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岡発 コリアフリークなBlog

韓国や韓国語に関するオタクの雑学メモ。韓国映画はネタバレあり。 Since 2005/9.14

ポッタリの夢⑤(1)

2006年07月15日 | 【釜山情報】

■ [보따리의 꿈] 보따리상 "이렇게 산다"
[ポッタリの夢⑤] ポッタリ商人の生活
(毎日新聞 7月15日)

(1)

지난 6일 오후 5시 부산 국제선 여객터미널 출국장. 일본
시모노세키로 떠나는 부관페리(주) 성희호를 타려는 여행객
들이 출국심사를 받고 밀물처럼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수십명의 사람들이 수많은 박스들
틈에서 통관절차를 밟기위해 분주했다. 수많은 박스들과
씨름하고 있는 이들은 국경무역의 첨병이라는 보따리상
들이다.
7月6日午後5時、釜山国際旅客船ターミナルの出国ロビー。
日本の下関に向かう釜関フェリー(株)「ソンヒ(星希)号」に乗船
予定の旅行客たちが出国審査を済ませ続々と集まって来ていた。
一方、ロビーの一角では、数十人の人々が大量の大型の
ダンボール箱に挟まれながら、税関手続きを受けるため
あわただしく動き回っていた。多くの段ボール箱と格闘している
彼らが、国境貿易の最前線で活躍するいわゆる「ポッタリ
(風呂敷)商人」たちだ。

이날 성희호에는 100여명 가량의 보따리상이 타고 있었다.
90%가 50대 이상 여성이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은 60대가
넘은 노인들이었다. 40, 50대 남자들은 10여명. 하지만 이들은
물건의 양으로 따져볼 때 전체의 3분의1을 차지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この日、ソンヒ号には100人あまりのポッタリ商人が乗っていた。
約9割が50代以上の女性で、そのうち半分以上は60代以上の
老人だった。4、50代の男性は10人あまり。しかし、彼らの運ぶ
品物が、全体の3分の1を占めるほどで、旺盛な活動力を
示していた。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보따리 상들은 대부분 12명이 자는
2등석 일반실을 사용한다. 군대 내무반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한 명이 잘 수 있는 공간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청한다.
목욕탕, 화장실은 공용.
一銭でも節約しなければならないポッタリ商人たちのほとんどが、
12人用の2等室を使っている。軍隊の内務班を連想させる
構造で、1人が寝ることのできる空間にマットレスをひいて寝る。
浴場やトイレは共有だ。

밥값이라도 아껴야하는 이들은 서너 끼의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각자 짐을 정리하자마자 일반실, 갑판 등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몇 가지 안되는 반찬을 펼쳐놓고 식사를
한다. 통로, 갑판에는 각자 자신의 물건을 알 수 있게 간단한
기호를 적어놓은 김, 라면 박스 등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食事代も節約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3、4食分の弁当を準備して
乗船する。各自、荷物を整理するやいなや2等室やデッキなどで
三々五々車座になり、幾種類にもならないおかずを広げ食事を取る。
通路やデッキには各自、自分の物とわかるよう簡単な記号を記した
海苔やラーメンの箱などが整然と並べてある。

(続く)

 ← 応援のクリックをお願いします。 


ポッタリの夢④

2006年07月15日 | 【釜山情報】

■ [보따리의 꿈] 보따리상의 요람 '성희호'
[ポッタリの夢④] ポッタリ商人の揺りかご「ソンヒ(星希)号」
(毎日新聞 7月15日)

・‘1만6천665t, 길이 162m, 폭 23.6m, 총 승선인원 601명.’
・1万6665t、全長162m、全幅23.6m、総乗船人員601名。

부산-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페리(주) ‘성희호’는 작은
섬 하나가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이라 보면 된다. 대중
목욕탕, 레스토랑, 노래방, 오락실,면세점 등 육지나 다름없는
시설을 갖고 있는 배 안 풍경은 어떨까?
釜山-下関を行き来する釜関フェリー(株)「ソンヒ(星希)号」は、
海上に浮かんで移動する小さな島だと思えばいい。大衆浴場、
レストラン、カラオケ、ゲームセンター、免税店など陸地と変わら
ない様々な施設を備えた船内風景とはどんなものなのか?

