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そぞろ歩き韓国』から『四季折々』に 

東京近郊を散歩した折々の写真とたまに俳句。

翻訳(日本語→韓国語) 羆嵐2

2017-07-13 22:37:52 | 翻訳

天塩岳風景  天塩岳

吉村昭(1927年~2006年)の「羆嵐」の韓国語訳。あくまでも韓国語学習のためにしているもので、ページ数は底本になっている新潮文庫版からのもの。なお、添削してくださった方々に心からお礼を申し上げます。

東北地方で水害の被害に遭った人々が北海道に移住してきたが、最初の移住地の築別ではアブや蚊に悩まされ、さらにイナゴの大群に襲われ、その地を放棄せざるをえなくなり、4年前に帝室林野管理局の勧めで六線沢に移った。そこは渓流ぞいで水が豊富で昆虫の発生もなく天国のように感じられる土地だった。(要約 P7 4行目~P10 最終行)

제목  큰곰폭풍 P7  4행 ~ P10 마지막 행

이 땅으로 사람들이 발을 들여 놓았을때는 4년전인 메이지44년 봄이고 북방30킬로   

산간부에 있는 개척지에서 집단 이동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동북 지방의 같은 마을에서 선조대대로 땅을 경작한 농부들이었지만, 수해가 계속되어 논밭을 떠내려 보내고 아사 직전에 빠졌다. 농가 중에 딸을 파는 사람들이 속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정부의 이민 장려책을 따라 땅, 가옥, 묘석을 버리고 식구와 같이 홋카이도의 땅을 밟았다.

그들은 지정된 지쿠베추(築別)에 가까운 황실의 소유지로 이주하고 , 정부에서 준 약간의 장려금으로 풀울타리 집을 건설하고 불모지를 괭이로 갈고, 두둑을 만들고 씨앗을 뿌렸다. 수확은 고향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부족하고, 작물 종류도 한정 되었지만, 이 땅에는 적어도 정기적인 하천의 범람으로 인한 흐린 물의 내습은 없었다. 경작한 땅은 그대로 해를 넘기고 뿌린 씨도 키운 작물도 떠내려 가지 않아, 이것만이라도 좋은 생활이라고 자신를 위로했다.

그러나 해가 지남에 따라서 그들은 이 땅의 환경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것은 이 땅이 여러종류의 곤충이 살고 있는 대랑 서식지였기 때문이었다.

4월에 촌락을 덮은 눈이 녹기 시작 했지만, 지표가 나왔을 때 부터 등에, 모기가 발생 하고, 11월 초순에 첫눈이 내릴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5월 초순부터 9월 초순까지 번식이 왕성하여 사람들, 말들, 개들에 떼지어 모였다. 이 심함에 사람들은 눈 부분에 모기장을 친 피륙 봉지를 머리에서 쓰고 경작했지만, 말들은 등에와 모기에 몸을 덮여 미친 것처럼 날뛰어서, 사용을 단념 해야 했다.

 

P8 5행

더욱더 여름에는 살겨와 같이 작은 모기가 대량 발생하고, 부근 일대가 하얗게 흐릿했다. 그들은 드러난 피부에 살겨를 바른 것 처럼 붙어서 사람들은 심한 가려움에 빠지고, 그중에는 높은 열이 나서 괴로운 사람들도 있었다. 또 입, 코, 귀구멍에 모기가 들어와서 사람들을 졸도시킨 사고 조차도 일어났다.

그들은 그런 고통에도 견뎠지만, 5년전에 메뚜기 습래로 인해 그 땅을 버렸다.

메뚜기 피해는 홋카이도 각지에 주기적으로 일어났지만, 그해 가을에 그들의 촌락에 너무 많은 메뚜기 떼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곧 작물의 잎이나 줄기를 물어끊는 이상한 소리가 경지 일대에 퍼지고 , 그것은 개척하지 않은 땅의 초지에 미쳤다.

저작 소리는 낮과 밤을 상관없이 이어져, 사흘후에는 작물도 잡초도 사라지고, 더욱더 풀울타리의 작은 집의 풀벽이나 저장된 잡곡조차도 모두 먹어 버렸다. 그리고 메뚜기 떼는 다시 바람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해 갔다.

