)족 입국 금지 요청 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4593


이 상황이 장기화되면 식량이 떨어져 지나종특 인육 카니발리즘이 횡횡할것이다

국회  문죄앙 탄핵 청원 (효력없는 적와대 청원이 아닌 효력있는 국회청원임 : 10만 이상시 효력 발생)

☞ ☞ ☞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9EB32089E7B105CBE054A0369F40E84E


지나와 홍어는 죽여도 된다.
특히 주변에 지나새끼들 (특히 여론조작하는 지나 유학생 먼저)이 있으면 흔적없이 죽여 버립시다!

이건 빨간 원숭이 탄핵 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UQwzdP

이건 전에 내가 쓴것
https://www1.president.go.kr/forums/37957

<한자여행>想肉-人肉,곧 사람고기를 뜻해

2020-01-24 18:20:34 | 일반 정보(情報)

<한자여행>想肉-人肉,곧 사람고기를 뜻해

 

[중앙일보] 입력 1996.03.13 00:00

 

지나(支那)사람처럼 먹는 것을 중시하는 민족도 드물다.그래서인지 미식(美食).진식(珍食).기식(奇食)의 극을 다하고 있다.

기식의대표적인 경우로 인육(人肉)을 들 수 있다.반고(班固)의『한서(漢書)』「왕망전(王莽傳)」에 보면 기원전 24 년 장안(長安)에 

기근(饑饉)이 들어 수십만명이 잡아먹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식도락(食道樂)의 일환으로 인육을 먹었다면 놀라운 일이아닐 수 없다.

미식가(美食家)였던 제환공(齊桓公)에게 주방장 이아(易牙)는자기 아들을 삶아 바쳤으며,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가 위(衛)나라의 내란에 연루되어 죽자 

위는 그를 젓(해)으로 담가 보내왔다.놀란 공자는 평생토록 젓을 먹지 않 았다고 한다.

 

또 유방(劉邦)은 신하 팽월(彭越)이 모반을 꾀한다고 소금에 절여 신하들에게 나누어 먹였다.

노신(魯迅)의 대표적 단편소설『광인일기(狂人日記)』는 중국의 식인문화를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다. 

 

대체로 고기는 짐승의 이름에 「육(肉)」자를 붙여 표현하지만(牛肉.豚肉등)예외도 있다.

향육(香肉)은 「개고기」로 개고기를 먹는 것은 지나(支那)사람들이 원조(元祖)라고 말한 바 있다(95년8월6일자「香肉」참고).

 

또 지나(支那)사람들은 사람 고기 를 「想肉」이라고 한다.상육을 파는 시장은 전국에 걸쳐 있었으며 청(淸)나라 말기까지 성행했다.

끔찍한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지고 있다.

기근에 시달린 북한주민들이 사람까지 잡아먹었다는 것이다.초근목피(草根木皮)도 부족해 이젠 想肉까지 먹게 된 모양이다.

 

[출처: 중앙일보] <한자여행>想肉-人肉,곧 사람고기를 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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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옹호하려는 친지나(支那) 쥐대가리들+친지나(支那) 홍어+조선족들의 댓글에 올려 놨던 댓 글

 

 

1990년대 중반경까지 일본에서 야키니쿠(불고기) 하면  일본인들은 무슨고기로 인식하고 있었을까? 
물론 야키니쿠(불고기)는 제일교포들에 의해서 퍼진 한국요리인데  

한국에선 보통 불고기에 사용되어지는 고기라하면 일반적으로 소고기와 돼지고기 두 종류지만 
일본에선 오키나와 지역을 제외한 육지쪽에선 대체로 돼지고기로 만들어진 요리종류가 돈카츠등 몇가지 외엔 그다지 많지않고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1990년대 중반경까지는 일본인들에게 야키니쿠에 사용되는 고기는 누구랄것 없이 소고기 란 대답이 나왔고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실제 1990년 대 초 일본인들에게 물어 보고 들은 사실) 

지금은 한국 관광와서 돼지고기맛을 알게 된 일본 관광객들에 의해 돼지고기를를 찾는 일본인들도 많아진 편이다. 

