退屈しないように シニアの暮らし

ブログ巡り、パン作り、テニス、犬と遊ぶ、リコーダー、韓国、温泉、俳句、麻雀、木工、家庭菜園、散歩
さて何をしようか

いい考え(2009,2)より

2013-02-09 11:01:03 | 韓で遊ぶ

士人はどうやって自己管理をしたか
イハリム記者        ※士人:学識はあるが官職についていない人、高尚な人
天気のよい日、ソウルのチョンロにある雲峴宮(ウニョングン)に出かけた。高宗(コジョン)が12歳まで過ごしたところであり、興宣大院君 李昰應(イハウン)が居住した雲峴宮。富裕層の彼らがどれだけ贅沢な暮らしをしていたのか気になった。ところが、部屋の中をのぞいてみた私は多少驚いた。大人がやっと3人横になれるぐらいの小さな部屋に、家具といえば収納帳と机、屏風がすべてだった。
仮に李昰應が世の中の事に超然とした人でなかったとしてもこじんまりしていた暮らしが見て取れる。孤高な士人として倹約した暮らしをするために自分自身を厳格に管理した。装飾のない木目模様だけを生かした黒褐色の木の家具も質素な気風を表している。粛宗(スッチョン)の時代、出た「山林経済」には家具に赤い色を塗ってはいけないことになっており、縁台も古木の根元で作られて鳥の模様さえ彫らず使った。詩人は民の模範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だ。だからだろうか、宗時烈(ソンシヨル)の宗家では斧の跡が残った丸太をそのまま使った。
自己管理は倹約する生活だけに該当するものではない。士人は睡眠も、夏は4時間、冬は6時間を越えなかった。明け方2~4時に起きて読書と思索をすることはもちろん、子供にに文字を教えた。下全10時以後には客の接待をし、仕事をする人の仕事を見て回った。夜8~10時になると日記をつけて帳簿をつけて寝床に入った。朝寝坊をせず、毎日を規則的に送り、怠惰にならないように内面を引き締めた。
また、、「読書百編意時顕」と言って本を100回読むことは基本であった。昭顕世子(ソヒョンセジャ)の「東宮日記」にも新たに学んだことは60回、前に学んだことは40回ずつ毎日読めと言う学士の勧告が書かれている。声に出して何回か読むと文章の力が読む人の心にしみこんでいくと考えた。反面、丁若(チョンヤギョン)は読んだだけでは足りなくて重要な部分の下に自分の考えはもちろん、他の本で見たそれと関連することも加えて書いた。そのように重要な内容を整理するのに編んだ本が「牧民心書」と「欽欽新書」だ。
士人は本の中の先人の知恵を習い、自身がしようとする所が、道理にかなう聖人になろうと努力した。それと同時に矢を射るなどして体を鍛えることにも一生懸命だった。理想を実現しようとするためには何よりも体が健康で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だ。また、つまらない欲望が先立った時には、穏やかな山に登って胸の中のほこりを掃いだした。
豊かで便利な生活のせいで、怠惰になりやすいこの頃。外面と内面まで管理した士人の暮らしを心にとどめて見る。

햇살 좋은 날, 서울 종로에 있는 운현궁으로 나들이를 갔다. 고종이 열두 살 때까지 자란 곳이자, 흥선대원군 이하웅이 머물던 운현궁, 부유한 그들이 얼마나 화려한 생활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방 안을 살펴본 나는 다소 놀랐다. 어른 셋이 겨우 누울 작은 방에 가구라고는 수납장과 책상, 병풍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비록 이하웅은 세상일에 초연하지는 못했을지언정 단출한 살림살이가 보여 주듯, 고고한 선비로서 검약한 삶을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엄격히 관리했다. 장식 없이 나뭇결무늬만 살린 흑갈색 목가구도 검소한 기풍을 드러낸다. 숙종 때 나온 <산림경제>에는 가구에 붉은 칠을 하면 안 되고, 평상도 고목 둥치로 만들되 새 모양조차 새기지 말라고 쓰여 있다. 선비는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송시열의 종가에서는 도끼 자국이 남은 통나무를 그대로 썼다.



