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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支那)의 역사는 95%가 조작된 역사 1편

2020-01-29 16:25:40 | 지나(支那)

지나(支那)의 역사는 95%가 조작된 역사

진왕(秦王)이 처음 황제 명칭을 사용했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기사입력 2019-12-14 12:49:58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지나(支那)의 역사를 살펴보면 진왕(秦王;정(政)이 서기전 221년에 제(齊)를 멸망시켜 춘추이래의 난세(亂世)를 통일하고 지금까지 사용하던 왕(王)의 칭호를 버리고 황제(皇帝)라 칭했다고 하며 그가 황제(皇帝)라는 칭호(稱號)를 처음 사용했다고 하나 모두 날조(捏造)이다.       
 
또한 진왕(秦王)은 대륙의 중원(中原)을 완전히 통일(統一)했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과장(誇張)된 말이다. 그는 중원을 완전히 통일한 것도 아니고 세계 최초로 황제라 칭하지도 않았다. 지나(支那)가 그를 높이기 위해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나(支那)는 진왕(秦王)이 중원(中原)을 통일해서 지나(支那)라고 했다고 했는데 이 지나(支那)를 중국(中國)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폄하(貶下)하며 말하는 이적(夷狄)에 대립하는 개념(槪念)이며 여기서 중국(中國)이란 문자(文字) 그대로 우수(優秀)한 문화(文化), 문명(文明) 꽃이 피는 중앙(中央)의 나라라는 의미(意味)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에게서 문화와 문명이 전수(傳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인(支那人)들이 자신(自身)들을 높이기 위하여 자칭(自稱)해서 부르는 미칭(美稱)이 중국이다.
 
우리도 지나(支那)를 지금은 정식으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또는 중국(中國)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중국이라는 것은 우리가 먼저 사용(使用)한 명칭(名稱)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卷二 駕洛國記)’에 보면, 수로왕(首露王)이 황천(皇天)의 명(命)을 받아 왕(王)이 되었다고 하면서 가락국(駕洛國)을 ‘중국(中國)’이라 칭(稱)했다고 했다. 황천(皇天)의 명(命)과 결부된 중국(中國)이라는 것은 세계의 중심지를 가리킨 것이다.
 
지나(支那)는 가락국(駕洛國)을 중국(中國)이라 칭(稱)한 것을 가로챈 것이다. 여기서 중화(中華)라는 것은 지나인(支那人)이 자국(自國)을 부르는 미칭(美稱)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제대로 구분해서 중국(中國)이나 중국인(中國人)으로 부르는 것보다 지나(支那)와 지나인(支那人)이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이다.
 
여기서 지나(支那)라는 것은 주로 외국인이 ‘지나(支那)’라 부른 것인데 그 유래는 진왕(秦王)이 건국한 진(秦)에 있으며 그 국명(國名)이 주변제국(周邊諸國)으로부터 유럽에 전해져서 그 명칭도 진(秦) 지나(支那, 또는 차이나)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인도(印度)에서 쓰여진 산스크리트어(語)의 불전(佛典)에서는 지나사정(支那事情)을 기록한 것이 있어서 여기서 지나(支那) 등으로 한역(漢譯)돼서 세계 모든 나라들이 지나(支那)를 어원(語源)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도 지나(支那)로 부르는 것이 옳다.
 
지나(支那)의 역사적 사실 제대로 알아야
 
우리나라는 역사가 왜곡된 것이 800년에 이르며 중국이 대단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것 같이 포장되어 있는데다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우리 역사를 철저히 뒤집어 놓아서 우리나라 역사가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를 자학사관(自虐史觀)으로 뒤엎어 놓은 데서 역사말살(歷史抹殺)을 해 왔는데 아직도 자학사관(自虐史觀)에 매어 있다면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것도 모르고 지나(支那)의 이미지를 거의가 사마천(司馬遷)의 쓴 ‘사기(史記)’나 ‘삼국지(三國志)’, ‘18사(史)’ 등의 ‘고대의 역사서(歷史書)나 ‘논어(論語)’를 비롯해서 ‘사서오경(四書五經)’ ‘서유기(西遊記)’나 ‘수호지(水湖志)’ 등에 익숙해서 문화적으로 지나(支那;中國)라는 이미지로 도배돼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支那;中國)라는 역사의 밝은 사실만을 미화(美化)한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으로 그들의 어떠한 일을 해 왔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어두운 면도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모르면 허망(虛妄)한 것만 좇아갈 뿐이다.
 