고대 지나(支那:짱깨)의 해(醢)는 지나(支那:짱깨)인들에게 무슨 고기로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그러고 공자놈께서는 해(醢)를 무슨 고기로 알고 즐겨 쳐 먹었을까~요?? 



他被处以最残酷的醢刑。 그가 가장 잔인한 해형에 처해졌다. 
醢时古代的一种酷刑。 해(醢)는 고대 형벌의 일종이다.

 

-흥부의 성-


젓갈 해字의 기원은 인육장 한자 탄생의 비사

2020-01-24 16:45:34 | 일반 정보(情報)

젓갈 해字의 기원은 인육장 한자 탄생의 비사

한자의 탄생

한자의 탄생 탕누어 지음ㆍ김태성 옮김 김영사 발행ㆍ340쪽ㆍ1만5,000원

 

 

“모든 살아 있는 것은 흔적을 남긴다.”

상형문자의 탄생을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명확한 명제는 없다.
 

인류의 등장 이래 하늘에 떠 있는 태양, 흘러가는 물, 나무가 우거진 숲 등 실체가 있는 모든 것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흔적을 남겼다. 당연히 이 흔적들 속에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여있다. 하지만 모든 흔적이 다 문자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 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흔적만이 비로소 문자로 통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한자의 조상격인 갑골문자다. 바꿔 말하면 갑골문자, 즉 한자를 공유한다는 것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각 지방마다 다른 언어를 쓰면서도 오랜 시간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지나(支那)의 원동력을 단일문자 시스템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대만 최고의 문화비평가이자 작가인 탕누어의 책 ‘한자의 탄생’은 한자의 태동과 역사를 치밀하게 추적해 인류 문화의 유전자를 밝힌다. 문학, 역사, 고고학, 사회학 등을 한자의 탄생과정과 연결해 인류의 사유와 상상력을 추론하고, 아름답고 기이한 갑골문 도상을 유머러스한 문체로 풀어내 한자에 담긴 인문학적 진실과 지나(支那) 문화의 흐름을 해석한다.
 

‘한자의 탄생’은 한자의 태동과 변천과정을 통해 인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추적한다. 육장을 뜻하는 해는 당시 살아 있는 인간을 죽이던 형벌에서 비롯됐다. 김영사 제공

 

 

 

책은 3,000년 전 상나라 시대의 갑골문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돌아보면서 시작한다. 저자는 갑골문에 잔인한 글자들이 특히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젓갈을 의미하는 해의 갑골문을 분석해보면 큰 절구 안에서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의 형상을 볼 수 있다. 갑골문의 윗부분에는 두 손으로 절굿공이를 잡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는 산 채로 사람을 내리쳐 육장(肉醬)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다. 갑골문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산 채로 죽임을 당하는 형벌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문자다.

버릴 기(棄)의 갑골문에는 갓 태어나 아직 피가 묻어 있는 아기를 삼태기 속에 넣어 아무렇게나 내다버리는 모습이 담겨있고, 심지어 또 다른 조형자는 갓난아기를 교살하는 장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갑골문 속에는 물자가 풍족하지 않아 아이를 죽이거나 내다버렸던 초기 인류사회의 풍습이 담겨있다.
책은 갑골문 시대의 흔적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초기 갑골문부터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한자로의 진화과정을 추적해 인류사회의 변화상을 좇는 것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예를 들어 야생의 포악한 동물로 묘사했던 돼지의 초기 갑골문은 거세당한 주거형 돼지를 뜻하는 축(畜)자의 원형이 됐다. 이는 다시 가축을 기르는 가정의 모습으로 진화해 집을 의미하는 가(家)가 탄생했다. 저자는 이처럼 한자의 형성과정을 통해 문명의 변천을 흥미롭게 해석한다.
 