자기관리는 검약한 생활에만 해당되지 않았다. 선비는 잠자는 것도 여름에는 4시간, 겨울에는 6시간을 넘지 않았다. 새벽 2 ~ 4시에 일어나 독서와 사색은 물론, 자녀에게 글을 가르쳤다. 오전 10시 이후에는 손님 접대를 하고 일꾼의 일을 살폈다. 저녁 8 ~ 10시면 일기나 장부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늦잠을 삼가고, 날마다 할 일을 규칙적으로 하며 나태해지지 않도록 내면을 가다듬은 것이다.



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顯)' 이라 하여 책을 100번 읽는 것은 기본이었다. 소현세자의 <동궁일기> 에도 새로 배운 것은 60번, 전에 배운 것은 40번씩 매일 읽으라는 학사의 권고가 적혀있다. 소리 내어 여러번 읽다 보면 글의 기운이 읽는 이의 마음으로 스며든다고 여겼다. 한편 정약용은 읽는 것도 모자라 중요한 부분 밑에 자기 생각은 물론 다른 책에서 본 그와 관련된 내용까지 덧붙여 썼다. 그렇게 중요 내용을 정리하여 엮은 책이 <목민심서> 와 <흠흠신서> 이다.



선비는 책에 담긴 선인의 지혜를 배우며 자신이 하려는 바가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성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와 동시에 활쏘기를 하며 몸을 단련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괜한 욕심이 앞설 때는 고요한 산을 오르며 가슴속의 티끌을 털어 냈다.



풍족하고 편리한 생활 탓에 나태해지기 쉬운 요즘, 외면과 내면까지 관리하던 선비의 삶을 마음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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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い考え(2009,2)より

2013-02-08 09:56:25 | 韓で遊ぶ
幸せを呼ぶ対話法
ユンヨンギョル メギョンインターネット理事
幸福なバカ聖者と称されるナスティンは老年になって自分の人生を省みて話をした。「私は若い頃にはすべての人々を変えたいと、アラーの神に世の中を変える力をくださいと祈った。中年になって、ある日、ふと、人生の半分を過ぎたけれど変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を悟った。そして近くにいる人たちだけでも変えられるようにしてくれと再び祈った。残念なことに、今や私は老年になってしまい、私の祈りはとても簡単なものになった。アラーの神よ、最小限自分自身を変える力をください。」(チェックコンピルドゥの「霊魂を治す話」の中から)
人々は何か問題が生じると原因が自分でなく他に、すなわち他の人々にあると思う傾向がある。失敗を「他人のせい」として回してしまう習性のために、多くの人間関係がすれ違うパターンに至る。自らを変えようとする努力はまた簡単ではないけれども他の誰かを変えると言うことよりはずっと成功率が高い。
まず、対話法から変えて見ればどうだろうか。言語をみだらに使うと相手を傷つける。何気なくいった一言が深い悲しみになり相手の胸をえぐり、些細な誤解が膨らみ、しまいには前世の敵のような関係になることもある。意思疎通の能力とは、「他人の世界」を理解する能力だ。意図した通りに相手に自分の思いを伝えられる能力だ。有能な職員が会社から特別な理由もなく解雇されたり、夫婦とか家族関係が戻ることができないくらいねじれてしまったら話をする習慣から変えて見よう。
自分だけの世界から、私と相手をそのまま受け入れて、対話する姿勢が重要だ。「私が、、、」で始める言葉の変わりに自分が持っている考えと感情について話をすれば対話がずっと柔らかくなる。例を挙げると、「お前は私にこう言ったじゃないか。」は「私はこのようにきいた。」に、「今日の君は本当に変だな。」は「今日は気分がよくない感じがする。」に、「君は私の話を一度もちゃんと聞いたことがない。」を「今日、君は私が言うことを注意深く聞いていないような気がする。」と言うのだ。「お前―伝達法」を「私―伝達法」に変えると言う話だ。「いつも」「たったの一度も」「男なら」「おばさんは」などのような言葉は注意して使うことだ。
30代は長い人生の航海を前にして自分を少し引き締め、持ち上げなければならない時だ。他人に配慮する暖かい言語の使用は自分と世の中を変えるはじめの一歩だ。

