退屈しないように シニアの暮らし

ブログ巡り、パン作り、テニス、犬と遊ぶ、リコーダー、韓国、温泉、俳句、麻雀、木工、家庭菜園、散歩
さて何をしようか

韓国旅行中止

2012-10-25 07:51:21 | 韓で遊ぶ
秋も深まりも11月2週目ぐらいからは室内に入る
頻度も減ることになり、これを機会に韓国旅行を企画したら
竹島の問題で搭乗客が減り函館ソウル便が当分の間なくなってしまった
まただ(前は原発事故の影響でなくなったし)
何かあるとここから便数を減らされる
千歳から行くか、青森という手もあるけど、羽田から行くか
いずれにしても国内移動の時間と費用が生じてしまう
何とかならないのか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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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分の器ほど 原文

2012-10-23 20:31:12 | 韓で遊ぶ
자신의 그릇만큼

올해는 봄이 더디다. 이곳 산중은 엊그제가 춘분인데도 아직 얼음이 풀리지 않아 잔뜩 움츠린 채 봄기운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꽃바람이 올라오면 얼음이 풀리고 새싹들이 돋아날 것이다.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바뀔 것들은 바뀔 것이다. 사람들도 그대를 알고 변할 수 있어야 한다. 바위처럼 그 자리에서 요지부동한다면 거기에는 삶의 생기가 스며들 수 없다.

계절이 바뀌면 달력만 넘길 게 아니라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마련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고정불변, 똑같은 되풀이는 삶을 지겹게 만든다. 현재의 나 자신은 과거의 나 자신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날마다 새로운 날일 수 있다.

벽에 걸어 두었던 족자를 떼어 내고 빈 벽으로 비워 둔다. 그 빈 공간에 그림 없는 그림을 그린다. 그 자리에 무엇을 걸어 둘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넉넉하다.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여백의 운치를 누리고자 해서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역사가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30년대에 미국을 돌아보고 새로운 공화국 국민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예상치 못했던 병을 진단한다. 그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며,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볼 때마다 괴로워한다. 어째서 그들은 번영 속에서도 그토록 불안을 느끼는가.

우리가 지난날 어렵게 살아온 시절에는 남이 무엇을 가졌다고 해서 그렇게 기가 죽거나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활이 대체로 고만고만해지면서는 약간의 차이만 나도 눈에 불을 켠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는 비교적 풍요롭게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이 종종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이따금 삶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토크빌은 말하기를, 프랑스에서는 자살률의 증가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자살보다도 광증(狂症)이 다른 어느 곳보다도 심하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농경사회를 이루던 그 시절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인간의 도리와 정신적인 평온은 잃지 않았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한 환경에서 살아왔으면서도 그것 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기ㅓ나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전에 비하면 다들 가질 만큼 가지고 있는데도 삶에 대한 회의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모든 생명이 새 움을 틔우는 이 화창한 봄날에 어째서 멀쩡한 사람들이 생을 포기하고 도중하차하려고 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전도된 가치관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삶이 매우 아깝다. 진정한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을 부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가난해지니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질 수 있다.

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ㅣ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우리 인생이 비참해진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이 있다. 자신의 그릇만큼 채운다. 그리고 그 그릇에 차면 넘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부자이다. 이 봄에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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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頂さんの本より

2012-10-23 04:50:55 | 韓で遊ぶ
久しぶりに友達に会いました
私よりも素敵な洋服を着てきらきらの装飾品を身に着けて立派な車に乗っている友達
生活が大変だという友達の話を聞いてこの本を思い出しました
法頂さんの「아름다운 마무리」 「자신의 그릇만큼」

自分の器ほど

今年は春が遅い。ここ山中では明後日が春分だと言うのに、氷が融けず身をすぼめたまま春の気配を恋しがっている。
しかし、間もなく春風が吹いてくると氷が融けて新芽が芽生えるだろう。人も、その時を知って変わ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らない。岩のようにその場に張り付いていたら、そこには暮らしの生気が入り込むことはできない。
 季節が変われば、暦ばかりが変わるのではなく、古い枠から抜け出し新しい枠を準備しよう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固定不変、同じ繰り返しの暮らしにはうんざりさせられる。現在の自分自身は過去の自分自身と違う姿に変わ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そうしてこそ日ごとに新しい日であることができるのだ。
 壁にかけて置いた掛け軸をはずして何もかけないで空けて置いた。その空間に絵の無い絵をかけた。そこに何をかけようかという思いだけでも豊かな気持ちになる。何かに埋め尽くされていない余白の趣を楽しもうと思う。
 フランスの法律家で歴史家であるアレクシス ド トクビルは1830年アメリカを回って見て、新しい共和国の国民は霊魂を貪る予想もできない病気だと診断した。彼らは多くのものを所有しながらも、もっと多くのものを持とうと、自分の持っていないものを持っている人を見るたびに苦悩した。どうして彼らは繁栄の中でそのように不安を感じるのか。
 私たちが苦労して生きて来た頃には他人が何を持っていようとも、そのように気後れするとか不安になることは無かった。しかし、生活の大体が似たり寄ったりの中では少しの差があっても目に火がつく。そして物質的には豊かに生きている資本主義社会の構成員たちが深刻なうつ病に苦しめられるのも多々あることだ。平穏でゆったりしている環境でも、時折人生に対する懐疑に陥る。
 トクビルは、フランスでは自殺率の増加を心配しているがアメリカでは自殺よりも精神病が他のどこよりも深刻だと指摘した。
 私たちが農耕社会を成していた頃には、たとえ物質的には窮乏していたとしても人間の道理と精神的な豊かさは失っていなかった。いろいろと不便な環境で生きながらも、そのせいで人間の道理を破るとか人間の霊魂が堕落したりはしなかった。
 だが、現代人たちは以前に比べたら皆が持てるだけ持っているが、人生に対する懐疑と不安を抱いて生きている。すべての生命が芽吹くうららかな春の日にどうして健全な人々が生きることを放棄して途中下車しようとするのか。
 私たちが何のために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か。本当の富は多くのものを所有している事とは関係ない。私たちが渇望するものを所有する事を富だと間違ってしまってはいけない。富は欲求によって変わる相対的なものだ。
 支配したり手に入れたりすることができない物を持とうとする時に私たちは貧しくなる。しかし、今持っているものに満足したならば、実際に所有しているものが少なくても内側では余裕を持つ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
 私たちが少ない物を望んだならば少ないもので幸せになることができる。だが、他人が持っている物を皆持ちたいと思えば私たちの人生は悲惨になる。
 人はそれぞれ自分の分と言うものがある。自分の器の分だけ満たす。そしてその器に満ちたらあふれる。自分の立場と身の程の中で満足することを知ったら、その人は本当の富者である。この春、共に考えて見ること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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