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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지원의 아버지에 대한 엄청난 의혹
인터넷에 떠도는 의혹들을 보면, 박지원의 아버지는 매국/역적 현장범으로
대한민국 경찰에 의해서 사살된 자라고 한다.
박지원의 부친 박종식(1910년생)은 1940~45년까지 일본통치 시절 일본인들에게 고향인 진도군 군내면과 고군면에서
목화수매 책임자로 친일파 두목 행세를 하다 1945년 해방 후 박종식은 남로당(공산당)진도지역 책임자가 되었고
숙부 박종국은 고군면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박종식과 박종국은 1948년 10월 23일 경찰에 수배되어 도피 중 진도경찰서 김기일, 곽순배 형사 등에 의해 총격전 끝에 사살되었으며
(1976년 2월 25일 진도군이 발행한 진도 군지(郡誌)에 기록되어 있으며 곽순배 형사의 친척이 되는 곽우불진도번영회 회장 증언)
1950년 6.25 한국전쟁때 진도군에 북한 인민군이 진주했으며 이때 박지원의 삼촌, 고모 등이 북한 인민군 편에 나서
면민들을 가혹하게 북한의용군에 징용되도록 만들어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그러다가 9.28수복 후 패전 북한인민군이 도망가자 박지원의 삼촌, 고모도 인민군과 함께 도주하다가
주민들에게 붙잡혀 돌과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고 한다.
(진도군 무공수훈자 회장 최기남씨 증언)
이런 모든 사실을 숨기기 위해 호적 등 관계서류를 파기, 변조하고 1992년 2월 20일자에 호적을 다시 만들어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발부, 취득한것으로 되어있다.
본 자료는 손충무라는 재미언론인에 의해서 보도되었고 그 이후 인터넷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데,
박지원은 박근혜를 논하기 전에 이에 대한 사실관계부터 명확히 밝혀야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그 이후 국가보훈처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1월 그동안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제외시켜온 서훈심사 기준 가운데
‘공산주의자’ 항목을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활동에 주력했거나 적극 동조한 자’로 바꾸었고,
그동안 공산계열로 서훈이 보류됐던 좌익계열 항일운동가 등에게 '건국유공자' 서훈과 각종 혜택을 주었고,
현재도 이 기준에 따라 서훈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일부 애국단체들은 “건국포장을 받은 P의원의 부친 박종식(1948년 사망)의 경우 해방 후
남로당 지역 책임자로 여순반란사건에 가담해 공산당 활동을 했다”며
“반란이 진압되자 섬에 도피해 있던 중 경찰과 총격전 끝에 사살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같은 사실은 해당 군지(郡誌)에도 기록이 있으며 증언도 확보했다”고 말하고
“대한민국 상훈법 20조(건국포장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국기를 공고히 하는데 헌신진력하여 그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의 취지에 반하므로
서훈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재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지금 인터넷에서 급속하게 퍼져 나가는 이런 추악한 의혹에 대하여 박지원은 해명해야 한다 그는 공인이기 때문에....
그러나 연좌제가 폐지된 지금 박지원의 아버지를 논하여 박지원을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방식은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부(虎父)에 견자(犬子)없고, 견부(犬父)에 호자(虎子)없다는 정도만 새기면서
미국으로 건너갔던 시절부터 박지원 본인의 행적을 보자.
2. <미국에서의 박지원>은 어땠을까.
아래 기사를 보면 그의 미국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인용시작> 1996년 4월 총선 당시 부천 소사구역에서 한 여인이 눈물어린 호소로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인간 박지원의 가면을 벗기는 진정서'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문제의 여인은 최정민이다.
최정민은 70년대 초 은막을 풍미하던 영화배우였다.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주연을 맡았고,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아시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받기도 했다,
최정민은 197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이때 박지원은 미국에서 가발장사로 꽤나돈을 모은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최정민이 박지원을 만난 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1978년 두 사람이 비밀동거를 시작했을 때 박지원은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박지원은 몇 년 후 들통날 때까지 최정민에게 이런 사실을 숨겼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지원의 부인은 "자살 하겠다"고 눈물을 뿌리고 다녔다.
