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岡発 コリアフリークなBlog

韓国や韓国語に関するオタクの雑学メモ。韓国映画はネタバレあり。 Since 2005/9.14

呉善花(2)

2006年08月17日 |   〇在日コリアン


△画像:TVリポート

(2)

■ 나라를 팔아 ‘일본 우익의 애완견’이 된 학력 위조
교수 오선화. 오선화가 일본 귀화 사실을 숨기는 까닭은?
国を売り「日本右翼のペット」となった学歴偽造教授、呉善花。
呉善花が日本に帰化している事実を隠すのはなぜか?

한편 오선화는 많은 글에서 자신이 한국의 ‘대구대학교’를
졸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 PD수첩 >의 확인 결과 ‘오선화’
혹은 오선화의 본명인 ‘오승일(吳勝一)’ 어느 쪽도 졸업생 명단
뿐만이 아니라 입학생 명단, 심지어는 편입학생 명단에서
까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한국에서의 학력이 위조된
것이다.
呉善花は多くの文章に自分が韓国の「テグ(大邱)大学」を卒業した
と書いている。しかし、「PD手帳」が確認したところ、「呉善花」
あるいは彼女の本名である「呉勝一」(※)ともに卒業生名簿には
記載がなく、さらには入学生名簿、編入生名簿でも見つけることは
できなかった。彼女の韓国での学歴は偽造されているのだ。

(※)韓国には男児(弟)の誕生を願い女児に男の名前を付ける
風習が存在する。

학력을 위조한 소위 ‘한국 출신 지식인’ 오선화는 현재
타쿠쇼쿠(拓植)대학교 국제개발학부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학교 강의 이외에도, 오선화는 수많은 외부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취재 결과 오선화는 한 차례의 강연에 최저 10만 엔
(약 85만 원)의 강연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学歴を偽造したいわゆる「韓国出身知識人」呉善花は現在、拓殖
大学国際開発学部の教授として活動している。大学の講義以外
にも外部での数多くの講演活動を行っているが、取材結果、
呉善花の1度の講演には最低10万円の講演料が支払われて
いることがわかった。

지방에서의 강연일 경우 최고급 호텔과 교통편을 주최측에서
제공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오선화의 강연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약 20-30만 엔(170만원-255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인기강사로 이름이 높아 강연이
많아 최소 3달 전에는 예약을 해두어야 한다고 한다. 그녀는
현재 도쿄 시부야구 혼쵸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도쿄
인근의 온천지역에 별장까지 가지면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인의 이름으로 ‘혐한⋅친일’ 발언을
한 자가 누릴 수 있는 대가이다.
地方の講演に出向く場合、最高級のホテルと交通費を主催者側が
提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呉善花に講演を依頼するためには
最小限で約20-30万円の費用が必要となる。のみならず、
人気講師の彼女は講演が多く、少なくとも3ヶ月前に予約をしな
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彼女は現在、東京・渋谷区本町に
マンションを所有しており、東京近郊の温泉地に別荘まで持って
いる。経済的にかなり豊かな生活を送っているわけだ。韓国人の
名で「嫌韓・親日」発言をなす者が手にした報酬だと言える。

또한 취재 결과 오선화는 1998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러한 사실을 숨긴 채 ‘한국인’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많은 일본 언론인, 출판관계자들은 “‘한국인’의
이름으로 ‘한국’을 비난하는 글을 쓰는 것이 좀 더 센세이셔널
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일본의 극우
세력은 ‘한국 지식인 오선화’의 이름을 빌어 그들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오선화는 그들로부터 사회⋅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また、取材の中で呉善花が1998年、日本国籍を取得したことが
明らかになったが、彼女はこうした事実を隠したまま「韓国人」の
ように生活している。日本のマスコミ・出版関係者たちは「韓国人の
名前で韓国を非難する文章を書くほうが、よりセンセーショナル
だからだろう」と話す。結局、日本の極右勢力は「韓国の
知識人、呉善花」の名前を借り、彼らの主張の正当性を確保し、
呉善花は彼らから社会・経済的に豊かな生活を保障されて
いるのだ。

-以下省略-

(終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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呉善花(1)

2006年08月17日 |   〇在日コリアン

日本の終戦記念日の夜、韓国では「光復節(解放記念日)」を
記念する様々な特別番組が放送されていた。

その日、「ヲタク」は韓国の衛星放送を通じてMBCの「PD手帳」を
見た。テーマは「新『親日派』の正体をあばく」。

主役(?)は、「ヲタク」なりに前々から「いかがわしさ」を
感じていた呉善花なる作家だった。「PD手帳」は、調査取材を
通じて彼女の正体に迫りながら、彼女のような生き方をする
韓国人や、その背後にいる日本の勢力(?)をあぶり出し、
厳しい批判を加えた。