 

집 가(家)는 포악한 야생 돼지를 가정에서 사육하는 의미의 갑골문자에서 탄생했다. 김영사 제공

 

 

책은 마지막 장에서 온전히 현대사회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문자가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겨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문자의 유한성’을 주장한다. 카페나 공항에서 볼 수 있는 화장실 기호는 새로운 문자의 원형이 될 수도 있고, 30년 전 일본이 지나(支那)색 짙은 한자를 폐기한 것은 문자 사멸의 증거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인류가 지켜야 할 유산은 문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녹아 든 문화와 사회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한자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지만 책 곳곳에 발터 벤야민, 레프 톨스토이, 밀란 쿤데라 등 서양의 사상가와 문호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사상과 작품을 한자의 형성 과정과 교묘하게 연결해 독자에게 인문학 지식을 전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http://www.hankookilbo.com/v/fd2ccfa6cfe444d1b9f41afa2ff32e75

 

 

 

'해(醢)

젓갈에 관한 현존하는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지나(支那) 최고의 자서(字書) 중의 하나인 《이아(爾雅)》로 기원전 3세기에서 5세기 경에 기록되었다. 이 문헌에서는 생선으로 만든 젓갈을 '지(鮨)', 육류로 만든 젓갈을 '해(醢)'라고 부르며, 이것이 젓갈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젓갈[편집]

 
한국의 젓갈은 신석기 시대에 기원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1]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신라본기〉의 신문왕 3년(683년)의 기록에 왕후를 맞이하는 폐백 음식으로 등장한다.[2] 고려시대를 거쳐[3] 조선 시대에는 그 종류가 다양해졌다.[4]
 
 
 
 

육장 해 | 酉部(닭유부) 10획 (총17획)

 

 

meat preserved in soy  

 

 

 カイ·しおから  

 

 

 hǎi

 

 

酉(닭유) + 䀁(바가지회)

 

 

【해】 육장(肉醬); 젓갈; 삶다(); 형벌()
醢屬(해속) 젓갈붙이.
醢汁菹(해즙저) 젓국 김치.
醢汁脯(해즙포) 젓국포.

 

 


고기 육, 둘레 유 | 肉部(고기육부) 0획 (총6획)

 
 

 

 

 meat  

 

ニク·にく  

 

 ròu
中等 | 人名  

 

 

 4급II  

 

 

5급  

 

 5급  

 

 

잘라낸 한 점의 고기를 본뜬 글자.

 

 

【육】 고기; 살(); 몸
【유】 둘레(璧邊); 저울추(錘體); 살찌다(); 차다(滿)

 

篆書          
隸書        
草書         
行書        
楷書
 

 

 

 

肉感(육감) 육체상의 감각.
肉感的(육감적) 육감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
肉塊(육괴) ① 고깃덩이. ② 살찐 사람을 농으로 일컫는 말.
肉氣(육기) 몸의 살찐 모양.
肉袒(육단) 윗도리를 벗고 육체를 나타냄. <비유> 생각 대로 벌해 달라고 사죄함.
肉類(육류) 식용할 수 있는 짐승의 고기 따위.
肉味(육미) 고기로 만든 음식. 고기의 맛.
肉薄(육박) 썩 가까이 덤빔.
肉山(육산) 비대한 몸. 살코기가 많음.
肉聲(육성)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또는 노래.
肉食(육식) 새, 집승, 물고기 따위의 고기를 식료(食料)로 삼음.
肉身(육신) 사람의 몸. 목석과 같이 단단하지 않은 몸.
肉眼(육안) ① 사람의 눈. ② 안경 따위의 힘을 빌리지 않은 생래(生來)의 시력. ③ 물건의 표면만을 보는 안식(眼識).
肉慾(육욕) ① 육체상의 모든 욕심. ② 남녀 사이의 육체의 정욕.
肉用(육용) 식육(食肉)으로 쓰이는 것.
肉醬(육장) 쇠고기를 잘게 썰어서 간장에 넣어 만든 장조림.
肉重(육중) 덩치가 크고 매우 무거움.
肉汁(육즙) ① 새, 짐승의 살에서 짜낸 즙. ② 새, 짐승의 고기를 끓여서 낸 즙.
肉質(육질) ① 살이 많은 체질. ② 살로 된 부분.
肉體(육체) 사람의 몸. 발가벗은 몸.
肉體美(육체미) 육체의 균형이 주는 아름다움.
肉親(육친) 어버이와 자식, 형제자매 등 혈족 관계가 있는 사람.
肉彈(육탄) 육체를 탄환 대신에 쓴다는 뜻. <비유> 적지(敵地)에 돌입하여 감.
肉脫(육탈) ① 살이 빠져 몸이 마름. ② 시체의 살이 썩어 없어짐.
肉包(육포) 고기쌈.
肉脯(육포) 쇠고기를 얇게 저며서 말린 포.
肉筆(육필) 당자(當者)가 실제로 쓴 글씨.
肉膾(육회) 살코기나 간, 천엽, 양 따위를 잘게 썰어서 갖은 양념을 한 회.