승객들은 가격에 따라 차별화된 방을 쓴다. 신혼부부가
사용해도 손색이 없는 로얄 스위트 룸부터 시작해 2인1실
디럭스 룸, 1등석 스페셜 룸, 4인1실, 6인1실, 2등석
일반실 등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승선료는 1인당
왕복기준 스위트, 디럭스 룸 30만~40만 원대, 일반실
10만 원대 정도.
乗客は価格によって差別化された船室を使用する。新婚夫婦が
使ってもおかしくないロイヤルスイートルームに始まり、2名1室の
デラックスルーム、1等特別室、4人部屋、6人部屋、2等一般室
など、それこそ千差万別だ。乗船料は1人当たり往復料金で
スイート、デラックスが30~40万ウォン(約4万円)代で、2等室は
10万ウォン(1万2000円)ほど。

중앙에 위치한 휴게실은 100평이 넘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라
대형 TV를 보면서 맥주, 음료수 한잔 즐기기에 딱 좋다.
레스토랑 식사시간은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한식, 일식 등
다양한 메뉴를 1만 원 정도면 제법 근사하게 먹을 수 있다.
中央に位置した休憩室は優に100坪を超えるほどの広い空間で
大型テレビを見ながらビールや飲み物を楽しむのにうってつけの
場所だ。レストランの営業時間は午後7時から9時まで。
韓国式、日本式をはじめ多様なメニューを1000円あれば
優雅に楽しめる。

'성희호' 승무원은 선장, 사무장을 포함 모두 39명이다.
「ソンヒ号」の乗務員は船長、事務長を含め総勢39名だ。

(続く)


 参加カテゴリ:地域情報(アジア)/語学・英会話 


ポッタリの夢③

2006年07月15日 | 【釜山情報】

■ [보따리의 꿈] 보따리상 이것이 궁금했다
[ポッタリの夢③] ポッタリ商人、ココが知りたい
(毎日新聞 7月15日)

▶왜 '보따리 상'인가?=해방 전부터 배를 타고 옷, 잡화 등
생필품들을 흰색, 분홍색 천에 싸서 교역을 했기 때문에
이들을 손쉽게 '보따리 상'이라 부르게 됐다.
なぜ、ポッタリ(風呂敷)商人と言うのか?=独立以前から
連絡船に乗り、衣類や雑貨など生活必需品を白やピンクの
風呂敷に包んで行商していたので、そこから「ポッタリ(風呂敷)
商人」と呼ぶようになった。

▶주로 뭘 파나?=김, 라면, 김치 등이 주력품목. 완도 김은
최상품으로 쳐 준다. 밀양 풋고추, 소불고기 양념 등도 인기
물품. 침구, 잡화류는 전문 교역 물품이다.
主に扱っている品は?=海苔、ラーメン、キムチなどが主力品目。
ワンド(全羅南道)産海苔は高級品として売られている。ミリャン
(慶尚南道)産の青唐辛子、焼肉のたれなども人気品目。
寝具や雑貨類は専門的に取引されている物品だ。

▶일본 보따리 상은 없나?=한국에서 활어를 사서 일본
수산시장에 유통시키는 일본 거래업자들이 있다. 값싸고
질좋은 활어를 구해 운반해주고 고수익을 올린다.
日本人のポッタリ商人はいないのか?=韓国で活魚を仕入れ、
日本の水産市場に流通させている日本人の水産業者たちがいる。
割安で質のいい活魚を仕入れ運搬し高収益を上げている。

▶한번 갔다오면 얼마나 남나?=한 보따리상이 최대로 물건을
판 경우 25만~30만 원 정도 수입을 올린다. 이 중 배 삯
10여만 원, 관세 2만~3만 원 등을 제외하면 순수익은
5~10만 원선.
一往復でどれくらいの収入があるのか?=一人のポッタリ商人が
最大量の品物を売った場合、25万~30万ウォン(約3万5000円)
程度の収入を上げる。そこから船賃約10万ウォン、関税2~3万
ウォンなどを差し引いた純益は5~10万ウォン(約6000~1万
2000円)だ。

◎ 보따리상의 '3묵계'
ポッタリ商人の3つの掟

보따리 상들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지켜야하는
불문율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일종의 묵계(默契)가
형성된 것.
ポッタリ商人たちのあいだには、口にしなくてもお互いに守ら
なければならない掟(おきて)のようなものがある。長い歳月の
中で形成された一種の不文律だ。