日韓の狭間に存在する、ある種の闇の部分に光をあてた
見ごたえのあるドキュメント番組であったと思う。

彼女の大学での講義(?)を隠し撮りするなど、取材方法に
若干の問題を感じないわけではなかったが、取材班の「真実」に
迫ろうとする気迫や執念には並々ならぬものを感じさせられた。

彼女の「著作」と講義の質的な落差は、まさに天地の差だ。
彼女が取材を拒否している以上、ああいう形ででも「真実」に
迫る必要性があったのだろう。


△教壇に立つ呉善花(画像はデイリーサプライズ)
韓国では年配者の前では眼鏡をかけてはいけないんですよ。
え?あなた、かけてたんですか?かけたらダメなんですよ
」などと
荒唐無稽な作り話(?)を得々と披露している場面。


「ヲタク」としては、後日、本人や大学当局との間で、問題が
起きないことを祈るのみだ。

--- しかし、さすがは韓国世論を敵に回してまでもいわゆる
「ファン・ウソク疑惑」を徹底追求した番組だけのことはある。

敬意を表する意味で、「PD手帳」のホームページに掲載された
番組紹介から一部を翻訳練習し、記録してお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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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画像:TVリポート

신(新) 친일파의 정체를 밝힌다
新「親日派」の正体をあばく

-省略-

■ 첫 번째 책 <치마바람>에서부터 시작된 오선화 저작
대필의혹 < PD수첩 >이 종지부를 찍는다.
最初の本「スカートの風」に始まる呉善花の著作代筆疑惑に
<PD手帳>が終止符を打つ。

'90년대 초 오선화 기사는 내가 썼다', 고스트 라이터
(ghost writer)의 결정적 증언. 
「90年代初めの呉善花の記事は私が書いた」、ゴーストライターの
決定的な証言。

1983년 일본으로 건너간 오선화는 도쿄 우에노의 한국인
술집에서 호스티스 생활을 시작한다. 자신을 ‘호스티스가
아니라, 한국에서 온 호스티스 여성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준
강사’ 였다고만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이 <치마바람 (スカートの
風)>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본사회에 오선화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3年、日本にわたった呉善花は東京・上野の韓国クラブで
ホステス生活を始める。自分をホステスではなく韓国からやって
来たホステスたちに日本語を教える講師だったとのみ書いている
「スカートの風」は、一躍、ベストセラーとなり、日本社会に呉善花の
名を知らしめる契機となった。

그러나 이후 이 책은 오선화가 쓴 책이 아니라 몇 명의
대필자가 있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받아왔지만, 결정적
증언이 없어 논란만 지속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 PD수첩 > 취재진이 만난, 오선화의 前동거남 기요츠카
마고토(塚 誠)씨는 ‘여러 명의 대필자가 있다’는 고백을
했으며, 당시 출판사 사장이었던 다카하시 테루오(高橋輝雄)씨
역시, 자신이 오선화를 거의 일 년 동안 가르치다시피
하면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시인했다.

しかし、後に、この本は呉善花が書いたものではなく数名の
ゴーストライターがい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疑惑を受け続けて
きたが、決定的な証言がなく疑惑のみがささやかれ続けてきた。
しかし、今回、「PD手帳」が取材に成功した呉善花の元同棲相手の
清塚誠氏は「数名のゴーストライターがいる」と告白し、当時の
出版社社長、高橋輝雄氏もまた、「自分が呉善花をほとんど1年間
がかりで教えるようにしてこの本を作った」と認めた。

뿐만 아니라, <치마바람>으로 유명해진 오선화가 이후 많은
우익계 잡지들에서 발표한 글들 역시 대필의혹을 받아왔는데,
< PD수첩 > 취재진이 어렵게 만난 현직 일본 우익잡지
관계자는 ‘90년대 초반 오선화의 이름으로 나간 기사 중 내가
쓴 것이 여러 개 있다’고고백했다.
「スカートの風」で名をあげた呉善花が、その後、多くの右翼系
雑誌に発表した文章も同様に代筆疑惑を受けて来たが、今回、
「PD手帳」の取材班が困難を極めた取材の末、コンタクトに
成功した、ある現職の日本の右翼雑誌関係者は「90年代の初め、
呉善花の名で掲載された記事の中に私が書いたものが
かなりある」と告白した。

(続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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