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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バンイム 歴史著述家
李恒福と李徳馨は知らなくて鷺城(オソン)と漢陰(ハヌム)を知らない人はいないだろう。この二人は悪童として有名だったが、実はオソンがハヌムよりも5歳年上で、二人は大人になってから出会った。そして、8人兄弟の末っ子で党派に関係なく多くの人と交わり議論するのが好きだった李恒福に比べて一人息子の李徳馨はいつもまじめな模範生であり、怒ると過激になった。このように二人は似ている点よりも違う点のほうが多かった。それでも二人の友情は困難な時により光を放った。
壬辰倭乱が終わって光海君が即位した後、領議長だった李徳馨は王に諫言したと言う理由で追われた。光海君がその地位に李恒福をすえようとすると、これを拒絶しこのように言った。「私はすなわち、話をしない李徳馨です。李徳馨はすなわち、話をした私です。」
戦争の終わった後、光海君の時代には党派の争いと粛清が繰り返され、光海君の兄の臨海君に続いて弟の永昌大君を殺せという世論が沸き立った。ここに反対すれば逆賊としの殺伐とした状況にも、二人は会って互いの意見を尋ねた。
「だんだん、怒りが増してきているがパクサ(李恒福の号)君はどうするのだ。」
「もし、君が永昌大君を殺そうとするならば、違う意見を示すしかない。死ぬ、生きるはそれも運命だ。」
当時、李徳馨は領議長であり、好むと好まざるに関わらず、永昌大君の問題を決定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李恒福は友の立場を理解し関係を絶つ覚悟もしていた。しかし、李徳馨は笑いながら、答えた。
「私の意志だ。」
結局二人は、永昌大君の処刑に反対した、世論の猛烈な非難を受けて官職から追われ島流しとなった。先にこの世を去ったのは李徳馨だ。自分よりも若い友のために李恒福は墓を立て、5年後自分も島流しの地ポッチャンでこの世を去った。
死んだ後も世論は激しかった。光海君がこの二人の官職を回復させるように命令すると、当時の官吏たちは特別な徳もなく、朝廷の罪人なので、「幸運にも」天が殺してしまったことだと攻撃した。しかし、壬辰倭乱以後、オソンとハヌムの身の危険を顧みず王の間違いを諫言したことをもって、それぞれ文忠、文翼という号が下された。しかし、号よりもオソンとハヌムという友達の代名詞がその人たちに与えられた最も大きな大事な勲章だ。
오성과 한음
(어려울 때 빛나는 우정)
이항복과 이덕형은 몰라도
오성과 한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들은 악동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오성이 한음보다
다섯 살 연상으로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야 만났다
그리고 8형제 중 막내로 당파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농담하기를 좋아한 이항복에 비해 외동아들 이덕형은
매사에 진지한 모범생이었고 화가 나면 과격해 지는 성격이었다
이렇게 둘은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우정은 어렵고 힘든 시기에 더 빛났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이 즉위한 뒤
영의정이었던 이덕형이 왕에게 간언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광해군이 그 자리에 이항복을 앉히려 하자
이를 거절하면서 이항복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곧 말하지 않은 이덕형이요 이덕형은 곧 말한 나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광해군 시대에는 당파 싸움과 숙청이 거듭됐고
광해군의 형 임해군에 이어 동생 영창대군을 죽이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여기에 반대하면 역적으로 몰릴 살벌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단둘이 만나 서로의 의견을 물었다
“장차 화가 미칠텐데
백사 (白沙 이항복의 호)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자네가 영창대군을 죽이지 않고
쫓아낸다면 따르겠지만 여론대로 죽이려고 한다면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밖에. 주고 사는 것도 팔자지”
당시 이덕형은 영의정이었고
좋건 싫건 간에 영창대군의 문제를 결정해야만 했다
이항복은 친구의 처지를 이해했고 갈라설 각오도 했으리라
하지만 이덕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 뜻일세”
결국 이들은 영창대군의 처형을 반대했고
여론의 맹렬한 비난을 받고 벼슬자리에서 쫓겨나 귀양까지 보내졌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은 이덕형이다
어린 친구를 위해 이항복은 손수 묘지를 썼고
5년 뒤 자신도 유배지 북청에서 세상을 떠났다
죽은 뒤에도 세상은 매서웠다
광해군이 이들의 관작을 회복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당시 관리들은 특별한 덕도 없고 조정의 죄인인데
다행스럽게 하늘이 죽여 버린 것이라며 맹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인조반정 이후 오성과 한음은
몸의 위태로움을 아끼지 않고 왕의 잘못됨을 간언했다 하여
각각 문충 (文忠) 문익 (文翼)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하지만 어떤 시호보다 오성과 한음이라는
친구의 대명사가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훈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