필자가 지나(支那;中國)의 역사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지나(支那;中國)의 역사와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해왔는지를 바로 알아야 하기에 지나(支那;中國)의 어두운 면도 추적해 살펴봐야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조선조 500여년과 지금까지 지나(支那;中國)의 어두운 면을 말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고 지나(支那;中國)의 역사가 너무 미화(美化)돼 있다. 필자는 역사적 추적을 위해서는 지나(支那;中國)의 어두운 면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들이 주변 민족에 대한 침략(侵略)과 말살(抹殺), 왕조교체기(王朝交替期)마다 수천만(數千萬)의 단위(單位)로 반복(反復)된 대학살(大虐殺)의 전율(戰慄)의 4000년 역사임을 제대로 알아야 그 이면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지나(支那;中國)는 수천 년 역사에 있어서 어떻게 침략(侵略)하고 지배(支配)했으며 약탈(掠奪), 말살(抹殺), 차별(差別), 학대(虐待)를 반복해 왔는가!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지금도 지나(支那;中國)는 자국 어린이에게도 이 사실을 숨기며 가르치지 않는다.
 
한제국시대(漢帝國時代)의 사마천(司馬遷)은 은(殷)부터 한(漢)까지의 각기 역사(歷史)를 ‘사기(史記)’라는 책으로 만들었다. 사기는 권력자에 아부(阿附)하기 위해 거짓을 쓴다든가 거짓말이나 왜곡하지 않고 지나(支那;中國)의 소행(所行)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바른 역사 인식태도라 자부하는데, 이는 지나(支那;中國)의 어두운 면을 감춘 것이다.
 
지나(支那;中國)의 역사왜곡 원칙과 일본의 원칙도 가관
 
필자는 지나(支那;中國)와 왜(倭;日本)의 역사를 연구하다 보니 여러 각도에서 그들의 역사를 추구하게 되는데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중국과 일본, 우리 자학사관(自虐史觀)자들은 이 ‘사기(史記)’를 많이 인용하는데 이 ‘사기(史記)’ 자체가 거의 지나(支那;中國)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19년 11월 22일 ‘한국우리민족연구회’와 ‘삼국사연구회’, ‘우리역사교육원’이 공동 주최한 포럼의 격려사(激勵辭)에서 필자는 분명히 “중국 역사는 5%도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원등비(袁騰飛) 교사가 말한 것이나 일본의 사학자 아고기요히코(吾鄕淸彦)가 이야기한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고조선사(古朝鮮史)를 거꾸로 교묘히 꾸민 것이다”라는 말과 같이다.
 
우리는 사서들이 거의 없애거나 불질러 없앴기에 거의가 위서(僞書)인 사서(史書)를 인용하게 되는데 지나(支那;中國)와 왜(倭;日本)의 역사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지나(支那;中國)는 95%이상이 조작이고 왜(倭;日本)의 역사는 상반(上半)이 우리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나(支那;中國)와 왜(倭;日本)의 역사를 다룰 때는 특히 유의해야 함은 그들의 역사필법은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고대부터 휘치필법(諱恥筆法)으로 지나(支那;中國)의 수치스러운 역사는 숨기고 외국은 깎아내리고 작게 쓰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나(支那;中國)는 자기들이 조작(造作)된 역사를 철저히 숨기고 알리지 않는다.
 
또한 일본(日本)의 역사기술(歷史記述) 역시 승리(勝利)는 과장(誇張)하고 패배(敗北)는 고쳐서 개서(改書)하고 양자강 이남과 타이완(臺灣)에서 다시 일본열도(日本列島)로 간 사실(亡命)은 서술(敍述)하지 않는다는 수법(手法)을 일본역사日本歷史)를 작성(作成)하는 기본원칙(基本原則)으로 허장성세를 벌여 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나(支那;中國)의 수치스러운 역사의 예를 든다면 그들은 왕조교체기(王朝交替期)마다 수천만(數千萬)의 사람들이 살육(殺戮)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서책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왜 지나(支那;中國)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지 않은 원격지(遠隔地)를 황제가 지배하였는지, 또한 조공제도(朝貢制度)가 20세기까지 행해졌는지, 이에 대한 서물(書物)을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에서도 명확히 답한 것이 없다.
 
또한 그들은 피해자에 대한 반성도 없다는 것이 지나(支那;中國)가 취해온 정책이다. 그들은 대집단의 민족도 거리낌 없이 절멸(絶滅)시킨 예가 무수히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타이완(臺灣)의 유명한 평론가(評論家) 백양(柏楊) 씨는 지나(支那;中國)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서 “중국사는 참으로 박해의 역사이며 지나(支那;中國)의 문화는 인간에 대한 존엄(尊嚴)과 포용력(包容力)이 전혀 결여(缺如)되고 있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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