이로 인해 교민사회에서 박지원 가정과아내의 존재가 드러나자 최정민은 박지원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다른 사람과 맞선을 보게 되었다,
이에 박지원은 분노하여 최정민을 살해하려고 혈안이 되어 살인청부업자를 보냈다,
최정민의 자필 진정서(복사본 확보)에는 그부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맞선 본 사실을 알게 된 박지원씨는 사람을 시켜 청부 살인을 하려고 계획하고 어느 날 9시경 내가 경영하는 스타꽃집에 괴한 최모씨를 보냈습니다.
살인 청부업자인 최모씨는 가게 문을 걸게 만든 후 총을 들이 대며 죽인다고 말하고
지하실로 끌고 내려가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차라리 나를 먼저 죽이고 딸을 데려 가라”고 최씨에게 애원하고 호소하며 매달렸습니다.
엄마의 호소에 최씨는 우리 모녀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엄마의 모습에 감동되어 저의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 후 그 청부업자는 또 다시 박지원 부인의 부탁을 받고 저를 또 다시 처치해야 되는 처지가 되어 (2천불)
저의 가게로 왔으나 그때도 제 약한 처지를 깊히 알고 동정을 하게 되어서
오히려 우리 모녀를 보호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지만 저는 늘 불안 속에서,
공포에 질려서 결혼을 포기하고 박지원씨의 노예 마냥 끌려가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아래에 인용 계속)
3. 강간범 박지원 ? (인용계속)
이들의 관계는 89년 박지원이 한국으로 귀국함에 따라 완전히 끝났다.
1992년 대선 당시 박지원은 최정민씨가 한국에 온 것을 알고 최여인을 불러내
서울 송파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단지의 한적한 곳에 소나타 승용차를 대놓고
운전기사를 차 밖으로 나가게 하고 차 뒤 좌석에서 최여인을 강제로 성폭행 SEX를 했다고 한다,
(1996.4.10일자 부천신문에 최정민 증언으로 보도)
또한 최 여인이 반항하다 더 이상 견디다 못해 성폭행을 당한 뒤에 울먹이며 박지원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부끄럽지도 않아요?”하고 거칠게 항의하자
박지원은 오히려 큰소리치며“So What..." 하면서 조금도 미안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1996.4.10일자 부천신문에 최정민 증언으로 보도)
당시 교민들의 증언과 2010,10월에 작고한 故손충무(전 경향신문기자.뉴욕 교민신문, 인사이드월드 발행인) 씨의 기사와 기록에 따르면
박지원은 최정민을 마담으로 내세워 뉴욕 28번가 브로드웨이에서 여종업원을두고 불법장사까지 시켰다고 한다.
이 사실을 보도한 손충무씨는 훗날 박지원이 권력실세로 등장한 김대중 정권 초기에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엮여 벌금형이 아닌 2년의 실형을 살아야 했다.
실로 경악스러운 박지원의 여성편력에 추악한 과거가 아닐 수 없다.
(프런티어타임스 김동일 기자)
2012년 05월 25일(금) 오전 07:22
<위 2, 3항 인용 끝>
이런 추악한 의혹에 대해서도 박지원은 해명해야 한다 그는 공인이므로....
4. 5.18 광주의 공적, 박지원?
<인용 시작>
광주 5.18이 터졌다. 1981년 한미수교 100주년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 前대통령 교민환영위원장을 맡은 박지원.
12.12와 5.18은 영웅적 결단이라고 헤헤거리며 대통령에게 갖은 교태를 부렸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전두환 각하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광주 5.18을 폭동으로, 시위 가담자들을 폭도로 몰아갔다.
여기서 5.18의 정치적, 역사적 해석은 중요하지 않다.
박지원이 5.18을 짓밟으며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박지원의 놀라운 아부는 5공시절 청와대를 두 차례 방문하는 발판을 마련해 줬다.
이후 읍소의 달인 박지원은 끝내 전두환 대통령에게서 훈장까지 받아냈다. 국민훈장 동백장이다.
당시 국무회의 안건 의결에는 뉴욕한인회장 박지원이 '북한의 대(對) 교민 침투 봉쇄에 노력하고 있다' 라고 적혀있다.
이런 反北인사가 김대중 정권에서 묻지마 퍼주기 햇볕정책의 실무 총책으로 김정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 했으니
이 작자의 변절 기술은 그야말로 입신의 경지다.
뿐만 아니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광주진압작전은 정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인 박지원이다.