原文はこち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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瀬戸内寂聴 「真夜中の独りごと」より

2013-02-07 08:27:00 | 韓で遊ぶ
나이를 먹을 수록, 이렇게 일년이 짧게 되는 것인가? 어렸을 때 1년이 길게 느낀 것을 절실하게 다시 생각한다. 더구나 나처럼 매일 국내를 뛰어다니고 있으면, 시간이 보통 시계와는 다르는 속도로 돌고 있는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다망한 중, 감기도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이 1년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관음님이 지켜 주었다. 이것밖에 생각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아와(阿波)의 너구리가 3마리정도 둘려 있는 것인가? 언제였는가 쯔무라(津村) 세츠코(節子)씨에게 너구리의 이야기를 하면, 「어머, 좋다. 3마리도 있다면 1마리 나에게도 나눠 줘. 」라고 말했다. 규슈(九州)에서 계속 강연이 있었어서 후쿠오카(福岡), 다자이후(大宰府), 히타(日田),와 뛰어다니고 있었으므로, 매우 피곤해서, 돌아올 후쿠오카(福岡)공항에서 빈 시간에, 공항의 마사지실이 있는 것을 발견해서, 들어가서 마사지를 받았다. 미인이고 젊은 여성이, 곰곰히 마사지를 해주고 매우 능숙했으므로 감탄해서 그 것을 주간신조(新潮)의 「카키오키 과자」의 수필에 쓰면 후쿠오카(福岡)공항의 마사지실에 손님이 쇄도하고, 큰일 났다고 한다. 오늘 그 영업소의 소장에게서 감사 뜻의 편지가 와서 깜짝놀랐다. 진실을 그대로 쓰는것만으로, 나는 특히 거기의 PR을 했을 작정은 없는데도, 그런 기쁨을 받아서 쑥스럽다. 마사지라고 하면,내 여학생 시절에는 내가 다닌 도쿠시마현(島縣)립 도쿠시마(島) 고등여학교에서는, 졸업전에 본직의 마사지사를 불러 마사지의 강습을 받게 된다. 그것을 받지 않으면 졸업시켜 주지 않는다. 양처현모교육을 모토라고 하고 있었던 여학교에서는, 배운 기술로 남편의 어깨를 주물러라는 말 없었지만 , 「시집가면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안마를 해 드려요. 」나는 손재주있으므로, 마사지가 누구보다도 능숙해서, 마무리에 교장선생님의 마사지를 하게 되고, 칭찬받아서 졸업했다.죄후에 머리를 손 끝으로 가볍게 치는 것이 마무리이므로, 나는 교장선생님의 머리를 쳐서 졸업한 바이다. 약혼한 후, 바로 시아버지의 어깨를 주무르게 돼, 그다지 능숙하다고 하므로 그때까지 와 있었던 안마를 시아버지는 거절해버려, 내가 더 좋다고 해서, 매일 저녁 전신 마사지를 하게 됐다. 그 이후, 나는 이 자신 있는 마사지로, 많은 사람을 시술했다. 안마와 마사지는 다르다고 하는 것이지만, 나는 명칭은 어느쪽이나 상관없이, 요컨대 피로를 풀어서 편하게 들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안마를 받을 때도 안능숙함과 능숙함이 곧 알아버린다. 제일(가장) 나의 마사지를 기뻐해 준 사람은 아라하타(荒畑) 칸선 선생님과 도키(土岐) 젠마 선생님이었다. 두 사람 모두 94세까지 장수한 사람들이므로 눈으로 가냘프고 날씬했지만 보였지만 몸은 뼈가 야무지게 해서 멀쩡했다. 후쿠오카(福岡)공항의 사람은 정말로 능숙해서, 혈에 손가락이 잘들어 있었던 것이다. 저런 사람을 며느리로 받은 남자는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한다.