▲얼마나 팔았는지 묻지 말 것-보따리 상들은 표정으로
말할 뿐 어떤 물건을 얼마에 팔았는지 얘기하지 않는다.
거래처 역시 자신만의 비밀.
いくら売ったのか聞いてはいけない - ポッタリ商人は表情で
語るだけで、どういう品をいくら売ったのか口にしない。取引先も
自分だけの秘密だ。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 것-호기심으로라도 남의 물건을
열어보거나 손대지 않는 것이 기본 예절. 때문에 자신의
물건에 고유의 표시를 해두고 반드시 그 표시를 확인한 후
개봉한다.
人の品物に手をつけない - たとえ好奇心からでも人の品物を
開けて見たり触れたりしないのが基本的なエチケットだ。だから、
自分の品物には各自に固有のしるしを付け、必ずそのしるしを
確認してから開封する。

▲뭉쳐서 행동하지 말 것-한 개인이 걸어다니는 무역업자이기
때문에 각자 계획대로 가져온 물건들을 건네주고 돈을
받아올 뿐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한다.
集団で行動しない - 個人貿易業者として各自の計画にのっとり
持ち込んだ品物を渡しお金を受け取ってくるだけなので、人の
領域を侵さないよう特別、注意している。

(続く)


韓国情報 - 海外生活ブログ村     ← 応援のクリックをお願いします。


ポッタリの夢②

2006年07月15日 | 【釜山情報】

■ [보따리의 꿈] 보따리 상 대모 백여선 할머니
[ポッタリの夢②] ポッタリ商人のゴッドマザー、ペク・ヨソンおばあさん
(毎日新聞 7月15日)

마치 10대 같은 민첩한 행동, 척보면 이문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능력, 능통한 일본어 실력 등 도저히 79세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32세 때부터 47년동안 부산-시모노세키를 오가며
보따리 상을 해 온 보따리 상의 산 증인 백여선(79) 할머니.
まるで10代の少女のように敏捷な身のこなし、売買の時、瞬時に
利益を計算する能力、ペラペラの日本語の実力など、とても79歳
という年齢が信じられないくらいだ。32歳の頃から47年間、釜山と
下関を行き来しながらポッタリ(風呂敷)商人をやってきたポッタリ
商人の生き証人がペク・ヨソン(79)おばあさんだ。

백 할머니는 이곳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보따리 상의 대모
(大母)다. 50년 전 민간단체로 판문점 방문 당시 함께 간
일행으로부터 보따리 상 얘기를 듣고 당시 일본돈 5만
엔으로 이곳 세계에 뛰어들었다.
ペクおばあさんはフェリーの中で自他共に認めるポッタリ商人の
ゴッドマザーだ。50年前、団体視察で板門店を訪問した時、
同行した人からポッタリ商人の話を聞き、当時の日本円5万円を
元手にこの世界に飛び込んだ。

"처음에는 옷가지들을 보따리에 싸서 다니던 그야말로
보따리 상 시절이었다."고 회상한 백 할머니는 "당시엔
50~60명씩 타는 작은 배로 배멀미 속에서 10시간 이상
걸려야 시모토세키에 도착했다."고 회상했다. 현해탄
파도가 거세 배가 뒤집힐 뻔 한 적도 수십차례였다.
ペクおばあさんは「最初の頃は衣類をポッタリ(風呂敷)に包んで
行商する、文字どおりのポッタリ商人時代だった」と往事を振り返り
ながら、「当時は5、60人しか乗れないような小さな船で、船酔いも
激しい中、下関まで行くのに10時間以上かかっていた」と語る。
玄界灘の波が荒く、船がひっくり返りそうになったことも数知れない。