장 장 | 酉部(닭유부) 11획 (총18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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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ショウ·ひしお·みそ  

 

 jiàng
人名  
 

1급  

 

 

將(장수장) + 酉(닭유)
 
【장】 장(豉, 간장, 된장); 장조림(肉醬); 젓갈(醢)
醬間(장간) 장독간.
醬蒜(장산) 마늘장아찌.
醬甕(장옹) 장독.
醬油(장유) 간장과 참기름.
醬肉(장육) 장조림.
醬滓(장재) 된장.
醬菹(장저) 장김치.
醬漬(장지) 장아찌.
醬太(장태) 장 담그는 콩.
醬缸(장항) 간장 항아리.
 
 
 
 
醢刑。','그가 가장 잔인한 해형에 처해졌다. ')" onmouseout="cnTextLayerHide()" onmousemove=" cnTextPosit()" style="color: rgb(0, 0, 0);">他被处以最残酷的醢刑。

그가 가장 잔인한 해형에 처해졌다.
醢时古代的一种酷刑。','해(醢)는 고대 형벌의 일종이다. ')" onmouseout="cnTextLayerHide()" onmousemove=" cnTextPosit()" style="font-size: 16px; color: rgb(0, 0, 0); line-height: 24px; letter-spacing: -0.1mm; "simsun, MS Song,gulim,굴림,돋움";">醢时古代的一种酷刑。

해(醢)는 고대 형벌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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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옹호하려는 친지나(支那) 쥐대가리들+친지나(支那) 홍어+조선족들의 댓글에 올려 놨던 댓 글

 

 

1990년대 중반경까지 일본에서 야키니쿠(불고기) 하면  일본인들은 무슨고기로 인식하고 있었을까? 
물론 야키니쿠(불고기)는 제일교포들에 의해서 퍼진 한국요리인데  

한국에선 보통 불고기에 사용되어지는 고기라하면 일반적으로 소고기와 돼지고기 두 종류지만 
일본에선 오키나와 지역을 제외한 육지쪽에선 대체로 돼지고기로 만들어진 요리종류가 돈카츠등 몇가지 외엔 그다지 많지않고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1990년대 중반경까지는 일본인들에게 야키니쿠에 사용되는 고기는 누구랄것 없이 소고기 란 대답이 나왔고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실제 1990년 대 초 일본인들에게 물어 보고 들은 사실) 

지금은 한국 관광와서 돼지고기맛을 알게 된 일본 관광객들에 의해 돼지고기를를 찾는 일본인들도 많아진 편이다. 

고대 지나(支那:짱깨)의 해(醢)는 지나(支那:짱깨)인들에게 무슨 고기로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그러고 공자놈께서는 해(醢)를 무슨 고기로 알고 즐겨 쳐 먹었을까~요?? 



他被处以最残酷的醢刑。 그가 가장 잔인한 해형에 처해졌다. 
醢时古代的一种酷刑。 해(醢)는 고대 형벌의 일종이다.

 

-흥부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