年をとると、なんと一年の短くなることか。子供の頃の1年の長さをしみじみと思い返す。まして私のように一年中、日本国中を走り回っていると、時間が普通の時計とは違う速度で走っているような気がする。
超多忙の中、かぜもひかず、健康そのものでこの一年を過ごせたことは、やはり観音様に守られているとしか考えられない。それとも阿波の狸が3匹くらいついているのか。いつだったか津村節子さんに狸の話をしたら、「あら、いいわね。3匹もいるなら1匹私にも頂戴よ。」と言った。
九州でたてつづけに講演があり福岡、大宰府、日田,と走り回っていたので、さすがに疲れきって、帰りの福岡空港であき時間に、空港のマッサージ室があるのを見つけ、飛び込んでマッサージをしてもらった。美人の若い女性が、じっくりとマッサージをしてくれあまりにも上手だったので感心してそのことを週間新潮の「かきおき菓子」の随筆に書いたら、とたんに福岡空港のマッサージ室にお客が殺到して、大変なことになったという。今日その営業所の所長さんからお礼の手紙が来てびっくりした。本当のことを本当のとうり書いただけで、私は特にそこのPRをしたつもりはないのに、そんな喜ばれて照れくさいくらいだ。マッサージといえば、私の女学生の頃は私の学んだ徳島県立徳島高等女学校では、卒業前に本職のマッサージ師を呼んできてマッサージの講習を受けさせられる。それを受けないと卒業させてくれない。
良妻賢母教育をモットーとしていた女学校では、習った技術で夫の肩をもめとは言わず、「嫁に行ったら舅、しゅうとめのあんまをしてあげなさい。」
私は器用なので、マッサージが誰よりも上手で、仕上げに校長先生のマッサージをさせられ、ほめられて卒業した。最後に頭を指先で軽くたたくのが仕上げなので、私は校長先生の頭をたたいて卒業した次第である。
婚約した後、たちまち舅の肩をもまされ、あまり上手だというのでそれまで読んでいたあんまを舅は断ってしまい、私の方がずっといいということにり、毎晩全身マッサージをさせられた。
それ以後、私はこの得意のマッサージで、ずいぶんといろんな人を施術した。あんまとマッサージは違うということだが、私は名称はどっちでもよく、要するに疲れをほぐして楽にしてあげればいいと思っている。自分でできるものだから人にしてもらうときも下手と上手がすぐにわかってしまう。一番私のマッサージを喜んでくれたのが荒畑寒村先生と土岐善磨先生であった。二人とも94歳まで御長命の方なので一見、華奢に見えたが体は骨ががっちりしてしっかりしていた。
福岡空港の人は本当に上手で、ツボによく指が入ってたのである。あんな人をお嫁に貰った男は幸せだろうな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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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い考え(2009,2)より