백 할머니는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품목으로 차별화에 성공,
꽤나 돈을 벌었다. 초장기엔 옷, 잡화 등에 승부를 걸어
식료품을 주로 실어나르는 다른 보따리상보다 몇 배 이상
돈을 벌었고 지금은 침구류를 독점하고 있다. 수입은 월
1천만 원 정도. 그렇다고 세금을 덜 내는 것도 아니다. 이날도
이불, 모포 등이 가득 실린 침구류 7박스를 보내고 이에
따른 관세 3만5천 원을 지불했다.
ペクおばあさんは最初から他の人とは違う品目で勝負し差別化に
成功し、かなりもうけた。初期の頃は服、雑貨などで勝負し、
主に食料品を運んでいた他のポッタリ商人に比べ数倍のもうけを
出し、今は寝具類のルートを独り占めしている。収入は月に
1000万ウォン(約120万円)ほど。だからといって税金を払って
いないわけではない。記者が取材した日も、布団や毛布などの
寝具類がつまった7箱を船に乗せ、3万5000ウォン(約4000円)
の関税を払った。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백 할머니는 3남1녀 대학공부를
일본에서 다 시켰다. 지금 건강상태나 능력으로 봐선
앞으로 10년도 문제없다는 그는 "부산 범일동 진시장에서
도매로 물건을 구해 일본 도쿄나 규슈 등 거래처로
보내준다."며 "이젠 보따리 상 일에 중독돼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 안될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日本の東京に住んでいるペクおばあさんは、3男1女の子どもを
全て日本の大学で学ばせた。現在の健康状態や体力から見て
まだ10年は大丈夫だと語るおばあさんは「釜山のポミル洞市場の
卸店で品物を仕入れて、日本の東京や九州などの取引先に
送っている。ポッタリの商売に中毒になっているので、仕事を
しないと体がむずむずしてしかたがない」と打ち明けた。

(続く)



韓国情報 - 海外生活ブログ村     ← 応援のクリックをお願いします。


ポッタリの夢①

2006年07月15日 | 【釜山情報】

その昔、若い「ヲタク」がフェリーに乗って釜山を訪れる時には、
バナナや免税の洋酒を釜山に持ち込んでは、ターミナルで待ち
構えていた現地の商人たち(?)にそれらを売り渡し、滞在費の
一部を稼いでいた。

1980年代の終わり頃まで、韓国ではバナナの輸入が自由化されて
いなかったので、日本から持ち込むバナナがけっこう高く買い取って
もらえていたのである。

時には、ポッタリ(行商)のおばちゃんが韓国に持ち込む
ウォークマンなどの貿易品(?)を運んであげ、運び代をもらったり
することもあった。一時期、一部のおばちゃんたちが、韓国を
旅行する学生などに目をつけ、韓国への持ち込み制限のある
品物などを運ばせたりしていたのである。

すべては過ぎ去りし遠い昔の話だ。(といっても高々20年ちょっと
前の話だ)

今日、ポッタリ商人の話題が新聞(電子版)に出ていた。

かなり長い特集記事だが、例によって数回に分け、全てを翻訳し
記録しておこうと思う。

・・・・・・・・・・・・・・

■ [보따리의 꿈] 최첨단 1인 무역상 임채일 씨
[ポッタリの夢①] 最前線の個人貿易商、イム・チェイルさん
(毎日新聞 7月15日)

한일무역의 최첨병. 생업을 위해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釜關)페리를 타고 다니며 무역을 하는 사람들.
흔히 이야기하는 ‘보따리상’들이다. 배 위에서 새우잠을
자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 14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그만큼 사연도 한 보따리다. 부관페리 뱃길 따라
‘희망 보따리’를 풀어내는 두 사람을 만났다.
韓日貿易の最前線。釜山と日本の下関を行き来する「釜関
フェリー」に乗り、国境を股にかけながら貿易を営む人たちが
いる。俗に「ポッタリ(風呂敷)商人」と呼ばれる個人貿易商たちだ。
夜は船室で雑魚寝し、食事は弁当ですませながら1日14時間を
船内で過ごす人たち。船は実に様々な人生模様や数々の夢を
乗せて走る。記者は釜関フェリーに乗り込み、二人のポッタリ商人を
取材し夢を語ってもらった。

◆최첨단 1인 무역상 임채일 씨.
最前線の個人貿易商、イム・チェイルさん。

부관페리 '성희호'의 2층 침대가 달린 1등석 스페셜 룸.
침대 앞 책상에는 노트북 컴퓨터와 프린터기가 놓여 있다.
노트북 앞에 앉은 임채일(46) 씨. 능숙한 키보드 놀림으로
주문서를 작성하고 영수증을 챙긴다. 여느 무역업체 직원
같지만 그는 이 배에 탄 100여명의 보따리 상 중 한
명이다. 남들과 다른 점은 배 안에 개인 사무실을 둔 1인
무역업체 사장이라는 점.
釜関フェリー「星希号」、2段ベッドの付いた1等特別室。ベッドの
前の机の上にはノート型パソコンとプリンターが置かれている。
ノート型パソコンの前に座っているのはイム・チェイルさん(46)。
慣れた手つきでキーボードを叩きながら注文書を作成し領収証を
整理する。どこかの貿易会社の社員のように見えるが、彼は
この船に乗る100人余りのポッタリ商人の1人だ。他の商人と
違うのは、彼が船の中に個人事務所を置く個人貿易会社の
社長という点だ。