이런 박지원의 더러운 이중성과 표리부동을 광주시민은 분명히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위 의혹은 사실인가, 아닌가.... 박지원 본인이 밝혀야 할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5. 박지원의 매국/여적 종북행위
박지원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당시 4억5천만달러의 대북송금을 주도하고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천억원을 대출해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와 금호와 SK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원심대로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대한민국 법원이 대북송금의 불법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1심, 2심, 파기환송 등을 오가면서 엄청난 재판이 벌어졌지만 대북송금 부분만은 공히 유죄로 인정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그동안 보수계에서 주장해오던 대북송금→핵무기 개발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밝혀진 것만으로도 4억 5천만 달러인데, 발혀지지 않은 부분은 얼마일까....
또한 지금 종북주의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데,
진짜 종북주의의 원흉은 핵무기 개발 자금까지 갖다 바친 박지원이 아니냐....
이 부분도 박지원은 해명해야 한다.
대한민국 형법에는 분명히 (역적)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6. DJ 비자금 의혹 <인용 시작>
검찰이 해외로 도피했던 대북송금 사건 핵심인물 김영완(58)씨를 최근 조사함에 따라
2000년 당시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검 중수부(최재경 검사장)는 그러나 무기 중개상인 김씨가 현대그룹 비자금으로 조성된
150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전달했다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현 민주당 의원)에 대한
재수사는 불가능 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수부 관계자는 2일
"박 의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같은 사안으로 다시 수사할 수 없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쪽으로는 재심을 청구할 수도 없다" 면서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권노갑 전 의원도 마찬가지" 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김씨 본인은 수사하고 기소도 할 수 있다"며
"2003년 수사 당시 혐의사실을 알고 출국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중단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의원을 직접 수사할 수는 없지만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 의원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현대그룹 비자금 의혹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김씨를 통해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측에 전달하려고 했던
미화 3000만달러의 행방을 추적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를 조사하면 스위스계좌로입금됐다는 미화가 어디로 갔는지 파악할 수 있을 걸로 본다"고 전했다.
김씨는 대북송금 사건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2003년 3월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8년9개월 만인
지난달 26일 귀국해 검찰에 자수서를 제출하고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조사를 받은 직후 다시 출국했으며 검찰은 필요할 경우 재소환할 방침이다.
한편 박지원 의원 측은
"수사 시작부터 표적수사였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까지 났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수사가 될 수 없는 사안이다.
야당의 유력한 당권 후보 죽이기"라고 밝혔다.
(세계파이낸스 뉴스팀 fn@segyefn.com
입력 2011.12.03 (토) 08:03)
7. 독도를 팔아먹은 박지원 ?
김대중 정권의 최대 의혹은 신한일어업협정일 것이다.
이 협정으로 독도 인근 수역은 한일 공동어로 수역이 되어버렸고,
독도 인근 수역 영토주권의 50%는 일본으로 넘어 가 버렸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매국행위이고
이 협정을 추진한 자는 매국노다. 만약 형법을 제대로 적용하면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다.
이 문제는 독도로 인하여 한일 양국이 첨예한 대립을 이룰 때마다 불거져 나왔다.
2008년 8월 1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인지난 99년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에 대해
'그 결과 우리의 영토인 독도가 주권없는 섬이 됐고 그 때부터 독도에 대한 우리 주권이 완전히 침탈됐다.
완전 졸속이었다'고 맹비난한데 대해 당시 무소속 의원이었던 박지원이 갑자기 나타나 파르르 떠는 반응을 보였다.
박지원은 "한일어업협정과 독도 영유권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여당 대표로서 신중히 발언해 주기를 촉구한다"고 박 대표의 발언을 반박했다.
박지원은 신한일어업협정이 논의, 체결될 당시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던 인물로
신한일어업협정과는 무관해 보이고,
특히 야권 다른 사람들은 침묵하는 분위기에서
왜 갑자기 무소속이었던 박지원이 갑자기 흥분하고 나섰을까?
박 의원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한·일어업협정 당시에도 우리는 국제해양법계의 가장 권위자인 박춘호교수(당시 UN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의
자문을 받는 등 해양법 전문가와수산업계로부터 많은 자문을 받아서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며
"박춘호 전 UN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등 해양법학계와 수산업계로부터 다시 자문을 받아 보면 우리가 일본에 비해 훨씬 많은 어획고를 거두면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과연 그럴까?
2006년 4월 27일 저녁.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임석한 가운데 독도 문제로 4시간의 토론이 있었다.
그 때 신한일어업협정 문제없다....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이 박춘호 유엔 해양법 재판소 재판관이 었다.