2013-02-06 11:06:39 | 韓で遊ぶ
恋しい思いを移し代えて
キムミエ 児童文学家
ある日心臓のど真ん中に衝撃が走り、雷が落ちた。ゆでた白菜にご飯を巻いて朝ごはんを食べたのが彼の最後の食事だった。夕方にまたと、手を振ったのが最後の挨拶だった。その日の夕方、彼は家に帰ってくることができず、病院で白い布に覆われて言葉もなく横たわり、私を呼びだした。突然死。柔らかく暖かい血が回っていた肉体が足の先から冷えていった。
きれいな死に装束を着て、横になっている硬い唇にキスをした。最後のぬくもりである熱い骨壷。それを抱いてこの世の最後の家に置いた。そして彼をなじみのないところに一人を残して私たちだけ家に帰って来た。体が活気を失い、半分ぐらい魂が抜けたまま、悲しみの沼に自分を投げいれたまま過ごしたいと思った。しかし、それはできなかった。私は生計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家長だった。一時も早く現実に戻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喪服を脱ぐなり、約束してあった講義をしに出かけた。決められていた原稿を書いた。自分の中に打ち寄せる悲しみでいっぱいなのに、春の海のように笑いながら子供たちと童詩を読んで遊んだ。
じたばたする日々、先立った彼は、いたるところに、あらゆる時間に生々しかった。恋しさを振り切り、できることは童詩を書くことだけだった。童詩を書くことは恋しさからの脱出であり、恋しさへの没入だった。強い欲求、彼と自分を慰めたい強い本能で自分を強打し、悲しみの津波を童詩という器に移し代えて私は穏やかになっていった。童詩に寄りかかり童詩と生きながら私は少し早く私の周りに生きる鳥と木、花に近づくことができた。
ある日急にこの世を去った人に心を伝える方法があれば、どんなに大きな慰めになるだろうか。あの世の人に贈り物を上げると言う事は、とてもうれしいことだ。彼に童詩集を供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ありがたく、幸福だと言う祈りを上げている地上の妻を見ながらあの人もほっとしているだろう。
「お前、たくましくちゃんと暮らしているなぁ、胸にいっぱいの感情を、一つ一つ書いたのを見るとほっとするよ。心がひとしきり軽くなったよ。」
私たちの人生に生老病死があるように悲しみを恋しさにも生老病死がある。だけど、悲しさと恋しさの生成、消滅は瞬間的でなく、自分の心しだいで段階を行ったり来たりするものだと思う。だから、未だに一日だけ、ただの一日だけでも彼が帰って来てくれたらと、時折、ご飯茶碗にいっぱいによそったご飯に、石もちを焼いておいて向かい合って座ってご飯を食べたいと言うつまらない思いがする。

어느 날 심장 한복판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내리꽂혔다. 찐 양배추에 밥을 싸서 아침밥을 먹은 게 그 사람과의 마지막 식사였다. 저녁에 보자며 손 흔든 게 마지막 인사였다. 그날 저녁 그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병원에서 하얀 천을 덮고 말없이 누워 나를 불러냈다. 돌연사, 말랑말랑 따뜻한 피가 돌던 육신이 발끝부터 식어 갔다.
고운 수의를 입고 누운 그, 딱딱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마지막 온기인 듯 뜨거운 뼈 항아리, 그를 안아 들어 이 세상의 마지막 집에 모셨다. 그리고는 그를 낯선 곳에 홀로 남겨 두고 우리만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양기를 잃고 반쯤 넋이 빠진 채, 슬픔의 늪에 나를 던져둔 채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다. 재빠르게 씩씩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상복을 벗자마자 약속한 강의를 하러 나갔다. 날짜에 맞춰 원고를 썼다. 내 안에 출렁출렁 슬픔이 가득한데도 봄 바다인 듯 웃으면서 아이들과 동시를 읽고 놀았다.
허우적거리는 날들, 떠나간 그 사람은 거리마다 시간마다 가득하고 생생했다. 그리움을 부여잡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동시를 쓰는 일뿐이었다. 동시를 붙잡는 것은 그리움으로부터의 탈출이며 그리움으로의 몰입이었다. 강력한 욕구, 그와 나를 위로하고 싶은 강렬한 본능으로 나를 강타한 슬픔의 해일을 동시라는 그릇에 옮겨 담으면서 나는 편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기대어 동시와 살 부비면서 나는 좀 더 빨리 우리 동네에 사는 새와 나무, 꽃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마음 전할 길이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이 있을까. 저 세상 사람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꽤나 기쁜 일이다. 그에게 동시집을 바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고 행복하다는 기도를 올리는 지상의 아내를 보면서 그 사람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자네, 씩씩하게 잘 살고 있구먼, 가슴 가득 고인 감정을 한 두레박 한 두레박 길어 올리는 거 보니 마음 놓이네. 마음이 한결 가볍네."
우리의 삶에 생로병사가 있듯 슬픔과 그리움에도 생로병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슬픔과 그리움의 생성, 소멸은 순차적이지 않아 제 맘대로 단계를 넘나들곤 한다. 그래서 아직도 하루만, 딱 하루만 그가 돌아온다면 갓 지은 고봉밥에 조기 두 마리 구워 놓고 마주앉아 밥을 먹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드물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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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い考え(2009,2)より

