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金寿煥(キム・スファン)枢機卿が韓国現代史の節目節目で
残した言葉を翻訳練習してみた。
彼の残した短い言葉をいくつか翻訳練習するだけでも、彼が
多くの国民から「時代の良心」として敬愛されて来た理由が、
よく理解できる。
特に、1987年の民主化闘争のさ中、明洞(ミョンドン)聖堂への
機動隊突入を阻止した故金枢機卿の信念に満ちた強い言葉には、
「ヲタク」自身、翻訳練習しながら熱いものがこみ上げて来た。
この場を借り、故金枢機卿のご冥福を心から祈り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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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이 남긴 어록들
故金寿煥枢機卿の残した語録
(ハンギョレ新聞 2月16日)
・“학생들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신부와 수녀도
밟고 가십시오”
・「教会の中の学生を逮捕すると言うのなら、まず私を踏み倒し・・・
それから神父と修道女も踏み倒して行きなさい」
김수환 추기경은 과거 개발독재 시절 정권에 맞선
‘시대의 양심’으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광주항쟁,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양심의 소리를 대변해 왔다. 어록을
통해 그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金寿煥枢機卿は、過去の軍事独裁時代、政権に真っ向から
立ち向かった「時代の良心」として多くの国民から敬愛された。
彼は、光州事件やパク・ジョンチョル君拷問死事件など、韓国
現代史の重要な節目節目で、常に良心の声を代弁してきた。
残された語録を通じて彼の足跡を振り返ってみる。
○ 광주항쟁
光州事件に際して
“공권력이란 본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며 이를 탄압하고 말살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공권력이 인권 탄압에 쓰여지면 이것은 공권력이
아니요, 오히려 폭력입니다. … 광주 사태에 대해서는 군에
의한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 진압이 도에 넘침으로써 군경을
포함하여 학생과 시민 등 많은 희생자를 내게 한 데 대해
정부는 깊이 사과하고 그같은 엄청난 유혈 사태를 일으킨
책임자를 정부는 엄단해야 합니다.”
(1980년 ‘광주 유혈사태에 대해 정부는 사과하라’)
「公権力とは本来、国民の基本権を保護し増進させるために
あるものであり、国民を弾圧し抹殺するためにあるものでは
ありません。公権力が人権弾圧に使用されれば、それは公権力
ではなく、暴力です。 ・・・光州事件については、学生や市民らの
デモに対する軍の度を越した鎮圧が、軍や警察も含め学生や
市民に多くの犠牲者を出す結果となったのです。政府は今回の
事態に深く謝罪し、こうした流血の惨事を招いた責任者を厳重に
処罰する必要があります」
(1980年「光州流血事態に対して政府は謝罪しろ」)
○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パク・ジョンチョル君拷問死事件に対し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1987년 1월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중)
「今、神が私たちに尋ねていらっしゃいます。あなたたちの若者、
あなたたち国民の一人であるパク・ジョンチョル君はどこに
いますか?と。多くの人が、『あれは心得違いした二人の
警察官がやったことだから、私には関係ありません』と白を
切っています。まさにカイン<※>の返事と同じです。為政者も
国民も、与党も野党も親も教師も、そして宗教者も、みなが一人の
若者の残酷な死の前に跪き自らの胸を叩きながら慟哭し反省
すべきなのです」
(1987年1月26日 「パク・ジョンチョル君追悼及び拷問追放の
ための講義」の中から)
<※>カインについてはコチラを参照。
○ 6월항쟁
(大統領公選制を求める1987年)6月民主化闘争の中で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먼저 저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다음 신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를 밟고 가십시오.”
(1987년 당시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警察が教会に入って来れば、まず私が出迎えることになる
でしょう。その次に神父たちが待っています。そして、その後ろ
には修道女たちがいます。教会の中の学生らを逮捕すると
言うのなら、まず私を踏み倒し、その次に神父たちと修道女
たちを踏み倒して行きなさい」
(1987年当時、明洞聖堂内の学生逮捕に公権力を投入するとの
政府方針に対して)
○ 사형제 관련
死刑廃止問題について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 여의도 질주범으로 인해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그 범인을 용서한다는 데 왜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까?”
(1993년 평화방송·평화신문 새해 특별대담 중 사형폐지를
주장하며)
「死刑には赦しがないのです。赦しとはすなわち愛でもあります。
ヨイド公園での暴走殺人事件で愛する孫を失ったおばあさんが、
その犯人を赦すと言っているのに、なぜ国家はそうした気持ちを
受け入れようとしないのか?」
(1993年平和放送・平和新聞新年特別対談で死刑廃止を主張)
○ 남북문제
南北問題に関して
“또 평양교구의 교구장 서리로 있기 때문에 정말 목자로서
가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고 또 의무입니다. 사실은 …
가봐야 하는 게 의무인데, 그걸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1998년 평화방송 신년대담 중)
「また、私はピョンヤン教区の教区長代理でもあるし、本当に、
牧者として訪問してみたいという思いには切なるものがあります。
また、これは義務でもあります。実際は・・・行かなくてはならない
義務があるのです。それが行けないままなのが大変残念です」
(1998年平和放送新年対談から)
(終わり)
参加カテゴリ:地域情報(アジ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