그는 한국이 낳은 해양법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과연 그럴까?
유엔 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이 되려면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해양국가인 일본의 후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데서
당연히 일부에서는 강력한 의혹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박춘호 재판관은 일본 서남대 교수를 겸임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양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협정 체결에 쟁쟁한 국내의 해양법, 국제법 전문가를 배제시키고
구태여 일본과 개인적인 이해 관계가 얽혀있는 박춘호 교수를 외교부 자문으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DJ의 독도 문제에 박지원이 파르르 떨고 나올 수도 있다. DJ에 대한 개인적인 충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 신종 친일파로 분류하고 있는 박춘호 교수를 들고 나와 억지 합리화를 도모하면서
혹세무민하고 있는 박지원을 볼 때, 한 때 DJ의 복심 박지원.... DJ와 대북 송금의 박지원....
DJ비자금 의혹의 박지원을 볼 때, 독도와 신한일어업협정에 박지원이 빠질 수 있었을까 하는
강력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 필자 뿐일까?
이 부분도 박지원의 해명을 듣고 싶다.
8. 이중국적자 박지원(인용시작)
그동안 박지원이 부친 박종식을 독립유공자로 만들어, 보훈연금을 받는 그 파렴치함으로부터
대북송금, 여성 편력, 사기행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보를 받는 과정에서 필자(筆者)는 박지원의 이중국적을 확인하였다.
박지원의 미국 영주권 번호는 A21-762-961이며,
그의 부인 이0자와 딸 박0연, 아들 박0준은 모두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은 대한민국에는 주민등록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박지원이 미국 영주권을 얻게 된 사연도 기구한 일이었다. 60년대 도미(渡美)하였으나,
부친 박종식의 좌익 경력에 따른 연좌제로 인해, 영주권을 받지 못하다가
20여년 후 전두환 정권이 연좌제를 폐지하자, 1981년 가까스로 미국영주권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의 가족들이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라는, 대한민국의 법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임을 증명한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 박모 군과 가족들은 대한민국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며,
세금을 포함하여 대한민국에 어떤 의무도 지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이중국적으로 미국과 한국에 양다리를 걸친 박지원을 제외한 가족 전체가 대한민국 국적,
즉 이중국적 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논란의 소지로 충분 할 것이다.
그러니까 박지원은 진정한 의미의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면서 현직 국회의원인 것이며, 전직(前職) 대통령 비서실장과 문화부 장관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평범한 보통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법과 원칙의 평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박지원은 평등한 사람이 아니었다. 평등을 공유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이중국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사람이 보훈연금을 받고 있다.
연금은 그의 자식인 미국인 박모군에게까지 3대에 걸쳐 지급 될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국적을 마음대로 주물럭 거릴 수 있었던 박지원은 민주당의 대표이면서 神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의 가족과 자식들은 '神의 자식'이 되어 대한민국의 온갖 의무에서 빠져나갔다.
그런 자가 지금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타인의 윤리와 덕목을 헐뜯고 지적하며 세상을
호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날 박지원은 최근 북한인권법을 반대하면서, 자신이 스스로 ‘종북주의자며 빨.갱.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 후 우리는 이 발언에서 박지원의 정체성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말과 글의 표현이란 생각 없이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평소 박지원은 자신의 언행이 종북주의자 빨.갱.이임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필자(筆者)는 박지원의 이 모든 것(학력조작, 호적세탁.이중국적 등)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을 바로잡고자 한다.
이중국적은 대한민국 어느 공직자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항목이다.
그런 자가 어찌 공당(公黨)을 지휘하는 위치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것인가.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특히 공인의 경우는 더욱 더 세밀한 검증을 받고
그것을 국민 앞에 내 놔야 한다.
박지원은 조속히 이 모든것을 스스로 밝혀야 할 것이다.
박지원은 자신의 이중국적 의혹에 대해서도 속 시원하게 밝혀야 한다.
그는 대한민국 야당의 원내대표로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인 아닌가.
이 외에도 많다.
그런 점에서 박지원은 걸어다니는 의혹의 백과사전이다. (밝혀진 진실만으로도)
최소한 종북 헌금의 주인공으로 우리의 머리 위에 핵무기를 매달아 놓을 돈까지 갖다 바친 박지원....
이런 사람이 박근혜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런 박지원을 용인할 것인가.
이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
<박지원 의원 주요발언 녹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