2013-02-04 18:52:29 | 韓で遊ぶ
アメリカを笑わせるのだ
編集部
目をむいて「アリラン トントン~」を歌って歌手ハチュンナの物まねで人々を笑わせたギャグマンのキムヨンチョル。殻は最近「英語で笑わせるギャグマン」「生活英語の伝道師」などと呼ばれる。5年の間固く心を決めて習った英語がとうとうその真価を発揮し始めたのだ。(あつかましいヨンチョルの英語)と言う本を出したことはもちろん、ラジオ英語会話コーナーを進行し、アリランTVでは英語で韓国語を教える番組まで任された。
はじめから彼が英語を流暢に話せたのではない。殻は20歳を越える頃まで、外国人に会えばしなくてもいいのに気後れして笑うこともできなかった。ところが、5年前にモントリオール コメディ フェスティバルに参加したが、新たな夢を発見した。それが正に、アメリカに進出し英語で笑わせると言うこと。
その後、彼は英語の勉強に死活をかけた。明け方から3時間の間、英語の講義を受け、授業が終わると外国人と一緒にご飯を食べた。そして、きちんきちんともう2時間勉強した。また、映画を見て気に入った台詞があるとしつっこく暗誦した。一度は「私が言葉を発すればいつも問題」と言うショーンペンの台詞を暗誦し英語の先生と対話中に使った。先生は彼の言葉を聞いて驚いた。また、英字新聞を見ても気に入った生地があるとすべて暗誦した。そうして1年やってようやく耳が聞き取れるようになった。1年半経ったとき口が回った。そうしてだんだん自身感もついてきた。
「自分が何か変わりたいと思ったら、変える。変わることができないならば自分の態度を変える」アメリカの詩人マヤアンジェールの言葉を今日も粘り強く暗誦しながら彼は夢に向かって力強く走ってい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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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島軒カレーバイキング

2013-02-04 10:09:01 | 函館の話
2月2,3日と函館の五島軒でカレーバイキング¥800
イギリス風ビーフカレー(中辛)
フランス風ビーフカレー(甘辛)
インド風チキンカレー(辛口)
お子様カレー
以上4種類
私はフランス風が一番口に合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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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い考え(2009,2)より