촌락에는 황폐해진 밭, 나무가 나온 작은 집, 그것들을 덮은 메뚜기가 분비한 점액만 남았다.

그들은 메뚜기의 분비물에서 발생하는 이상한 냄새가 퍼진 땅을 방심한 사람 처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새로운 땅의 개척을 꿈꾸고 노력해 온 그들은, 그것이  헛수고로 끝난 줄을 알았고, 그중에는 궁색한 일상용품을 손에 들고, 다른 땅으로 떠나간 식구도 있었다.

촌락이 메뚜기 피해로 괴멸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이 지구를 관할하는 황실임야 관리국원의 귀에 들어가 대책이 강구되었다. 그 결과 이 땅을 폐기하고 새롭게 록센사와 황실지를 농지로 지정 하고, 촌락사람들에게 이동하도록 권고했다.

가혹한 환경에서 고생해 온 촌락 사람들은 담당자의 말에 즉시 응하지 않았다. 수해로 고향을 버리고 홋카이도로 건너온 그 사람들은 입식지에 아무 예고도 없이 습래한 메뚜기 떼로 모든것을 잃었다. 자신들을 둘러싸는 사계절의 이동은 불안정하고, 그것에 의해 생활이 침식되는 것은 자기자신의 운명인가라고 까지 생각 했다. 그들은 다른 땅으로 이동해도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걸국 그들은 담당자의 권고에 따랐다. 그들에게 있어서 관리의 존재는 절대적인 것으로 그 지시를 무시하지 못했다. 게다가 직면한 문제로서 그들은 살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것을 위해서 다른 토지로 이동해야 했다.

그들은 지정된 토지가 어떤 환경에 있는지 알 필요를 느껴서, 3명의 남자를 골라서, 30킬로 떨어진 지정지에 가게 했다. 남자들은 삼케베츠의 개척 촌락을 통과하고, 계류 옆의 길을 더듬어 록센사와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담당자에게서 받은 지도를 손에 부근 일대를 답사하고 그 땅에 노숙하고 촌락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의 보고는 촌락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록센사와에 모기나 등에도 거의 없어서, 청징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계류 옆의 황실지에 평탄지가 많아 경지에 적합하다.

특히 촌락 사람들의 관심을 강하게 끈 것은 수량 풍부한 계류의 존재였다. 그때까지 그들이 살고 있는 토지는 푸른물이 부족해, 구룽을 넘은 골짜기에서 물을 운반 해야 하고 그것이 농작업의 큰 장애가 되었다. 그것과 비교해 록센사와에는 노력없이 밭에 물을 끌어들일 수 있고, 음료수가 부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땅이 이상향 처럼 느껴졌다.

촌락 전체의 이주가 결정되어, 이주희망자의 순으로 각각의 몫의 토지가 결정되고, 선발된 남자들의 손으로 집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황실임야관리국의 허가를 얻어 산림에서 재목이 잘려졌다. 그것을 덩굴로 짜맞추고 주위를 풀로 싸고 나무의 껍질로 지붕을 이었다. 그러나 집이라고 해도 출입구와 창문에 멍석을 늘어뜨리고 마루에 기장껍질이나 조릿대를 깔은 허술한 집밖에 없었다.

어수선한 이동이 계속되어 반년후에는 15식구가 록센사와에 가난한 가재도구를 운반해 들였다.

생활을 시작한 그들은 새로운 땅의 환경을 만족 했다. 여름이 되어도 모기나 등에는 적고, 메뚜기가 습래할 기미도 없다. 거기에 집 가까운 곳에 계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도랑만 만들어 물을 밭의 용수지에 채울 수 있게 되고, 계류 물가에 만든 물건 씻는 곳에서 냄비나 가마솥을 씻거나, 천어를 잡아 먹을 수 있거나 했다.

록센사와에 이주하고나서 4년여가 지나갔다. 사람들은 그 땅에서의 생활도 익숙해졌지만, 양쪽에 산의 표면이 좁아진 벽지인 것 때문에 자연 환경은 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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