1개월에 20회 이상 이 배를 타는 그는 1등석 스페셜 룸을
전세냈다. 연간 내는 배삯만 6천만~7천만원. 그만큼 임
씨는 보따리 상 경력 7년만에 나름의 영역을 구축했다.
1ヶ月に20回以上この船に乗るイムさんは、1等の特別室を
一部屋借り切っている。年間、彼が船会社に支払う料金だけで
6000~7000万ウォン(約800万円)にのぼる。この世界に
飛び込んで7年目。それなりの事業を築き上げてきた。

그는 3, 4년 전만해도 남들 다 하는 라면, 김 등 식료품을
주로 취급했다. 수지가 시원찮자 변신을 시도했다. 지금
주로 취급하는 품목은 잡화. 이 날도 그는 식당용 탁자,
의자 등 15박스의 각종 잡화를 일본으로 배달했다.
イムさんは3、4年前までは誰でもやってるようなラーメンや
海苔などの食料品を扱っていた。しかし、思うように利益が
出ず、新しい分野に挑戦した。今、主に取り扱っている品物は
雑貨類だ。この日もイムさんは食堂用のテーブルや椅子など、
15箱分の雑貨類を日本に運んでいた。

밤을 꼬박 새우며 배가 시모노세키에 도착하자 임 씨는
싣고온 물건들을 일본 내 각지의 거래처로 택배로
보냈다. 더러는 그의 물건을 직접 받기위해 항구로 나오는
일본 상인들도 있었다. 거래처로 물건을 보내고난
임 씨는 또다시 거래처마다 필요한 물건을 주문받고
입금여부를 확인했다.
丸一晩を船中で過ごし、翌朝、船が下関に着くとイムさんは
船に積んできた品物を日本各地の取引先に宅配で送った。
中には港まで直接、品物を受け取りに来る商人たちもいた。
取引先に品物を送ったイムさんは、今度は取引先ごとに再度、
必要な品の注文を取り、入金の確認をした。

이젠 그만의 노하우도 익혔다. 세관에 자신의 물품대금을
신고하고 손쉽게 통과하면서 세금을 적게 내는 요령,
일본 상인들과의 원활한 거래를 위한 상도(商道)를 깨쳤다.
기본적인 일본어 실력 등 제법 세련된 맛도 돋보인다.
일본 세관 직원 중 누가 까다로운지 성격까지 파악하고
있다.
すでに彼だけのノーハウも身に着けた。税関に自分の
品物代を申告し簡単に通過させるとともに税金を少なくする要領や
日本現地の業者との取引を円滑にするための商売方法などを
体得しているのだ。基本的な日本語の実力など、洗練された印象も
際立っていた。さらにイムさんは、日本の税関職員の中で神経質
なのは誰かなど、彼らの性格まで把握していた。

하지만 처음부터 손쉽게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수백 번
한·일을 오가며 돈이 되는 물건이 뭔지 믿을만한 거래선은
어디인지 찾고 또 찾아다녔다. 배 안에서 새벽 3~4시까지
물품과 영수증을 확인하다보니 하루 2시간만 자고 일했던
기억도 불과 2년 전이다. 매일 박스를 묶고 풀어헤치다
보니 손에는 어느덧 거친 굳은 살이 자리잡았다.
しかし全てが最初からスムーズに軌道に乗ったわけではなかった。
何百回も韓・日を行き来しながら、売れる商品や信頼できる
取引先を求め、靴底をすり減らしながら探して回った。船の中で
深夜の3~4時まで品物や領収証を確認しなければならず、
1日2時間しか寝れないような生活がほんの2年前まで
続いていた。毎日、段ボール箱を紐で結び解くことを繰り返して
いるうち、手はいつのまにかタコだらけになってしまった。

부산에서 해돋이, 시모노세키에서 해넘이를 보며 더 큰
무역상의 꿈을 키우는 그는 “내 보따리에는 꿈과 희망,
가족의 행복이 담겨있습니다.”라며 웃었다.
釜山と下関で交互に日の出と日の入りを眺めながら、もっと
大きな貿易商になることを夢見るイムさんは、「私のポッタリには
夢と希望、そして家族の幸せがつまっています」と笑顔で語った。

(続く)


 

韓国情報 - 海外生活ブログ村     ← 応援のクリックをお願いします。