退屈しないように シニアの暮ら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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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て何をしようか

いい考え(2009,2)より

2013-02-06 11:06:39 | 韓で遊ぶ
恋しい思いを移し代えて
キムミエ 児童文学家
ある日心臓のど真ん中に衝撃が走り、雷が落ちた。ゆでた白菜にご飯を巻いて朝ごはんを食べたのが彼の最後の食事だった。夕方にまたと、手を振ったのが最後の挨拶だった。その日の夕方、彼は家に帰ってくることができず、病院で白い布に覆われて言葉もなく横たわり、私を呼びだした。突然死。柔らかく暖かい血が回っていた肉体が足の先から冷えていった。
きれいな死に装束を着て、横になっている硬い唇にキスをした。最後のぬくもりである熱い骨壷。それを抱いてこの世の最後の家に置いた。そして彼をなじみのないところに一人を残して私たちだけ家に帰って来た。体が活気を失い、半分ぐらい魂が抜けたまま、悲しみの沼に自分を投げいれたまま過ごしたいと思った。しかし、それはできなかった。私は生計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家長だった。一時も早く現実に戻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喪服を脱ぐなり、約束してあった講義をしに出かけた。決められていた原稿を書いた。自分の中に打ち寄せる悲しみでいっぱいなのに、春の海のように笑いながら子供たちと童詩を読んで遊んだ。
じたばたする日々、先立った彼は、いたるところに、あらゆる時間に生々しかった。恋しさを振り切り、できることは童詩を書くことだけだった。童詩を書くことは恋しさからの脱出であり、恋しさへの没入だった。強い欲求、彼と自分を慰めたい強い本能で自分を強打し、悲しみの津波を童詩という器に移し代えて私は穏やかになっていった。童詩に寄りかかり童詩と生きながら私は少し早く私の周りに生きる鳥と木、花に近づくことができた。
ある日急にこの世を去った人に心を伝える方法があれば、どんなに大きな慰めになるだろうか。あの世の人に贈り物を上げると言う事は、とてもうれしいことだ。彼に童詩集を供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ありがたく、幸福だと言う祈りを上げている地上の妻を見ながらあの人もほっとしているだろう。
「お前、たくましくちゃんと暮らしているなぁ、胸にいっぱいの感情を、一つ一つ書いたのを見るとほっとするよ。心がひとしきり軽くなったよ。」
私たちの人生に生老病死があるように悲しみを恋しさにも生老病死がある。だけど、悲しさと恋しさの生成、消滅は瞬間的でなく、自分の心しだいで段階を行ったり来たりするものだと思う。だから、未だに一日だけ、ただの一日だけでも彼が帰って来てくれたらと、時折、ご飯茶碗にいっぱいによそったご飯に、石もちを焼いておいて向かい合って座ってご飯を食べたいと言うつまらない思いがする。

어느 날 심장 한복판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내리꽂혔다. 찐 양배추에 밥을 싸서 아침밥을 먹은 게 그 사람과의 마지막 식사였다. 저녁에 보자며 손 흔든 게 마지막 인사였다. 그날 저녁 그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병원에서 하얀 천을 덮고 말없이 누워 나를 불러냈다. 돌연사, 말랑말랑 따뜻한 피가 돌던 육신이 발끝부터 식어 갔다.
고운 수의를 입고 누운 그, 딱딱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마지막 온기인 듯 뜨거운 뼈 항아리, 그를 안아 들어 이 세상의 마지막 집에 모셨다. 그리고는 그를 낯선 곳에 홀로 남겨 두고 우리만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양기를 잃고 반쯤 넋이 빠진 채, 슬픔의 늪에 나를 던져둔 채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다. 재빠르게 씩씩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상복을 벗자마자 약속한 강의를 하러 나갔다. 날짜에 맞춰 원고를 썼다. 내 안에 출렁출렁 슬픔이 가득한데도 봄 바다인 듯 웃으면서 아이들과 동시를 읽고 놀았다.
허우적거리는 날들, 떠나간 그 사람은 거리마다 시간마다 가득하고 생생했다. 그리움을 부여잡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동시를 쓰는 일뿐이었다. 동시를 붙잡는 것은 그리움으로부터의 탈출이며 그리움으로의 몰입이었다. 강력한 욕구, 그와 나를 위로하고 싶은 강렬한 본능으로 나를 강타한 슬픔의 해일을 동시라는 그릇에 옮겨 담으면서 나는 편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기대어 동시와 살 부비면서 나는 좀 더 빨리 우리 동네에 사는 새와 나무, 꽃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마음 전할 길이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이 있을까. 저 세상 사람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꽤나 기쁜 일이다. 그에게 동시집을 바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고 행복하다는 기도를 올리는 지상의 아내를 보면서 그 사람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자네, 씩씩하게 잘 살고 있구먼, 가슴 가득 고인 감정을 한 두레박 한 두레박 길어 올리는 거 보니 마음 놓이네. 마음이 한결 가볍네."
우리의 삶에 생로병사가 있듯 슬픔과 그리움에도 생로병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슬픔과 그리움의 생성, 소멸은 순차적이지 않아 제 맘대로 단계를 넘나들곤 한다. 그래서 아직도 하루만, 딱 하루만 그가 돌아온다면 갓 지은 고봉밥에 조기 두 마리 구워 놓고 마주앉아 밥을 먹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드물게 피어난다.

コメン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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