2013-02-03 21:06:26 | 韓で遊ぶ
今日はお母さんが料理を作る日
キムジウン MBCアナウンサー
昨日ニュヨークは一日中雪がしんしんと降りました。ちょうど何日か見つからなかったコピーを思い出して町内の文具店に行こうと思いました。降ってくる雪はロマンチックでしたが道は雪が解けてぬかるみになっていました。そのせいで運動靴と靴下まで濡れてしまい急いで家に帰って来ました。その時ユダヤ人の友人からかかってきた電話には偉大な力がありました。「お姉さん、今日は金曜日なの知っているでしょ。うちのお母さんが料理を作る日。私が今日、だんなに会いに韓国へ行くじゃないの。お姉さんが私の代わりに娘の役をして頂戴。」下手だけれども愛嬌のある韓国語の主はマヤです。夫は韓国人です。自分が作った核的が本当においしいといって分けてくれたり、時々、名前を呼びまくる末の弟に「名前を呼ばないでお姉さんと呼びなさい。」と韓国語で「姉さん」を教えたりもします。金曜日ごとにある家族の集まりに私を招待してくれたのです。
実は、この間私の家では鳴った火災警報だけでも10回を超え、勉強していてうっかり忘れて焦がしたなべも3つを越えました。朝夕としっかりと作って2食食べて、貧弱なお昼ご飯食べていると、誰かが作ってくれたものをちょっと食べたい思いがして、母を思い出したりしていました。マヤの電話にうれしくなった私は厚い靴下を履いて喜んで急ぎ足で出かけました。
離婚して末の息子アロンと一緒に暮らしイマは看護婦です。どんなに忙しくても金曜日には3兄妹のために必ず料理をするのです。到着するともうすでに料理の匂いが家の中にいっぱいです。体と心が一人でに解けていきます。両手に薬味をいっぱいに付けたイマが台所から出てきて私を抱きしめて喜んでくれます。今日のステーキの担当は末息子です。食卓には長男のウォリーとその友達のジェフリーがとてもリラックスして座っていて、料理は、ステーキ、豆で作ったホモスとそれに付けて食べる中東の人たちの主食であるピタパン。醤油とコスを加えた豆腐、ジャガイモサラダ、等々、、婿が韓国人なのでイマはアジアの食物全般に関心を持っていました。豆腐料理がその証拠です。
会話の話題は本当に多様です。意見が違っても、誰が話をしても熱心に聞いてくれるという共通点があります。「このステーキと、あのステーキの味がちょっと違います。」「はい、これは中東式、あれはアメリカ式です。クミンが入っているか、いないかの差です。よくわかったね。(笑い)」と言いながらイマははじめからクミンの粉を持ってきて手のひらに振ってくれるのです。居間の壁にかかった絵について聞くと、食事をしていたのを止めてイマは絵の前に言って詳しく説明します。「画家の名前はイマ、つまり、私です。絵の主人公は父母です。私はイスラエルで生まれましたが、父母はイエメン出身です。わざと、母の前腕を太めに強く描いたの、9人の子供がいたの。背景のアイリスはゴッホのアイデアを借りたのよ。花言葉が私たちの母は「うれしい知らせ」のような存在だったでしょ。父は本当に本をよく読んでいたわ。静かだったけど内面は本当にしっかりした人だった。それを目を通して伝えようと思ったのだけれど感じる?イエメン音楽聞いてみる?」
息子たちが「古典音楽」が出てくると笑い声を出したが、イマは部屋に入っていって若死にしたイエメンの歌手の音楽を聞かせて歌が変わるたびに歌詞を説明してくれる。はじめは気乗りしていなかった息子たちも歌をくちずさんでいる。このようなこともイマの家族には長く続いている楽しい習慣のようです。祖父母の肖像画を誰が受け継ぐかを論戦していた息子たちが皿洗いをしている間、長い廊下にかかっている写真をイマの案内で鑑賞します。家族の写真と子供たちが始めて描いた絵を一つずつかけてある壁は家族の歴史です。世の中にただ一つしかないギャラリーです。どんな有名な作品をかけておいたとしてもイマのギャラリーにはかなわないと言う思いがします。
年末と年始は皆が忙しく家族同士が食事を食べることが「行事」ように感じる。むしろ「沈黙」が楽だという友達のメールを少し前に受け取った。そうして見ると、どんな形態の家族でも幸せになろうとしたら、共に分け合える食べ物と、思い出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思いがした。久しぶりに食べたいメニューを書いて見ました。共に分け合いたい人の名前も。この一ヶ月はイマにやみくもに従おうと思います。もちろん絵も描いてみようと思います。結果は次の手紙に詳しく伝えましょう。健康にお過ごし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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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大悪女(チャングムを見ていて)

2013-02-03 18:06:38 | 韓で遊ぶ
チャングムを見終わり、その時代が気になって少し調べたら
三大悪女と言うものにぶち当たった

チャングムが生きている時代に
王様が燕山君から中宗に変わるのだけど
(もっと言うと成宗の時代からドラマは始まる)
一人目は
燕山君の時代の側室の、チャンノクス
キーセン出身とのこと、王の男にでてきた
記憶が定かではないが、、王の男の中で王様がキーセンでは飽き足らず男にも手を出したと言うような言葉が出てきたような、、
二人目は
中宗の3番目の中殿の女官チョンナンギョン
おそらくチャングムの中の王妃様の女官だったと言うことになる。
チャングムのドラマの中では脚光を浴びていないから名もない女官として存在しているのだろうけど存在しているわけね、、
ちなみにあの王妃様は自分の息子が王様になった後しばらく実際の権力を握っていたらしい。だからチャングムも帰ってこれたわけね
三人目は
粛宗(同伊の王様)の側室チャンヒビン
同伊も面白くて見たけど、確かに悪役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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